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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 성탄 대축일 성야미사 -강생의 의미![김웅열 토마스 신부닙]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27 조회수820 추천수5 반대(0) 신고

                                              

 

 

             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감곡성당 2010년 성탄성야미사-photo by benedict 

 

†찬미예수님

어느 신부님이 등산을 가다가 실족을 해가지고 낭떠러지로 떨어졌는데 떨어지다가 나뭇가지 절벽에 데롱데롱 매달렸겠지요?

뭐 밑에는 그냥 끝도 없는 낭떠러지였습니다.

그래서 이 신부님이 위를 쳐다보면서 뭐라고 소리 질렀겠어요?

여러분 같으면 무슨 소릴 질렀겠어요?

“아! 기분 좋다.” 이랬겠어요?

“사람 살려! 그 위에 누구 없소? 내 소리 들리거든 나 좀 살려주시오!”


명색이 신분데  그래도 죽기는 싫은 거야.

그렇게 막 소리를 지르다가 위에서 인기척이 나길래

“누구세요?” 

“사랑하는 아들아!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니 곁에 있다.”

“누구신데요?” 

“나 하느님이다!”

“하느님! 저만 구해주시면요~~ 저 하여튼 목숨 바쳐 하느님 사랑하겠습니다.”

“그래, 내 니 말 믿고 너 살려줄 테니까 너 내 시키는대로해라.”

“예. 분부만 하십시오.”

“니가 잡고 있는 나무 좀 놓을래?”

그러니깐 신부님이 황당하지요!

이거 놓으면 아~~ 나 죽는데 살려준다고 해놓고 나무를 놓으라니까~~

 기가 막혀가지고 그냥 나무를 더 세게 움켜쥐고 안 놨어요!

다시 위를 쳐다보며 “그 위에 하느님 말고 다른 사람 없수?”


하느님은 우리를 늘 벼랑 끝에 서있었을 때도 있었을 것이요!

올 한해 지내면서 늪에 빠져 허우적거려야할 때도 있었을 것이요!

그야말로 가느다란 밧줄 위에 곡예사처럼 한 해를 지냈던 적도 분명 있었을 겁니다.

그럴 때마다 하느님은 “나만 믿고 그냥 떨어져봐! 그 손 좀 놔 봐! 내가 살려 주잖어”

수도 없이 얘길 하셨지만 우리들은 그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어가지고 늘 내 곁에 계시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아니 정말로 나 살려줄 예수님 말고 딴사람 없냐구요? 그렇게 그냥 허공에 붕 뜬 얘기만 하지마시고 구체적으로 나 좀 살려줘 보시오. 나 돈이 없으니까 돈을 좀 주던지? 내가 지금 암 병에 걸렸으니까 암을 그냥 뚝 떨어지게 하던지 뭐 좀 증거를 보이시오.”

아마 이렇게 외치고 한 해를 살지 않았는가!


오늘 예수님께서 그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핏덩어리 아이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생의 왕초보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왕초보로 오신~~

죄 빼고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양쪽 면을 가지고 그야말로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꼼짝없이 얼어 죽을 수밖에 없는 그 핏덩어리 같은 어린아이로 오신 그 강생의 이유가 과연 뭐겠습니까?

멋있는 왕으로 구름을 타고 수많은 천사들을 거느리고 우리 앞에 이 땅에 오실 수도 있었는데 왜 그런 모습으로 강생하셨을까?

주님의 강생의 의미는 뭐겠습니까?


어느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모처럼만에 서울구경을 갔습니다. 가서, 명동 저 휘황찬란한 쇼윈도 또 백화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시골에 살던 엄마는 너무너무 볼거리가 많았고~~

 “얘 저것 좀 봐 세상에....우리 감곡에 저거 없지?”

아이 손을 잡고 다니면서 설명을 해주는데, 이 아이는 자꾸 칭얼칭얼 대면서

 “엄마~~ 엄마~~ 집에 가..... 집에가!”

“아이구! 이놈의 새끼야! 저거 좀 봐 감곡에는 저거 귀경도 못하는 거 여기 있잖어 ”

“아이 싫어~~ 싫어~~ 보기 싫어!”

‘얘가 왜 이렇게 칭얼대나~~’

하다가 그 아이가 신발 끈이 풀어져가지고 아이 신발 끈을 묶어주려고 엄마가 무릎을 꿇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니까 세상에~~

이쁜 건 하나도 안보이고 뭐만 보였느냐?

지나가는 사람들 다리통만 보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엉덩이 밖에 안 보여~~

그때서야 이 엄마는 ‘아! 내가 이 아이에게 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고 억지로 강요했구나!’


강생의 의미는 바로 이 눈높이 사랑이 아니겠는가!


 예수님께서 저 높은 하늘에서 근사한 의자에 앉아가지고

“얘, 이 이 죄 많은 인간 이놈들아 나 있는 데까지만 한번 기어 올라와 봐! 내가 끝내주게 대접해주께”

우리들 중에 우리 힘으로 예수님 계신 그곳에 올라갈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이 세상에 똑같은 눈높이로 내려오셔서 우리와 똑같이 시궁창에 빠져서 우리의 팔을 끌어안고 우리의 어깨를 끌어안고 허우적거리면서 같이 나오시려고 바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닌가?

고상하고 고귀한 모습으로 당신 있는데 까지만 올라와라~~

이러셨다면 우리들 중에 아무도 그분에게 갈 사람은 자격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려오셨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서 나 있는 데까지 올라와라 하는 건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자식의 눈높이까지 내려와야 되고 하느님이 때로는 피조물의 눈높이까지 내려와서 내가 만들어 놓은 몸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지만 이거 어떻게 해 그래도 내 새낀데~~

이거 구원시켜야지~~


성부께서 당신 아들까지 그렇게 낮은 자의 모습으로 내려 보내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스개소리가 있지요?

공작들을 보면 하느님의 심미안을 엿볼 수가 있고~~

하마를 보면 하느님의 유머감각을 알 수 있고~~

‘하느님의 최대 걸작이자 유일한 실패작!’

그것은 바로 인간이다!


만일에 말입니다.

우리에게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서 내가 마음에 드는 피조물을 만들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나은 것이라고 자부했던 것 중에 하나가 창조주인 우리에게 손가락질하고 외면하고 자기스스로 생겨난 것인 양 우쭐대고 오만해져서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하고 제멋대로 한다면 창조주인 우리는 그 피조물을 과연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이거 내가 잘못 만들었구나!’

당장 없애버리던지 아니면 아찔하리만큼 혼내줘서

<창조주인 내가 있다!> 는 것을 알게 하던지, 그도 아니면 아예 바보로 만들어서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게 만들던지 해야 아마 직성이 풀릴 겁니다.


아마 우리끼리도 내말을 듣지 않거나 나를 무시하거나 저 잘난체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후회하게 들고 싶은 게 우리자신 아니겠습니까?

만일 하느님이 우리처럼 생각하셨다면 아마 우리들 중에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어디 있겠고 살아 숨 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창조주인 하느님이 우리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자리에서 직접 심판을 내리신다고 그런다면 죄를 지을 때마다 거기에 대한 벌을 늦추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심판해서 벌을 주신다고 하면은 우리들 중에 몸뚱아리 성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뭐 예를 들어서 주일미사를 빠질 때마다 발가락하나를 톡톡 부러뜨리신다면 양말 벗겨놓고 보면 지금 발가락 있는 사람 아무도 없을 겁니다.

남 얘기 함부로 지껄이고 다닐 때마다 이를 하나씩 뽑아버리신다면 지금 다 틀니하고 살 겁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죄를 지을 때마다 즉시즉시 심판하시지 않는다고 해서~~

하느님이 연세가 많아서 못보고 못 듣는 다고~~

이렇게 생각했다가는 얼마나 큰 오산이겠습니까?


우리는 저놈이 나한테 해꼬지 하면 저놈에게 복수할 온갖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고 당신을 모욕하고 당신 품을 떠나가도 가만 내버려 두십니다.

아니 그보다도 걱정이 돼서 따라오시어 지켜주시고 기다려주십니다.


돌아온 탕자를 집나간 그 순간부터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 그 아버지의 마음처럼 기다려주십니다.


2000년 전에 오신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당신을 깨닫고/ 당신께로 돌아서서/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것보다 수천 년 전부터 하느님은 우리를 믿고 계십니다.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고 살아가는 유일한 실패작이라고 하는 말을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실패작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실패작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닮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분명히 하느님께로 돌아갑니다.


사실은 오늘밤 온 세상은 요지경일겁니다.

우리처럼 그래도 성탄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술과 흥청망청 돈 써대는 즐거움과 쾌락의 세계가 이 몇 발자국만 나가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취해서 무엇을 .... 해야 하는지 모르고 퍼마셔댑니다.

청소년은 거리낌 없이 외박을 하고 호텔은 초저녁부터 빈방이 없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그날처럼 호텔은 만원사례입니다.

디스코텍, 나이트클럽, 룸 싸롱, 카바레 하다못해 매춘업을 하는 안마시술소까지 성탄전야는 대만원이라고 그럽니다.

값은 모두 따블인데도 자리가 없어서 사람을 받지 못한다고 그럽니다. 이런 업소들은 오늘밤을 손꼽아 기다렸고, 대목을 기다렸고 밀려드는 사람으로 행복한 비명을 지를 겁니다.

이런 모습이 현재 이 세상 성탄전야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는 자기 생일날 남들이 벌인 잔치가 끝내 어색해서 길거리를 방황하고 계실지 모릅니다. 


성탄절은 누구나 따뜻하게 느낄 수 있어야 되는 명절이 되어야 될 겁니다.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 전방의 군인들, 감옥에 갇힌 이들, 아픈 사람들, 양로원의 노인들, 고아들, 가출청소년들, 배고파 죽어가는 사람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는 수많은 내전, ......죽어간 불쌍한 사람들....

우리가 이들을 이날까지 기억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강생의 의미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건 가짜 성탄이 될 겁니다.

전 세계 총성이 멎고 정말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ㅡ2006. 12. 24   성탄 전야미사 강론 말씀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감곡성당 2010년 성탄성야미사-photo by bened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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