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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29일 야곱의 우물- 루카 2,22-35 묵상/ 봉헌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29 조회수1,870 추천수4 반대(0) 신고
봉헌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 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나의 부모님, 특히 아버지께서는 어릴 때부터 우리 5남매를 두고 늘 “자식 다섯 중에 한 명쯤은 하느님께 봉헌해야 하지 않겠느냐 ?” 라고 말씀하셨다. 막내인 내가 봐도 언니 · 오빠들 중에는 별로 수도나 사제성소의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았다.
만일 우리 중에 누군가가 성소를 받는다면 가장 착한 내가 아닐까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아버지께서는 은근히 내 관리에 들어가시는 듯했다. 대학생 때 혹시라도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다 큰 게 늦게 돌아다닌다.” 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어쩌다 남학생에게 전화라도 오는 날엔 “쪼그만 게 무슨 남자친구냐.” 라고 말씀하셨다. 어느 장단에 맞출 수 있었겠는가 싶지만 지금은 아버지를 놀리는 하나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결국 결정적 봉헌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에 의해 이루어졌다. 대학 2학년 때 맹장염에 걸린 것을 모르고 하루를 꼬박 참다가 맹장이 터져버렸다. 병원에서 수술 전에 의사는 “비키니를 입을 거냐 ?” 고 물었다. 의아해 하는 내게 의사는 놀리듯 말했다. “배를 세로로 가르면 수술이 더 깨끗하게 되지만 비키니를 입겠다면 가로로 갈라주겠다.” 나는 순간 별 생각 없이 “상관없어요.” 라고 대답했다.

마취에서 깨어나자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네가 수술을 받는 동안 주님께 기도를 드렸다. 이 아이에게 수도성소를 주시려면 깨어나게 하시고, 수도성소가 없다면 이 순간 그냥 데려가시라고.” 기가 막혔다. 요즘 세상에 맹장수술 받다가 죽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아버지는 생전 책도 안 읽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교회서적을 읽는 것을 보고 성소의 뜻이 있나 넘겨짚으신 것이었는데 과다하게 펄쩍 뜀으로써 더욱 확신을 드리게 되었으니 내 꾀에 내가 넘어간 꼴이 되었다. 확실한 증거는 바로 배를 이리 가르든 저리 가르든 상관이 없다고 대답한 나의 말 때문이었으니 이 또한 내가 흘린 정보가 아니던가.

예수님은 온 인류를 비추시는 빛이 되실 아기였고,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당신이 계획하신 자유와 생명으로 인도할 구원자로 세상에 보내신 귀한 분이셨다. 시메온의 말을 들은 아기의 부모는 감격을 하였지만 그 감격과 경탄은 평화롭고 감미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성모님은 아기의 탄생을 기뻐하기도 전에 세상을 위해 예견된 고통의 삶을 살아야 하는 아드님의 봉헌을 어떻게 감당하셨을까 ?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녀를 독립시킬 때 자신의 몸에서 날개가 떨어져 나가는 듯이 힘들어 한다. 자신들의 분신인 자녀에게 더 이상 부모의 직접적인 보살핌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심리적인 독립은 부모 편에서 더 어렵게 되는 것이다. 부모들에겐 자녀를 양육하는 순간순간이 봉헌 행위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눈을 감는 순간까지 노심초사하며 그렇게 힘겹게 부모의 역할을 다하는 분들이 아니신가. 순간순간 일상의 삶에서 수없는 봉헌이 이루어지는 부모님들께, 또 돌아가신 부모님들을 위해 이 해가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
김혜림 수녀(샬트로성바오로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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