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펌 - (115) 십 퍼센트=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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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순의 | 작성일2010-01-17 | 조회수380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7156 작성일 2004-05-31 오후 3:10:03
2004년5월31일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ㅡ스바니야 예언서3,14-17 <또는 로마 12,9-16ㄴ> ;루가1,39-56ㅡ
(115) 십 퍼센트=10% 이순의
ㅡ존중ㅡ 생계에 비상사태가 생겨서 일을 하려고 했을 때는 집에서 하는 일을 제외한 어떠한 일도 능력이라고 자랑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마음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골랐는데 그것이 베이 비시터라는 일이다. 베이비시터는 방문육아를 담당하는 일이다. 소개해 주는 업소에 회비를 내고 약간의 교육을 받은 후 일이 주어지면 가정에 방문하여 아기를 돌보는 일이다. 다행히 기혼자 에다 아이를 길러 본 경험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교육은 없었지만 내 스스로의 마음에 안정이 되지 않는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시간제 일을 맡았다. 아이들을 두고 쇼핑을 해야 하거나 병원을 가야하거나 모임에 가야하는 젊은 주부들이 시간제로 부르면 그 시간 동안만 가서 아이를 돌보아 주는 일이다. 결혼을 해서 생계에 비상사태가 생길 때면 간혹 이것저것 일을 해 보기는 했으나 일종의 서비스업에 종사 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천성이 아이를 예뻐하고 좋아하는 성향이라서 아가들을 홀려 내는 데는 단 한 번도 어려움이 없었다. 그만큼 어려운 상황에서 부족함 없이 내 아이를 키워낸 비장한 비법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충분히 활용했기 때문이다. 첫 날에 아이를 돌보아 주고 삼 만원을 받았는데 그 아파트에서 버스정류장까지 오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가진 것을 몽땅 남에게 떼어버린 남편을 원망하지 말 것을, 우울증 하느라 누워있지 말 것을, 마음을 놓아버려서 상심이나 하지 말 것을, 진즉에 아가들이랑 놀아 주고 가진 재주풀이라도 했더라면 돈도 벌고, 아가들한테 봉사도 해 주고, 좋았을 텐데.......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하염없이 울다가 집에 와서 고스란히 그 돈 삼 만원을 남편 손에 쥐어 주며 다시 열심히 살자고 했었다.
마음과 몸을 놓아버려 남편을 너무 오랫동안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 러나 남편은 돈을 벌려고 다닌다 생각하면 자네 마음에 병이 들 성향이니까 돈 번다고 다니지 말고 취미를 얻으러 다닌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일하는 날자가 점점 늘어났다. 여기저기 가는 집도 많아졌고, 엄마들도 아가들도 세 상의 조약돌만큼 다양했다. 몹시 재미를 붙였다. 일반적인 어머니들이 하지 않는 놀이를 하는 나를 아가들도 좋아했지만 엄마들은 베 이비시터의 수준을 넘는 개인과외 육아교습 같아서 더 욕심을 내곤 했다. 당연히 일 한 일당에 비해서 내 드려야 하는 거스름돈 정도의 양보를 기꺼이 허락 받기도 했다. 수입이 짭짤해 진 것이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이 제 아이한테 만큼은 아낌없이 주는 성향이 있어서 더욱 그러한 것 같았다. 점점 내 자신의 육아법이 상당한 상품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만의 싹이 죽순처럼 올라와 있을 때쯤 하루가 되지 않는 분량의 일거리를 부 탁 받았다. 차비 제하고 오고가고 시간제하고 좀 성에 차지 않았는데 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골라잡아 내 마음대로 가고 안가고 할 수도 없었지만 내 입맛에 맞춰 고집 낼 군번이 아니었으므로 갔다. 역시 열심히 아가들과 놀 았다. 시간이 짧았으므로 놀이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아이의 엄마가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주면서 거스름 돈 이천 원을 요구했다. 그 무렵에 나는 거의 돈을 지니고 다니지 못 했으므로 실제로 거스름돈을 내어줄 여유가 없었다. 이천 원이 없으 니 잔돈으로 주시라고 말씀드렸다. 그엄마는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갑을 열어 보이며 진짜로 교통카드 뿐이니까 거스름돈을 내어 드릴 수 없다는 표시를 증명 해 보이기까지 해야 했다. 그엄마의 눈빛에서 상당한 모욕감을 느껴야 했다. 정작 잔돈이 나온 것은 그엄마의 지갑에서 나왔다. 그날 이 후로 잔돈을 다섯 장씩 준비하는 습관을 기르기도 했지만 그엄마에게서 느낀 모멸감을 만회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동안 서로 잘 해 주시던 엄마들만 만나느라고 생각하지 못 했던 결단을 내렸다.
첫째, 내가 아이를 돌보는 동안에는 절대로 아기 엄마의 교만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인 자녀를 남에게 맡기면서 자녀를 돌보는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 는 어떠한 상황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아이를 상대로 일을 해서 돈을 번다면 그 10%를 반드시 그 아이에게 환원한다. 10%를 환원 할 수 없을 때는 하늘을 향해 어떠한 기도도 하지 말 것! 나는 일을 놓는 날까지 그 원칙을 지켰다. 아니 남편의 일이 조금씩 풀리면서 10%의 벽은 훨씬 넓게 무너져 버렸다. 그런데 그 원칙은 아주 큰 자유를 나에게 선물하고 있었다. 돌보는 아가를 진짜로 내 아가처럼 돌보고 있었다. 산책이라도 하게 되면 이해타산을 하지 않고 진짜 엄마의 마 음으로 아가의 타는 목구멍만 생각하여 마실 것을 사서 물릴 수 있었고, 아가랑 가고 싶은 데는 어디든지 갈 수 있었고, 길을 가다가도 예쁜 것이 있으면 아가 생각에 사둘 수 있었고, 책방에 가서도 아가 책만 골라서 사게 되었다. 물질적 조급함이 없었으므로 아가는 필요하면 언제든지 엄마처럼 투정을 부릴 수 있는 아가다운 관계로 활발해 지고 있었다. 그런 세세한 내용을 돈으로 계산하려 했다면 시터 엄마와 딸의 관계가 결코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일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어차피 돈 벌자고 나왔으면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해야지 공자님도 아닌데 척 한다고 비웃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가를 돌보고 싶었고, 자기의 아가를 돌보는 대리 엄마를 천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진짜 엄마를 용납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아가를 상대로 돈을 버는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고 싶지 않았다. 10%의 비움은 모든 것을 자유롭게 했다. 10%의 비움은 모든 것을 여유롭게 했다. 10%의 비움은 모든 것을 너그럽게 했다. 10%의 비움은 모든 것을 이해하게 했다. 10%의 비움은 나를 성실하게 했다. 10%의 비움은 내 자신을 당당하게 했다. 10%의 비움은 더 나아가 20%도 30%도 비울 수 있는 만족을 허락하고 있었다. 그 10%의 비움은 결코 물질의 비움이 아니었다. 물질만 비웠더라면 그렇게 큰 사랑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조차 나에게 10%를 비워 주지는 않은 것 같았다. 10%를 비워 주면 20%를 바랐고, 20%를 비워주면 30%를 바라는 것이 세상의 인심이 었다고 느끼고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생명을 생명으로 대우할 줄 아는 양심에는 내 스스로 떳떳할 수 박에 없다. 타인에게 진정한 겸손을 드릴 수 있는 길은 그 생명을 생명으로 보는 것이다. 생명을 수단으로만 보지 말고, 내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만 보지 말고, 내 편리를 위한 수단으로만 보지 말고, 물질적 대가로 계산 하는 수단으로만 보지 말 고, 생명을 생명으로 보아야 겸손의 길이 보인다.
이 시대가 존중=돈이라는 관념에 종속되고 있다. 돈이 아니라도 진실은 있는 법인데 지금의 세상은 돈이 비싼 사람이 최고의 진실이 되 어 있다. 그래서 생명이 생명으로 계산 되지 않고 돈으로 계산되고 있다. 비싼 돈을 지 불하면 어떤 것도 취득할 수 있다는 계산법이 10%를 비우는 것이 아니라 10%를 더 얻 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자기 자신이 생명인데도 불구하고 생명으로서의 보장을 더 중요시하기보다 더 비싼 대가의 지불을 요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노동현장의 근로 자도, 스승이 될 수 없는 선생님도, 혼을 담았다는 예술가도, 국민의 이름을 빌려 사는 정치가도, 의리는 이미 물 건너간 조폭들마저도, 생명이 돈에 점령당하는 안타까운 시 대를 살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지금 거리에 나가 당신이 가진 10%만 내어 놓으시오 라고 요구한다면 몰매를 맞지 않 으면 다행인 세상이다. 나라님을 업무정지(탄핵) 시키고도 나라가 잘 돌아 가더니 이제는 총리자리가 비어있 어도 걱정이 안 된다. 하도 큰 일만 격고 살다 보니 백성들은 어지간한 중화상이 발생 을 해도 걱정할 줄도 모른다. 나라님도 없이 잘 살았는데 그깟 총리쯤이야 걱정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 오늘은 높으신 동정 마리아께서 낮은 데로 방문하신 날이다. 그 방문의 영광에 엘리사 벳은 감동의 찬미가를 부른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그 감동의 찬미가가 한없이 부러운 날이다. 높으신 분의 방문을 받아 찬미가를 올릴 수 있었던 엘리사벳이 한없이 부러울 뿐이다. 주님은 10%가 아니라 당신의 목숨마저 내어 놓으러 오신 분이시다. 나에게도 감동의 찬미가를 부를 날이 있을까?
<정치하는 이 새끼들아! 웃기지 마라. 상생의 정치? 웃기고 자빠졌네. 너희들이 10%를 비우는 만족을 아느냐? 이 개만도 못한 새끼들아?! 곧 장마철도 다가오는데, 작년의 근 심도 마무리가 안 되어서 정부가 할 일이 산재 되어 있다는데, 곧 또 어려운 시절이 오 면 피눈물은 백성이 흘려야 하는데 너희들이 국민을 생각허냐? 이 새끼들아?! 총리가 국민을 위해서 있어야지 당을 위해서 있냐? 대가리에 똥만 잔뜩 들은 한심한 새끼들아! 너희가 존중이라는 걸 아느냐? 언제나 좀 국민을 방문하는 정치를 할래?????>
ㅡ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배 속에 든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 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 소리로 외쳤다. 루가1,40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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