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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05 조회수1,231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1월 5일 주님 공현 후 화요일
 
 
 
“Give them some food yourselves.”
(Mk.6.37)
 
제1독서 요한 1서 4,7-10
복음 마르코 6,34-44
 
한 가난한 의과대학생이 돈이 다 떨어져 평소에 아끼던 서적을 헌책방에 팔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책방의 문이 닫혀 있는 것입니다. 그는 절망에 빠졌지요. 이제 먹을 음식도 살 수 없으니까요.

그는 집으로 돌아오던 중 너무나 허기져서 도둑질이라도 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어느 집을 찾아들어갔습니다. 때마침 어린 여자아이가 집을 지키고 있었고, 차마 도둑질을 할 수 없었던 그는 부끄러웠지만 너무나 배고프다며 아이에게 먹다 남은 음식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기꺼이 우유 한 병과 옥수수떡 한 조각을 그에게 내미는 것입니다. 그는 허기를 채우고 난 뒤, 반드시 이 은혜를 갚겠다면서 그 집의 주소와 아이의 어머니 이름을 받아 적어갔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어떤 부인이 병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딸은 너무나 걱정이 되었지요. 왜냐하면 수술비와 병원비를 대기에는 너무나 자신의 집이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병원의 계산서를 받아본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입원비와 수술비는 우유 한 병과 옥수수떡 한 조각임. 그리고 그 값은 이미 지불되었음.’

맞습니다. 수술을 맡은 의사는 바로 몇 년 전의 그 의과대학생이었던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작은 사랑의 실천이 이렇게 커다란 기적을 가져온 것입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음식을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청년은 의사가 아니라 도둑놈이 되어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어머니는 수술을 받아 치료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작은 사랑이 이렇게 모두를 바꿀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이 사랑의 기준을 따르기보다는 논리적이고 인간적인 기준을 더 앞세우곤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논리적으로 말하지요.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장정만도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자기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배불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논리적이고 인간적인 기준에 의지하기보다는 사랑의 기준을 따르라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사랑의 기준만 따른다면 그 모든 사람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불가능한 말씀이라며 포기합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직접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필요 없음에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는 것입니다. 즉, 우리들 역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눌 때 모두가 만족할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더 이상 논리적이고 인간적인 기준을 따르라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작아 보이는 사랑의 기준이라도 철저하게 따르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하십니다. 그 사랑만이 기적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을 통해서 모든 이가 부족함 없이 만족하며 살 수 있습니다.




분노에서 자기 자신을 억제하려면 다른 사람이 화내고 있는 모습을 냉정하게 관찰하면 된다.(세네카)




조-서 시대를 아는가(박치문)

한국 바둑사에 15년 ‘조-서 시대’가 있다. 바로 동갑내기 조훈현과 서봉수의 시대인데, 이들은 1975년 무렵부터 1990년 무렵까지 한국 바둑을 독점했다. 정상을 놓고 둘이서만 싸우고 또 싸웠다. 당연히 사이도 나빴다.

9세에 프로가 된 조훈현은 일본에서도 “100년 만의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 재능이 뛰어났고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컸다. 서봉수는 아버지를 찾아 기원에 갔다가 14세에야 바둑을 배웠고 뒷골목 바둑으로 잔뼈가 굵은 뒤 18세에 프로가 됐다. 조훈현은 전류 같은 감각에 머리가 비상해 세상사의 이해도 대단히 빨랐지만 서봉수는 그의 모친조차 “바둑이 없었다면 뭐했을지 몰라.”하고 푸념할 정도로 세상사에 무심했다. 오직 바둑에 한해서 타고난 집중력과 본능적인 생존력을 보였다.

조훈현이 군 입대를 위해 귀국한 1972년 무렵, 두 필생의 라이벌은 처음 만났다. 바둑 선진국 일본에서조차 촉망받던 조훈현은 무섭게 강했다. 서봉수는 그의 실력이 부러웠다. 당시만 해도 단칸방에 사는 짠돌이 신세였지만 조훈현에게 과감히 내기 바둑을 제안했다. 기껏 해야 한 판에 오백 원, 천 원짜리. 순진한 조훈현은 재미로 응했고, 서봉수는 헐값에 조훈현의 비기를 훔쳐 배울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나 일인자이던 김인 9단의 시대가 저물면서 조훈현은 일인자가 되고 서봉수는 그 뒤를 추격했다. 서봉수는 물론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내 가슴은 조훈현이 찌른 송곳 자국으로 상처투성이.”라고 서봉수는 탄식했다. 서봉수에 조훈현은 영원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한이 맺혔다. 그러나 강한 생명력을 지닌 서봉수는 지고 또 지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저 멀리 시베리아까지 쫓겨 갔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조훈현의 코앞에 나타나 피 터지며 덤볐다.

조훈현은 서봉수가 지겨웠고 성격도 상극이었다. 조훈현이 장미라면 서봉수는 잡초였다. 긴 세월, 둘은 무려 362번을 싸웠고 서봉수는 119승 243패를 기록했다. 바둑 사상 전무후무한 양자 대결이다.

그러던 서봉수가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조훈현은 나의 영원한 스승’이라고 고백해 화제가 됐다. 머리가 반백이 된 지금 되돌아보니 ‘조훈현이 없었다면 서봉수도 없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장미 조훈현은 그냥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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