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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그리스도의 교육 방법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07 조회수881 추천수19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5 주일 - 그리스도의 교육방법

 

 

 

어느 날 파블로 피카소가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유명한 피카소를 본 한 귀부인이 그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간 여유가 되신다면 제 초상화를 그려주실 수 있으세요? 저는 평소에 선생님 그림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물론 보수는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피카소는 선뜻 승낙하고는 연필로 그녀의 얼굴을 스케치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분 뒤에 다 된 그림을 그 귀부인에게 주었습니다. 귀부인은 만족하며 보수를 어느 정도로 드리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피카소는 50만 프랑을 요구하였습니다. 뭐 잘은 모르지만 수천만 원은 될 것입니다.

부인은 놀라며, “아니 몇 분 만에 이 스케치를 해 놓고 그렇게 많은 돈을 요구할 수 있나요?”라고 따졌습니다.

피카소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이 그림을 그리는 데 39년이 걸렸습니다.”

당시 피카소의 나이가 39세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도 지금까지의 교육의 결과입니다. 예수님도 30년을 조용히 지내시고 3년에, 또 특별히 십자가의 희생으로 모든 것을 바꾸어놓으셨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한 순간을 살더라도 그 순간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석봉도 중도에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하여 집으로 돌아왔지만 어머니는 그의 글 실력이 많이 모자라다는 것을 자신의 떡 써는 능력에 비추어 깨닫게 합니다.

신학교도 7년이라는 세월 동안 좋은 사제를 만들기 위해 교육을 시킵니다. 당시엔 이만하면 충분할 것 같이 생각도 들었지만 사제가 되어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아직 많이 더 배워야 한다고 느낍니다. 처음엔 왜 이리 공부를 오래해야 하는가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더 공부할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이 참 감사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십니다. 두 배가 있었지만 굳이 베드로의 배에 타셨던 것은 다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배에 베드로가 있었고 베드로에게 그물을 치라고 명령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배는 작게는 우리 마음을 상징하지만 크게는 바로 교회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교회에 머무실 것이고 가톨릭교회 안에서 가르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나중에 다른 배에서도 그물을 건져 올렸지만 사실 그 그물은 베드로가 던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하나이고 구원은 당신의 후계자인 베드로를 축으로 하는 교회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뽑으실 때부터 그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기로 작정하셨었습니다. 지금 천국의 열쇠는 예수님 한 분이 지니고 계시고 당신의 후계자로 처음부터 베드로를 점지해두고 계셨던 것입니다. 다른 어부들도 많았는데 왜 베드로에게 그물을 쳐보라고 하셨을까요? 요한이나 야고보, 혹은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에게 그물을 쳐보라고 했다면 그들이 거절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셨을까요? 그들에게 그물을 다시 쳐 보라고 했더라도 그들은 틀림없이 예수님을 말씀을 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특별히 오늘 베드로를 겨냥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그를 뽑아서 첫 당신의 후계자로 삼으시기로 이미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사람 낚는 어부가 될 수 있도록 교육을 하신 것입니다.

 

물고기는 하느님 앞에서 아무 가치가 없지만 사람의 영혼은 무한한 가치를 지닙니다.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육 또한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이 가치 있다 보니 위험부담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운전병으로 군 생활을 했습니다. 운전병들은 군기가 다른 곳보다 조금씩은 더 셉니다. 구타를 없애고 민주적인 군대를 만든다고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저희는 연병장에서 단체로 머리 박고 구타를 해도 간부들이 크게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반 군인이 총기를 잘 못 다뤄 오발사고가 나면 한 명 죽지만 운전병이 한 번 실수하면 수십 명이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는 일의 위험성에 따라서 요구되는 정도도 달라집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가장 가치 있는 만큼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어부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뜯어진 한 그물코로 수많은 물고기가 빠져나가듯이 한 성직자의 부족함으로 얼마나 많은 영혼들을 잃게 될 것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육 목적은 그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오늘도 평생 고기 잡던 곳에서 베드로를 무릎 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육의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하느님나라의 열쇠를 맡아야 할 사람인데, 즉 모든 사람을 낚는 사람들의 첫 째가 되어야 할 사람인데 그 정도의 겸손으로 만족하실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베드로는 어느 날 배 위에서 큰 폭풍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물 위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어부출신인 이들은 물을 퍼내고 돛을 바로잡고 배가 침몰하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폭풍은 가라앉지 않고 더 거세졌습니다. 베드로는 평생 고기를 잡으며 생활해 온 호수이지만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을 알고 급기야는 예수님을 깨우며 "우리를 죽게 내버려 두실 작정입니까?" 하고 통사정을 합니다. 예수님은 기다리셨다는 듯이 비와 바람을 멎게 하고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왜 두려워하느냐?" 라고 하시며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그 동안 바다에선 자신들이 최고인 줄 알았었는데 예수님의 한 마디면 하늘도 바다도 그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보고서는 한층 더 겸손해집니다. 그러나 우선은 자신의 힘으로 해 보고 안 될 때 그분을 찾았기 때문에 아직은 겸손과 믿음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또 다른 날 밤은 역시 풍랑이 이는데 예수님께서 배를 향해 물 위를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유령이라고 소리 지르며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두려움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도 이제 완전한 겸손과 믿음에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물 위를 걸어 볼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만 있으면 못 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제외하고 물 위를 걸은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겸손하였고 그래서 그 만큼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큰 풍랑이 일자 곧 두려움이 생겨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강한 믿음이 있었지만 완전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마치 모세가 바위에서 물이 나오라고 할 때 의심을 가지고 바위를 지팡이로 쳐서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 한 것처럼 베드로에게도 아주 작은 부족함은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이 수난하시기 전날 밤까지 예수님은 베드로를 교육합니다. 왜냐하면 아직 자신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절대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하룻밤에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증언합니다. 베드로는 더 이상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이들에게 겸손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도 만족하시지 않고 부활 후 승천하시기 전에도 베드로를 교육하십니다. 베드로에게 배에서 일어난 마지막 사건은 처음 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밤에 그들은 예전에 하던 것처럼 배를 끌고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역시 고기는 밤새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새벽에 저 멀리서 어떤 사람이 오른 쪽에 그물을 쳐 보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 사람의 말을 따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물고기가 걸려들었습니다. 그 때서야 처음에 그랬듯이, 사람을 낚는 기술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임을 완전하게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사람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야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세 번 물으십니다. "너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세 번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왠지 눈물이 흐릅니다. 이제야 참 사랑이 어떤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예수님도 "내 양들을 잘 부탁한다."라고 하시며 당신의 일을 맡기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지 ‘앞으로’ 그렇게 되도록 만들겠노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영혼을 잡을 일꾼들이 부족합니다. 부르심을 받는 즉시 모든 이들은 완전한 사랑에 이르렀건 그렇지 않건 사람을 잡는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더 많이 잡게 되고 덜 잡게 되고 혹은 잡은 고기마저 놓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의 교육을 충실히 따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누구나 베드로가 받은 교육을 받으며 삽니다. 우리 삶 자체가 바로 교육입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예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시는지 깨달으려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 교육은 베드로가 완전한 겸손과 사랑에 도달한 것처럼 그 완전에 도달하기까지 평생 계속됩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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