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7일 연중 제2주일
When the wine ran short,
the mother of Jesus said to him,
“They have no wine.”
And Jesus said to her,
“Woman, how does your concern affect me?
My hour has not yet come.”
His mother said to the servers,
“Do whatever he tells you.”
(Jn.2.3-5)
제1독서 이사야 62,1-5
제2독서 1코린 12,4-11
복음 요한 2,1-11
저는 작년에 사제서품을 받은 뒤 처음으로 보좌신부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보좌신부가 내일 모레, 그러니까 돌아오는 화요일에 다른 본당으로 인사이동이 되어 떠납니다. 1년 동안 정도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헤어진다니 서운하기만 합니다. 하긴 같은 교구 내에서 계속해서 만나겠지요. 하지만 그동안 잘 해 준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사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함께 산다는 것이 쉽지 않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가졌습니다. 제 생각과 다른 점이 많았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생활하면서 보좌신부의 장점들이 계속해서 보였고, 특히 저에게 맞춰 주려는 보좌 신부의 노력들을 보았기 때문에 점점 행복한 삶을 함께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보좌신부는 저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빨리 다음 부임지로 갔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우리 본당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미사도 다른 본당에 비해서 많고, 해야 할 일들도 꽤 많습니다. 그렇다고 본당신부인 제가 특별히 배려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반발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보좌신부는 저의 말을 무조건 들어주었고 또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그 결과 저를 포함해서 신자들이 1년 동안 큰 행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순명이 간석4동 성당에 큰 행복을 가져다주었던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기적이 일어나는 과정을 보면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먼저 성모님과 예수님의 대화만을 따로 떼어서 보지요.
성모님께서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성모님께서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말하십니다.
소위 사회말로 성모님의 ‘무대뽀 정신’이 돋보이는 구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카나의 혼인잔치는 성모님과 예수님 두 분 당사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즉, 이 두 분은 제3자의 입장일 뿐이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려움 속에 있는 이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시면서 무조건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말씀하시는 성모님이십니다. 또한 예수님도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무대뽀 정신’에 그대로 순명하십니다. 그리고 그 결과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기적이 이루어졌고, 이 혼인잔치는 더욱 더 흥에 겨운 기쁨의 잔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아직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에 억지로라도 순명하는 그 모습의 결과를 통해 커다란 기쁨의 잔치가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행해야 할 바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말씀에 순명해야 합니다. 또한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순명의 마음으로 그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때 우리 안에서도 카나의 커다란 기쁨의 기적이 재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1년 동안 수고한 정성종 요한 베르크만스 신부님,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가장 초라한 꽃이라도 때로 눈물로 다 못할 깊은 생각을 준다(워즈워스).
성장은 고통을 수반한다(‘행복한 동행’ 중에서)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가 인터뷰할 때마다 자신의 멘토로 꼽는 첼로의 거장 미샤 마이스키. 한껏 부풀어 오른 블라우스 차림에 헝클어진 은발인 그는 클래식계의 팝스타라는 별칭을 자리 정도로 클래식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에 감춰진 그의 과거는 회색빛이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스물셋이던 1970년, 18개월 동안 영문도 모른 채 수감 생활을 했다.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을 다니며 각종 콩쿠르에서 유명세를 떨칠 때였다. 그는 당시 받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2년 동안 첼로를 잡지 못했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그리고 1972년 11월 8일, 다 망가진 첼로 하나를 들고 이스라엘로 망명했다.
“사람들은 나의 쾌활한 면만 보지만 나는 18세에 아버지를 잃었고 그 이튿날 콩쿠르에 나가야 했습니다. 제2의 아버지인 스승 로스트로포비치의 죽음 또한 커다란 시련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감옥에 갇혀 세계의 부조리에 대해 고민했던 경험이 음악인으로 사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며, 1972년에 다시 태어난 자신은 현재 38세의 젊은이라며 크게 웃는다.
“지구의 공기는 오염돼 가고 물은 부족해지죠. 하지만 뜨고 지는 해와 흘러가는 구름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아름답지 않은 경험도 유용한 쪽으로 바꿔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어린 나이에 겪은 아버지의 죽음, 갑작스런 수감 생활, 음악인으로서의 고충들이 모두 첼리스트로 성장할 수 있는 거름이 됐다는 얘기다. 한 해에 100회 이상을 공연하며 세계를 누비는 거장의 연주가 깊이 있는 이유는, 내면 깊숙이 고통을 이겨 낸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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