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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국은 한계가 있다" - 2.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03 조회수501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2.2 화요일 주님 봉헌 축일(봉헌생활의 날)
                                
말라3,1-4 루카2,22-40

                              
 
                      
 
 
 
"천국은 한계가 있다"
 
 



하느님은 하느님이고 인간은 인간입니다.

하느님은 무한하시고 인간은 유한합니다.
 
유한한 존재, 바로 이게 인간의 정의입니다.
 
생노병사를 통해 한계를 깨달아 가는 인간입니다.
이 한계를 깨달아 살아가는 것이 지혜요 겸손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철이 난다는 것은 자기 한계를 알아간다는 것입니다.

한계를 벗어나게 하는 끊임없는 유혹입니다.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 죄입니다.
한계를 벗어날 때 즉시 제자리의 한계로 돌아오는 게 회개입니다.
 
한계를 크게 벗어나 죄를 지은 이들이,
감옥에 가는 것은 감옥의 한계 안에
자기를 훈련하며 살아보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하느님은 천지창조 때부터 한계를 정하시어
그 경계를 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하와가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한계를 넘어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하와 부부는 에덴동산의 한계에서 쫓겨났고,
카인은 한계를 넘어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
역시 자기 땅의 한계에서 쫓겨나 정처 없는 유랑 길에 올랐습니다.

한계를 벗어나 무한 경쟁 속에 질주하는 신자본주의 현대 문명입니다.
 
어제 오후  부터는 계속 한계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얼마 전 읽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다음 구절의 영향이었습니다.
“지옥은 한계가 없다.
  하나의 장소로 경계선을 그을 수도 없으니,
  우리(지옥의 저주받은 자들)가 있는 곳이 지옥이다.
  그리고 지옥이 있는 곳에 우리는 항상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한계를 넘어
무한경쟁의 체제 안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대한 예언 같아 섬직한 느낌이 듭니다.
 
밀턴의 ‘실낙원’에서 사탄은 다음처럼 말합니다.

“나 자신이 지옥이다.”

끝없는 탐욕에 끊임없이 한계를 넘어,
제 정신을 잃고 사는 이들 바로 그 자신이 사탄이자 지옥입니다.
 
이어지는 다음 내용이 좋습니다.

“우리의 인간적이고 지상적인 한계들은,
  제대로 이해될 때,
  속박이 아니라 오히려 형태상의 정교함과 우아함을 유발하고,
  관계와 의미의 충만함을 가져오는 조건이 된다.
  …작은 장소 하나는 일과 배움의 기회를 베풀어주고,
  아름다움과 위안과 기쁨의 원천을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한 사람의 일생 혹은 몇 세대 안에 고갈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한계를 모름’이라는 질병에서 회복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신과 같은 동물이 될 권리를 갖고 있다는 생각,
  즉 우리가 잠재적으로 전지전능하며
 ‘우주의 비밀’을 발견해 낼 준비가 되어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바로 우리들의 정주생활의 축복을 말해 줍니다.
 
'지옥은 한계가 없다.' 반대로 '천국은 한계가 있다.'로 말할 수 있습니다.
 
제자리의 한계에 충실할 때 그 자리가 천국임을 깨닫습니다.
 
평생 수도원 천국에서 정주의 한계를 살고 있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수도승들의 한계는 수도원이고 사제들의 한계는 제대입니다.
 
끊임없이 한계를 벗어난 삶, ‘한계를 모르는 병’
바로 이게 오늘날의 문제입니다.
 
끝없는 소비에 날로 계속 늘어나는 쓰레기들, 바로 이게 지옥입니다.
 
제 자리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고
한계에 충실하며
쓰레기를 내지 않고 사는 게 잘 사는 삶입니다.
 
첨단문명의 이기들
즉 자동차, 핸드폰, 인터넷으로 인해 편리하고 빨라졌습니다만
역설적으로 더욱 바빠지고 여유가 없고 각박해 졌으니
이게 바로 지옥입니다.
 
좀 불편하고 어렵고 느린 가운데 한계를 넘지 말아야 하는 데
이런 문명의 이기들로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버린 결과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주신 천국을 지옥으로 바꿔가는 사람들입니다.
 
때로 ‘있는 그대로’의 한계를 놓아두지 못하고
한계를 넘어 자연을 망가뜨리는 토목건설기계들을 볼 때
화가 치밀곤 합니다.
 
하늘과 땅과 강의 조화를 무너뜨리는,
한계를 무너뜨리는 4대강 사업의 무모함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자연이든 공동체든 제자리의 한계에 충실할 때
균형과 조화, 질서의 아름다운 천국이지만,
제자리의 한계를 마구 벗어날 때,
불균형과 부조화, 무질서의 지옥으로 변합니다.
 
제 시간, 제 자리의 한계에 충실하라고 법과 규칙이 있고,
매일의 일과표가 있습니다.
 
수도자의 모든 수행들, 다 한계의 수련, 절제의 훈련입니다.
 
이 검정 수도복은 한계에 충실 하라는 상징이며
가난, 정결, 순종의 3대 서원 역시
한계를 넘지 말고 한계에 충실 하라는 서원입니다.
 
인간 한계에 매이신 하느님이,
바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신 ‘한계의 모범’이 예수님이십니다.
 
“매일 분 아니면서 스스로 매여, 율법에 공순하게 순종하셨네.”

아침 성무일도 시 찬미가 한 구절입니다.
 
오늘 복음의 시메온과 한나를 보십시오.
 
의롭고 독실하게 제자리의 한계에 충실하며 봉헌의 삶을 살다가
주님의 구원을 체험한 시메온이요,
역시 성전을 떠나는 일이 없이 평생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 낮 하느님을 섬기며 제자리의 한계에 충실하며 봉헌의 삶을 살다가
주님을 구원을 체험한 한나입니다.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참으로 한계에 충실했던 예수님의 부모, 요셉, 마리아였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찾던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제자리의 한계에 충실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말라기 예언자의 말씀처럼,
주님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십니다.
“주님,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보았습니다.”(루가2.3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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