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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봉헌과 혼인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02 조회수1,253 추천수16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주님 봉헌 축일 - 봉헌과 혼인

 

 

 

오늘 유투브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한 대형교회 목사님의 십일조에 대한 설교를 조금 들었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이것저것의 예를 들면서, 그것을 내지 않으면 질병이든, 사고든, 세무조사든, 어떤 것을 통해서라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몫을 꼭 챙겨 가신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몇 배로 갚아 주시니 빚을 내서라도 꼭 정확히 셈해서 십일조를 내라고 설교를 했고 앉아있던 신도들은 계속 아멘이란 말로 응수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렵지 않게 개신교 목사님들이 십일조에 대해 강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봉헌이란 말이 나오면 십일조를 가장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십일조는 내야합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봉헌’이란 단어의 10분의 1의 의미밖에는 없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되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또 특별히 봉헌생활을 하시는 분들의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봉헌’이란 말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새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우리가 삼위일체 교리에서 배웠듯이 ‘자신을 봉헌함’은 ‘사랑’과 ‘일치’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즉, “아버지 - 성령님 - 아들”의 모델에서 아버지가 ‘당신 자신을 비우시는 것’이 바로 아드님께 성령님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동시에 아들이 아버지께 다시 성령님을 보내시는 것이 아들의 ‘자기 비움’입니다. 또 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드님께 ‘순종’함으로써 당신 자신을 비우시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 자기 비움이 가장 명확하게 나타나는 곳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입니다. 또 이 죽음과 부활을 일시에 체험할 수 있게 해 준 것이 곧 그리스도의 ‘세례’였습니다. 즉, 세례는 죽고 다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죽이니 성령님을 통한 부활이 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세 분은 한 몸을 이루십니다.

그리스도는 이 비움을 통한 사랑의 일치를 당신의 백성과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인간에게 내어주시는데 그 모습이 “성체”입니다. 인간 또한 그 성체를 영하기 위해 자신 안에 공간을 마련해 놓아야하는데 이것이 바로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성령님을 모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온전히 비우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듯이 인간도 그리스도와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워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봉헌’의 의미입니다.

이 봉헌은 ‘감사 (Eucaristia)’의 형태로 표출됩니다. 이 ‘감사’는 찬미로 표현되고 그래서 성경에선 ‘찬미의 제사’ (히브 13,15)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어떤 봉헌이든 ‘감사’의 마음이 들어있지 않으면 그것은 봉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하느님께 봉헌하시면서 먼저 ‘감사의 기도’를 드렸음을 명심해야합니다. 감사를 통해서 빵과 포도주가 생명 자체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든 미사 중에 자신의 온 마음을 비워 주님께 봉헌하지 않는 사람은 비록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실지라도 그 마음 안에는 자신이 봉헌한 만큼만 은총이 채워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을 온전히 비워야만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고 자신 안에 자신으로 가득 채우는 것을 ‘죄’라고 하고 그 ‘죄’는 ‘원죄’라는 형태로 모든 인간에게 인성을 통해 전달됩니다.

영혼은 하느님의 영을 받아 성모님처럼 자신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고 싶지만 그 안에 ‘교만과 육욕과 소유욕’이 있기 때문에 하느님과의 온전한 일치를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교만의 죄와, 그것을 통해 들어온 육욕의 죄, 또 그것으로 전달되어 카인이 짓게 되는 소유욕의 죄를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육욕과 소유욕도 교만에서 저절로 나온 것이기에, 교만과 육적인 이기심이 카인의 제사가 하느님께 역겨운 것이 되게 한 이유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아담과 하와 이후로 하느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릴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봉헌을 하지 못하니 동시에 사제직도 잃게 된 것입니다. 누구도 자기 자신을 온전히 그리스도께 봉헌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어 “나는 내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 (갈라 2,19)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일치는 결국 자신을 죽이고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것인데 죄라는 것이 들어와서 이기적이 되어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지 못하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봉헌의 의미가, 따라서, 三仇 (교만, 육욕, 소유욕)를 이기는 福音三德 (순명, 정결, 가난)에 있음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와의 일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 십자가엔 순명만이 아닌, 자신의 육신을 이기고 하느님 아닌 다른 것은 바라지 않는 가난까지 다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봉헌’은 추상적인 행위가 아니라 구체적인 ‘복음삼덕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이 봉헌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이 ‘수녀님’들의 봉헌생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여 아버지와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수녀님들은 ‘여성’으로서 신랑이신 ‘그리스도’께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는 상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교회가 나아가야 할 상징적인 모습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수도생활을 어떤 분들은 ‘축성생활’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신학적으로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축성’이란 거룩하게 만드는 것으로써 ‘성체’의 축성에 가장 적당한 말입니다. 수도생활을 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몸처럼 온전히 거룩하게 변하는 것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거룩해짐은 서품이나 서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향주삼덕 안에서의 복음삼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한 인간으로서 온전한 봉헌의 모델을 찾으라면 성모님 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봉헌이란 자신을 비워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지닌 모든 것, 즉 빵과 포도주를 봉헌함으로써 성자 자신인 성체와 성혈을 받는 것처럼, 자신을 바치지 않으면 어떤 주고받음에서 오는 혼인의 일치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처럼 하느님께 무엇을 봉헌한다는 것은 그 봉헌을 통한 하느님과의 합일의 기적을 체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원죄가 없으십니다. 그 이유는 태초부터 하느님께서 원죄의 물듦에서 보호해 주셨기 때문이고 그만큼 자아가 비워졌기에 완전한 순종, 즉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하며 당신 자신을 아버지 뜻에 봉헌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물론 그를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을 나누어 가지시게 됩니다. 봉헌을 통한 온전한 한 몸이 되는 모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헌생활이란 이 한 말씀으로 축약될 수 있습니다.

“나를 따르려거든 네 자신을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한다.” (마태 16, 24)

누구든지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버려야합니다. 자신을 버리는 것이 곧 매일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매일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곧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다운 봉헌은 참다운 하와가 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순종으로 참다운 하와가 되어 신랑이신 아버지와 한 몸을 이루신 것처럼, 또 성모님께서 온전한 순종으로 완전한 하와가 되어 하느님과 한 몸을 이루셨듯이, 우리도 그리스도께 온전히 순종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하와가 되는 것이 바로 봉헌입니다. 왜냐하면 봉헌이란 말엔 자기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주 강하게 들어있는데 그것이 자신을 버린 완전한 믿음과 순종의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봉헌의 의미가 그저 독신으로만 사는 것, 사제 수녀 복장만 입는 것을 훨씬 넘어선 혼인의 신비를 사는 것임을 묵상해 보도록 합시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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