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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28 조회수994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1월 28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Take care what you hear.
The measure with which you measure will be measured out to you,
and still more will be given to you.
To the one who has, more will be given;
from the one who has not, even what he has will be taken away.
(Mk.4.24-25)
 
 
제1독서 사무엘 하권 7,18-19.24-29
복음 마르코 4,21-25
 
 
어떤 사람이 어느 유명한 병원에서 폐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명의로 소문난 이 병원의 의사 선생님께서는 폐결핵에 잘 듣는 약과 그 약을 사용하는 방법을 처방해 주었지요. 워낙 유명하신 선생님이라 이제까지 그 어떤 사람도 이 분의 처방전과 약에 대해서 의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만은 달랐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처방과 약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면서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폐결핵이 낫지 않는 것은 물론, 어리석은 바보 같은 사람이라면서 사람들의 놀림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말을 믿고 따라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들 역시 이렇게 어리석은 환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과 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과 힘을 선택하면 보다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또한 마지막으로는 영원한 생명까지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방법과 힘이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는 많은 성인 성녀들의 선택을 봐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성인 성녀들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 이 세상 안에서 기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는 하느님 나라에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 방법과 힘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만을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안의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만 이야기합니다. 왜 이러한 고통과 시련을 나에게 주시냐고 주님을 원망하고만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주님의 사랑 가득한 선물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등불을 등경 위에 놓아야 한다는 당연한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 역시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선택을 당연히 해야 함을 분명하게 제시해주십니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남한테 주는 것이 아깝고 어리석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욕심과 아쉬움 속에서는 사랑이 열매 맺기 힘듭니다. 대신 선행과 나눔이라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행하는 지극한 정상인인지, 아니면 이 세상 것만을 소중하게 여김으로 인해 어리석고 바보 같은 사람이 되어 있는 지를 묵상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일은 누구에게나 미지의 영역이다. 다음 모퉁이를 돌았을 때 무엇이 기다리는지, 돌아보지 않고서는 짐작할 수 없다(무라카미 하루키).





장단을 맞추는 것은(‘좋은생각’ 중에서)

중국 제나라 안영은 시시비비를 엄격히 가려 임금에게 올바로 전하는 재상이었다. 또 돌려 말하는 방식으로 임금 스스로 깨닫게 하는 슬기도 지녔다.

어느 날, 한 신하를 본 임금이 기쁜 얼굴로 안영에게 말했다.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 나하고 장단이 잘 맞는단 말이야.”

그러자 안영은 고개를 저었다.

“저 사람은 전하의 의견에 장단을 맞추지 않고, 단순히 동조할 뿐입니다.”

“장단을 맞추는 것과 동조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장단을 맞춤은 조화를 뜻하는 것으로,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이루어집니다. 비유컨대 그것은 국물 같습니다. 물, 불, 고기, 소금 등을 모두 넣고 끓여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는 맛을 내는 것이지요. 사람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전하가 긍정하는 것 속에 부정할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가려내서 전하의 긍정을 완전하게 해야 합니다. 거꾸로 전하가 부정하는 것 속에 긍정할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가려내서 전하를 옳지 않은 부정에서 구하는 것이 조화입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전하가 긍정하는 것을 긍정하고, 부정하는 것을 부정하니 그것은 동조지 조화가 아닙니다.”

안영의 말처럼 윗사람 말에 동조만 하는 사람은 윗사람을 망치고 자신도 망칠 수밖에 없는 법. ‘동조’에 앞서 ‘조화’를 우선시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Innige Verbundenheit - Ralf  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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