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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죽어도 좋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28 조회수1,285 추천수22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성탄 팔일 축제 내 제5일 - 죽어도 좋다!

 

 

 

공자는 어지럽던 춘추전국의 가치의 혼란 시대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참 진리를 깨닫고 싶어 했고 그런 의미에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죽음도 뛰어 넘을 수 있는 진리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좋을 진리란 바로 구원을 주는 진리입니다.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살 수 있는 구원의 진리라면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되고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그런 진리만 바라던 시메온이 아기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외칩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작년에 저희는 수많은 유명인들의 죽음을 보았고 그 때마다 가슴 아파 하였습니다. 최진실씨의 자살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또 김수환 추기경님의 죽음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 등이 그것입니다.

자살은 당연히 ‘죽어도 좋을’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죽어도 좋을’ 무엇을 ‘영원한 생명을 주는’ 구원이 아닌 스쳐지나가는 이 세상 것에 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을 얻지 못하거나 잃었을 때의 절망감을 이길 수 없어서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그러나 죽어도 좋을 진리를 본 이들의 죽음은 또 다른 것이었습니다. 편안함과 감사와 사랑이 넘치는 죽음이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김수환 추기경님의 고요하게 잠드신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추기경님의 모습에서 죽음을 이기는 진리가 무엇인가를 보았을까요? 그러나 그 진리는 ‘참으로 바라는 이’에게만 보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당신은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십니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을 던지고 더 이상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진리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 진리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 다른 것들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잃지 않는 것에만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훗날 빌라도도 이탈리아로 돌아와서 결국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들은 시메온처럼 죽어도 좋을 구원을 보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빌라도처럼 떼돈을 벌거나 권력을 얻으면 죽을 만큼 좋아할 것입니까?

한 번은 성탄 자정 미사 때 저의 교수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 분이 어렸을 때 독감에 걸렸었는데 이 침대에 누워 있다가 저 침대에 누워 있다가 했다는 것입니다. 침대를 바꾸면 병이 나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할머니는 “침대를 바꾼다고 몸 안에 있는 것이 사라지지는 않아!”하셨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외적인 것을 바꾼다고 내적인 것이 변화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서 불평하는 사람은 다른 곳에 가도 불평거리를 찾아냅니다. 세상 모든 것들로 나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내가 만족 못하고 있는 이유는 어쩌면 나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만을 희망하고 있어서는 아닐까요? 죽어도 좋을 진리는 바로 눈앞에 있는데 다른 무엇을 바라고 있기에 시메온이 외쳤던 행복을 느껴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극에 달했을 때 국가의 장래를 염려하는 사람들과 링컨 대통령이 서로 대화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청년이 “이제 미국이 끝장나는 거 아닙니까?”라며 비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링컨은 청년의 손을 잡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청년시절, 덕망 높은 노인과 가을밤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때 무수한 별똥이 떨어져내려 두려워했더니 노인이 내게 말했습니다. ‘저 무수한 두려움을 바라보지 말고 더 높은 데서 반짝이는 별들을 보게나.’”

죽음은 언젠가는 꼭 오고 맙니다. 세상 종말도 언젠가는 오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은 그 위에 있는 구원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구원이란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시메온의 평생 희망은 메시아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의 희망이야말로 행복한 죽음을 보장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희망의 힘으로 살았고 그 희망의 성취로 행복한 죽음을 맞아합니다.

반면에 세상 모든 영예를 얻었던 솔로몬은 이렇게 외칩니다.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왕이었던 설교자의 말이다.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전도 1,1-3)

세상 것들을 희망하면 결국 절망과 허무만 남지만 시메온과 같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에 희망을 두면 세상 시련을 이겨 낼 힘을 줍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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