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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의 길=경배의 길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03 조회수553 추천수3 반대(0) 신고

 

 
 
 
동방의 박사들은 이른 아침부터 출발을 서둘렀다.
구세주를 보러 길을 떠난 것이다.
몇날 몇칠이 걸릴지 모르는 여행이었다.
난데 없이 나타난 별은 더욱 더 밝고 크게 빛나기 시작하였고,
먼 옛날부터 전해져온 전설을 떠 올리게 만들었다.
“유대의 왕이 나타났다는 하늘의 징표로 한 별이 나타날 것이다.”
구세주를 보러 떠난다고 하자 사람들은 비웃었다.
그래도 박사들은 아무 일도 아닌 듯 자신의 갈길을 재촉하였다.
누가 진짜일까?
믿음에 의존하여 자기 인생을 거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
 
우리도 이들처럼 구세주를 만나기 위해 이 험난한 현세를 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 둘레의 회의적이고 경박한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지각없는 바보로 본다.
대꾸를 해야 할까? 분하고 억울하게 생각하여 복수를 해야 할까?
저 동방박사들 처럼 우리도 두 눈 부릅뜨고 갈 길을 똑바로 가야 하지 않을까?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 예수님의 탄생지를 물었을 때,
그곳 학자들은 베들레헴이라고 가르쳐 주면서도 자신들은 구세주를 뵈러 가려 하지 않았다.
누가 진짜일까?
진실을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하지만 우리는 참으로 자주 아는 대로 살지 않거나 피해 버린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하느님의 선민이라 뽐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분에게 태어나실 방 한 칸을 드리지 않아 외양간에서 태어나게 했지만,
동방의 박사들은 먼 이국에서 찾아 와 경배하였다.
누가 진짜일까?
 
사람들은 이해관계를 너무 따진다.
아무리 실력있는 음악가라 해도 좋은 대학 교수자리에 임용되지 못하는 것은 이해관계 때문일 것이다.
실력있는 후배가 들어와서 자기 자리를 밀어낼지도 모르고,
어떻게 공을 들여야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낼지 알 수 없고,
그동안 잘 만들어놓은 인맥이 흐트러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예수님 탄생 당시 그 나라를 다스리던 헤로데를 위시해 권세와 부귀를 누리던 고관들은 왕이라는 말에 움찔 놀라,
구세주를 해칠 음모를 꾸몄지만 순박한 목동들은 와서 경배하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누가 진짜일까?
 
진짜 왕이 나타났지만 사람들은 너무나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저 시골 구석 깡촌에서 왕이 난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더불어 가난한 목수 아들이 구세주라고는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러시아 왕, 네 번째왕의 전설을 아시는가?
이 왕도 동방의 박사들처럼 별을 보고 예수님께 경배의 길을 떠났지만
도중에 만난 여자 거지의 출산을 도와주고 그 비싼 아마포로 강보를 만들어주고 보석까지 쥐어준다.
그 때 여자거지는 이렇게 맹세한다.
“이 나라에서는 바로 나리 같은 분을 임금으로 받들어야 해요. 하지만 저에겐 아무 힘도 없어요.
저는 다만 나리를 제 마음의 임금으로 섬길 뿐이에요. 이 시간부터 저는 틀림없이 그렇게 할 거에요.”
 
경배의 길 도중에 만난 많은 어려운 백성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가지고 가던 모든 예물을 다 쥐어주고
타고 가던 말까지 처분해서 완전 거지가 되어 버린 후,
어느 바닷가에서 병들어서 쓸모없이 된 노예 대신 그의 어린 아들을 노예로 삼기 위해 채찍질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자신이 노예가 되어 30년을 보내버린다.
다 늙어 쓸모없이 되어서야 풀려난 그는 여전히 위대한 왕을 찾아 발길을 재촉하고
드디어 예루살렘에서 만난 예전의 여자 거지를 통해 지금 막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 앞에 나아가 무릎꿇는 순간 심장이 멈추어 버린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께 갖다 드리려고 했던 것들을 죄다 없앴습니다.>
왕은 몹시 부끄럽고 괴로웠다.
<황금, 보석, 아마포, 모피, 그리고 어머님이 단지에 가득 채워주신 꿀까지도, 모두 쓸데없이 낭비했습니다. 주여, 용서하소서!>
 
이미 눈 앞이 어두워지고 있을 때 불현 듯 여자거지의 마음이 생각났다.
그 마음은 그 여자가 그에게 자기 왕국으로 선사한 것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마음에 생각이 미쳤다.
그것은 자기가 받아본 유일한 선물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의 입술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주님, 저의 마음을, 저의 마음을…그리고 저 여인의 마음을…우리의 마음을 받아주시겠습니까?”
 
오늘날의 이 세상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아직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천주교에 호감을 갖고 교회를 찾아오고 있지만,
정작 그리스도를 왕으로 고백하는 신자들은 교회를 등한시 하고,
개인적인 관심이 더 크다고, 흥미를 잃어버렸다고,
세속적이라고 발길을 돌려 버리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우리는 교리를 배워 그리스도를 알고,
또 가끔씩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열변도 토하면서,
정작 우리 자신은 구세주의 위엄과 사랑에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은 왜인가?
미사는 분명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를 재현 하는 것이라고 알면서도
미사시간 내내 분심잡념과 잡담으로 미사를 그르치고,
성당을 나서면 오늘이 무슨 축일이었는지도 금새 잊어버리고 마는 것은 도데체 어떤 이유 때문인가?
 
“엄마 나 진돗개 맞아?”
“그래, 넌 진돗개야” “
그래도 미심쩍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엄마 나 진짜 진돗개 맞아?” “그럼, 넌 진돗개야” “근데 왜 난 자꾸 똥이 먹고 싶지?”
먹어야 할 것을 제대로 먹어야 한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으면 어느 새, 희귀한 잡종이 되어서 본 모습을 잃어버리게 된다.
신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되는 대로, 적당 적당하게, 똑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새치기 인생,
날치기 인생, 등쳐먹기 인생, 거짓말쟁이 인생, 졸지에 부자된 졸부의 인생을 산다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스도인도 아닌, 그렇다고 비신자도 아닌 이상한 괴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진짜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동방의 박사들이 참된 진리를 따라 꾸준히 자기의 길을 갔듯이,
우리도 이제부터라도 참된 길, 정직한 길, 바른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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