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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02 조회수1,098 추천수1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When the days were completed for their purification
according to the law of Moses,
Mary and Joseph took Jesus up to Jerusalem
to present him to the Lord,
(Lk.2.22)
 
 
제1독서 말라키 3,1-4
복음 루카 2,22-40
 
 
프랑스 파리의 어느 성당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한 헌금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지만, 서양에서는 봉헌 바구니를 돌릴 때 만약 큰돈을 가졌는데 적게 내고 싶으면 봉헌 바구니 안에 큰돈을 놓고 잔돈을 거슬러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자기 형편대로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것은 흉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아무튼 그 봉헌 바구니가 어느 눈먼 사람 앞에 멈추었습니다. 그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도 잘 아는 사람으로 단 1프랑도 헌금할 수 없는 형편의 가난한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자그마치 27프랑을 접시에 세어서 놓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옆 사람이 “당신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하고 묻자, 눈먼 사람은 웃으며 이렇게 말하더래요.

“저는 눈이 안 보이지요. 그런데 제 친구에게 물어보니 저녁 때 불을 켜는 비용이 일 년에 27프랑이 든다고 하더군요. 나는 불을 켤 필요가 없으니 일 년이면 이만큼의 돈을 저축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모은 거죠. 그래서 예수님을 몰라 어두운 곳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참 빛이 비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봉헌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자기에게 쓰고 남은 것만을 봉헌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봉헌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늘 부족하다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특별히 주님 봉헌 축일을 맞이해서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고 다시 제자리에 위치시켜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 인간을 위해서 희생 제물로 봉헌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세례 성사를 통해 우리 역시 주님 앞에 봉헌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봉헌에는 예수님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은 철저히 하느님의 뜻에 맞게 생활하신 반면, 우리들은 나의 뜻에만 맞게 살아가면서 제대로 된 봉헌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제대로 봉헌하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그 이유를 제 방 안에서 아주 쉽게 찾게 됩니다. 즉, 너무나도 많은 물건들이 방 안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짐이 많을 수 있을까요? 물론 필요에 의해서 구입한 것도 있지만, 필요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관심사로 인해 주님께 제대로 된 봉헌의 삶을 살지 못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의 유혹에서 벗어나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제대로 된 봉헌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은 수양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이다.(플루타크)





이백 원의 가치(안소현, ‘행복한 동행’ 중에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신없이 밥을 푸다가 떨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식사를 마친 손님 한 분이 연거푸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매끼마다 인사를 잊지 않는 이들이 많지만, 유독 그분 모습이 잊히지 않는 것은 까만 얼굴 위로 흘러내리던 눈물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일요일 아침에 열리는 이곳은 청량리 근처에 위치한 무료 급식소, 아니 유료 급식소이다. 단돈 이백 원에 제공받은 소박한 식사가 그에게는 그렇게 눈물 나도록, 목이 매여 떨리도록 감사한 한 끼였나 보다.

거리의 노숙인들, 한 끼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든 일용직 노동자들, 외로운 독거노인들이 이곳의 손님이다. 달랑 여섯 개의 탁자만 놓인, 누추하기 짝이 없는 곳이지만 2시간 반 동안 많게는 500명 정도의 손님이 길게 늘어서 순서를 기다린다.

처음 이곳과 연이 닿아 봉사하러 간 날, 이백 원은 뭐 하러 받나 생각했다. 하루는 처음 들른 이 하나가 “좋은 일 하려면 공짜로 주지, 이백 원은 뭐 하러 받아?”하고 까칠한 말을 뱉었다. 그 말에 수사님께서 버럭 성을 내셨다.

“이 밥이 어떤 밥인데!”

턱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굳이 그 돈을 받는 이유는 이 밥이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백 원은 그들이 떳떳하게 손님으로 행세할 수 있는 식대인 동시에, 그 식사 한끼에 담긴 많은 노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기도 하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그분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무엇에 그렇게 간절히 감사해 보았는가 생각해 본다. 주머니 속에 동전 두 개가 짤랑짤랑 소리를 낸다. 그 이백 원의 가치를 짚어 보며 나는 조용히 말한다. 행복하다고, 그리고 감사하다고.
 
 
 
Tom Barabas & Dean Evenson - High Fl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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