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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첫 인상> - 정세은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30 조회수452 추천수2 반대(0) 신고
첫인상
[정세은 칼럼]
 
2009년 12월 27일 (일) 22:52:43 정세은 jfg012000@naver.com
 

   
▲ 정세은 씨가 사는 충남 논산의 어느 마을 어귀에 고택이 있다. 이 곳에 머무는 이의 온기가 굴뚝에서 연기처럼 피어노른다.(사진/한상봉)

나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
조용한 여자도 되고 싶었고 조용한 사람도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 된지 오래다.
원래 조용한 사람은 되기 글렀고 수다 떠는 시끄러운 아줌마가 되기로 결정했다.
 
훌륭한 사람 되기 위해선 적어도 그렇게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되겠지만
주위 환경도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주위 환경은 한 동안 조용 했었지만 조용하다가도 난데없이 난리법석이다.
특히 우리 집엔 개가 두 마리인데
두 마리 다 암캐다.

여자들이 조용한 경우는 두가지 중의 하나다.
하나는 혼자이거나 하나는 두 번째 서열에 끼여 눈치만 보는 경우다.
우리 집에서 사는 순님이는 너무 늙어 눈도 잘 안 떠질 만큼 눈이 축 처졌다.
짖는 목소리도 늙은 여자처럼 걸걸하고 진한 허스키다. 처음엔 감기 걸렸나보다 했는데 개도 목소리가 늙는 것을 알았다.

나를 보는 눈빛은 먼 산에 흰 구름 쳐다보는 것처럼 먼 산 바래기처럼 넌지시 본다.
그래도 코는 여전히 기능을 유지한다. 간혹 가다가 고등어 대가리만 무수 넣고 푸욱 지져주면 벌써 그 냄새에 꼬리가 연신 살랑살랑 흔들린다. 개코는 늙지 않는가 보다.

또 한 마리 암놈은 이제 두 살이다.
흐흐 ..젊디 젊은 것.
그래서 늘 코를 벌름벌름 거리고 암내가 나면 생전 보지 못한 수컷이 먼데서 원정 오게 한다.
나는 아무리 맡고 싶어도 맡을 수 없는 그 오묘한 암내가 그 토록 멀리 날아가서 산 넘고 물 건너오는 것은 아니더라도 몇 킬로 반경에 소문이 자자하게 날 정도의 태풍처럼 위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난리가 난다. 우리 암컷의 이름은 '복순이'.
대문 한 쪽이 망가져 잠그나 마나 늘 열린 싸릿문이 된지 오래 된 덕에
수컷들은 지네 집 드나들듯 늘 어슬렁 거리며 달빛에 노출되어 보니 참 얄궂다.
" 무슨 개가 저렇게 못 생겼냐?"
집 주인으로서 한 마디 참견 좀 해 봤다.

옆에서 듣던 남편이 그러네. 암내가 삼 십리까지 퍼져 멀쩡한 목줄을 끊고 논두렁이며 밭고랑인지 분간도 못하고 오로지 암컷을 만나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달려오는데
개나 소나 다 지 짝이 얼굴로 따지는 것 봤냐는 거다.

세상에 개도 자기 짝을 고르는 선을 따로 본다는 애기는 전혀 금시초문이다.
불현듯이 내 머릿속을 획 지나가는 한 마디 명언
"사람의 첫인상은 단 일초도 아니고 0,03초에 결정된다"
혹시 개도 첫인상으로 자기 짝을 찾을까?
내가 개가 아닌 이상 도무지 알 수 없는 세계다.

*'정자'씨라고 불리는 정세은 씨는 논산에 사는 시골아낙입니다. 예쁜 이름이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필자의 글을 이번 주부터 한 주일에 한 번 씩 연재합니다.  -편집자

정세은 / 맨날 잠만 볼 터지게 자다가 남편에게 잠만 자는 미련한 곰탱이라고 듣습니다. 먹고 사는데 바쁘고 게을러서 제대로 된 적금통장도 하나 없고, 빚은 조금 있고,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키우며 살지요 올 핸 아직 수다 떠느라 김장도 못하고 넘어간 수다스런 아줌마입니다. 어둠속에 갇힌 불꽃 카페에 '정자의 마음소쿠리' 게시판지기이며 회원입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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