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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소(聖召)의 신비와 사명" - 1.1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16 조회수383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2010.1.16 연중 제1주간 토요일                                        
사무 상9,1-4.17-18;10,1 마르2,13-17

           
 
                                           
 
 
 
"성소(聖召)의 신비와 사명"
 
 


성소의 신비는 하느님의 신비입니다.
성소의 열쇠는 전적으로 하느님께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성소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만이 아시는 성소이기 때문입니다.
 
수도자는 물론 믿는 모든 이들 모두가 하느님께 불림 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냥 되는대로 목표 없이 살아가는 삶과
하느님께 불림 받고 살아간다는 삶의 차이는 얼마나 크겠는지요.
“나는 불림 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유대인 랍비 여호슈아 헤쉘의 말처럼,
불림 받음으로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 우리들입니다.
 
얼마 전 인용했던
‘위대한 침묵’에 나오는 카르투시안 수도승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주께서 불러 주셨으니, 제가 여기 있습니다.”

수도자는 물론 믿는 모든 이들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진정 우리의 고백이 될 때 방황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여기 살게 된 게 아니라
주께서 불러주셨기에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지금 여기 이 자리로 불러주신 주님이기에
다른 어디도 아닌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만나는 주님이십니다.
어제 본원에서의 종신서원 미사에 참여하여
가대와 제대 주변에 있는 90여명의 수도 형제분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보면서 성소의 신비와 풍요로움을 묵상했습니다.
 
키도, 얼굴도, 몸매도, 머리도,
‧… 똑 같은 모습의 수도자 하나도 없듯이
다 그만의 고유한 성소임을 깨달았습니다.
 
왜 하느님은 이 수도자들을 여기에 부르셨을까?
 
온갖 수도자들을 품에 안으시는 하느님의 가슴은 얼마나 넓으실까?
 
말 그대로 하느님만이 아시는 성소의 신비이자 성소의 풍요로움입니다.
 
만일 똑같은 붕어빵 같은 수도자들이라면
참 단조롭고 재미없는 삶일 것입니다.

성격이 좋아서,
마음이 좋아서,
건강이 좋아서,
인물이 좋아서,
가정 배경이 좋아서,
학벌이 좋아서,
기술이 좋아서,
일을 잘 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해 부르셨기에 여기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신 하느님의 뜻을 찾아 사는 게
우리의 평생과제입니다.  

“나를 따라라.”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세관에 앉아 있던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부르시자
그는 즉시 일어나 주님을 따라 나섭니다.
 
사람 눈에 세리와 죄인들이지
하느님은 인간의 편견과 선입견 넘어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보십니다.
 
그냥 마음에 드는 자를 부르십니다.
 
복음의 세리 레위와는 달리
사무엘을 통해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울은 참 잘 난 젊은이입니다.

“이름은 사울인데 잘생긴 젊은이였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그처럼 잘 생긴 사람은 없었고,
  키도 모든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은 컸다.”
주님은 아무도 차별하지 않고
잘 난이든 못 난이든, 부자든 가난 한 이든, 키가 큰 이든 작은이든,
당신 마음에 드는 이를 부르셔서 사명을 맡기십니다.
 
하여 형제들이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것은
하느님께 불림 받은 존재들 때문임을 깨닫게 됩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게 성소입니다.
 
내 성소가 귀하면 상대방의 성소도 귀합니다.
 
불림 받은 형제들에 대한 무시는
그대로 이들을 부르신 하느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의 성소를 보호하고 지켜주는 게
구체적 하느님 사랑이자 이웃사랑입니다.
 
성소 역시 은총이자 과제입니다.
 
저절로 성소의 완성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의 응답으로 풍요로워지는 성소입니다.
“이 사람이, 내가 너에게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내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이렇게 자랑스럽게 주님께 불림 받은 사울이었지만
그 성소의 사명에 충실하지 못함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사울이었습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 안에서 우리의 성소와 사명을 새롭게 확인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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