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펌 - (110) 공황상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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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순의 | 작성일2010-01-07 | 조회수42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7048 작성일 2004-05-12 오후 1:23:19 2004년5월12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성 네레오와 성 아킬레오 순교자, 또는 성 판크 라시오 순교자 기념 ㅡ사도행전15,1-6;요한15,1-8ㅡ
(110) 공황상태 이순의
ㅡ생각없음ㅡ 김치부침개를 해도 먹먹하고, 샌드위치를 만들어도 먹먹하고, 김밥을 싸도 먹먹하고.... 그냥 아무런 생각이 없어졌다. 그러다가 열린 현관문이 소름으로 다가와 핏줄을 타고 쎄에한 꼬챙이처럼 느껴졌다. 얼른 현관문을 닫아야했다. 이렇게 큰 집에 나 혼자 있다. 반 지하에도 낮에는 텅 비어있고, 주인집 사모님도 늘 들락거리시는 분이라서 이 건물 에서 하루 종일 건물지기를 하는 사람은 나 혼자가 되었다. 새댁과 조무래기들이 뛰고 울고 웃고 소리 지르고 말썽피우고 인기척이 대단했던 이 집에 나 혼자 하루 종일 집 을 지키고 있다. 새로 이사 온 옆방 사람들은 언제 나가는지 언제 들어오는지 조차 가늠하기도 어렵다. 이사 오시던 날 뵙고, 전화며 이것저것 시설물 설치 부탁을 받고 열쇠로 문을 따고 딱 한번 들어가 본 후로 열쇠를 돌려주려고 밤중에 얼굴 한 번 뵙고 말았다. 새로 건물을 짓는 옆집에서 우리 집보다 몇 층씩이나 더 높이 설치한 가림용 포장들이 괴물처럼 서 있고, 그 철재 고정대롱을 밟고 한 발짝만 건너뛰면 우리 집 발코니쯤이 야 누워서 식은 죽 먹기보다 쉽게 공사장 사람들이 오를락 내릴락 하고 있다. 낮에는 현관문에 신경이 서서 마치 누군가 계단에 서 있는 것 같고, 밤에는 그놈의 옆 집 철고정대 때문에 유리창을 꼭꼭 잠그고 확인하고도 쉽게 잠들기가 어렵게 되었다.
맛있는 것을 해도 얼른 가져다 나눌 새댁이 없다. 또 엄마 따라서 "언니" 하고 불러줄 아가들이 없다. 그냥 덩달아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이 없다. 스스로에게 "외로운가?"라고 물어보니 외롭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생각 없음 이 더 옳은 표현이다. 그냥 공황상태다. 현관문 꼭꼭 잠그고 유리창도 꼭꼭 잠그고, 내 스스로에게 마음도 꼭꼭 잠글까봐 겁내 고 있다. 발코니에 흐드러진 장미와 찔레꽃에게 눈길도 줘 보고, 제라늄에게 예쁘다고 틈날 때마다 인사도 해 보지만 머릿속에 "생각 없음" 표시가 자꾸 자리 잡고 있다. 책도 보지 않고, 신문도 보지 않고, 묵상 글도 열심히 쓰지 않고, 컴퓨터도 재미없고, 청소도 잘 안하고, 빨래도 잘 안하고, 기도도 안한다. 이건 완전한 "공황상태"다. 내가 "공황상태"라고 진단을 했다.
새댁이 옆에 살아서 더운 여름날에 우리 함께 현관문 열어 놓고 솔솔 바람을 집안으로 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공존이라는 신뢰심이었다. 우리는 함께 산 것이다. 항상 열려있던 옆방의 현관문이 이제는 항상 닫혀있고, 언제나 창문으로 전등불 빛이 새어나와 계단에 어스름 그림자를 그리던 옆방의 유리창은 유령의 성처럼 컴컴한 마 법의 거울을 하고 있다. "나 지금 떨고 있니?" 아니다. 지금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 가지에 붙어있어도 말라버린 포도나무는 되지 말아야 할 텐데............
ㅡ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요한15,1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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