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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132) 나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어른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09 조회수458 추천수2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7360       작성일    2004-06-29 오후 10:46:44
 
 

2004년6월29일화요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ㅡ사도행전12,1-11;디모테오

2서4,6-8.17-18;마태오16,13-19ㅡ

 

          (132) 나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어른

                                                            이순의

 

어제! 정오가 되려면 아직은 멀은 한가한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칩거에 들어간 뒤로 거의 울리지 않는 전화기라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순간에

소리의 출처가 희미해졌다가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저 순금이예요."

오랜만이기도 하지만 병색이 짙고 가라앉은 목소리에 잠깐 아리송했다.

"응! 그래. 안녕 잘 있었어? 오랜만이네! 목소리가 왜 그러니?"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이 상당히 수설(竪說)거렸다.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그대

로 전해지고 있었다. 꼭 와달라는 부탁에 곧 가보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김치도 좀 챙

기고, 요전에 손질해 둔 자반고등어도 몇 쪽 담고, 작은 페트병에 짜 놓은 콩물도 따

라 붓고, 보리차도 시원한 걸로 두병을 싸서 들었다.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동안에 김

밥도 두 줄을 샀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순금이는 우리성당에서 나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어른이다.

전문대학도 졸업했고, 유복한 유년기를 보낸 어른이다. 그러나 그 모두가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의 존재적 가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렇게 오래 순금이를 지켜주지 않

았다. 돌아 올수 없는 먼 길을 아주 가셔버렸다. 순금이는 절대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질병을 가지고 있다. 멀쩡했다가도 순간 잘 못 되는 질병이다. 그런 순금이가 본당에

서 나를 잘 따르기 시작할 때 동행을 해서 외출을 한 적이 있었다.

가톨릭회관에서 수업이 있던 날,

순금이랑 명동에 가서 수업도 받고, 명동성당구경도 시켜주고, 샬트르 바오로 수녀원

도 구경하고, 평화화랑에도 가고, 그리고 수녀원 잔디밭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수녀원 잔디밭에 퇴비를 뿌렸는지 냄새가  좀 났는데도 그 고요함을 너무 감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정원의 바위 위에 앉아서 맛있게 먹었다.

수업은 따분해라 했으나 그 날은 잘 참고 무사히 다녀왔다. 어머니께서 돌아 가시고

처음 쏘이는 바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날에 그 자리에서 "엄마"라고 불러버렸다. 상

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나에게 부담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리나 그 후 모든 처지를 나

에게 열어버린 순금이었다.

내가 그렇게 신경을 써야할 만큼 외람되지도 않았고, 상당한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사

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만 보면 가만히 다가와서 엄마라고 부르고 속에 담긴 문제들을

털어놓거나, 질문을 하곤 했다. 그런데 성당의 모든 활동뿐만 아니라 봉사며. 자선이

며, 인간적 교류까지도 차단 해버린 나로서는 허용되는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었다. 더

구나 순금이와는 가끔 전화교환을 해 온 것뿐이었다. 그런데 어제의 전화는 요청도

없고, 하소연도 없고, 상담도 없었다. 그것이 나의 직감이고 불길한 예견이 되었다.

 

현관에 서서 열려진 유리창으로 왔다는 기척을 했다.

그런데 들여다 볼 수조차 없이 상황은 나빴다. 방에서 현관까지를 나오지 못하고, 멀

쩡한 사람이 순간에 장님이 되어버린 사람처럼 벽을 더듬거리며, 마치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몸을 흐믈거리며, 간신히 간신히 현관을 찾아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순금아, 순금아, 아이고 불쌍한 것아. 이지경이 되도록 뭐하고 있었냐?"

겨우 간신히 현관문이 열렸다.

오랫동안 통풍을 하지 않은 탓에 메케한 여름 냄새가 배어났다. 겨우 부축 해다가 방

에 들여앉혔다. 그리고 시원한 물도 한 잔 따라서 먹이고, 콩물도 따라 놓았다. 자신

이 정신을 놓고 여러 날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많이 아팠다고 한다.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정신도 깜박거려서 생각을 찾아내며 말을 잊는 순금

이의 육신도 눈으로 알아 볼 만큼 가늘어져 있었다. 기어 다니지도, 서있지도, 그렇다

고 움직이기도 부자유한 몸이었다. 음식은 먹을 수 있느냐고 했더니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김밥을 꺼내 놓았다.

맛있게 먹는다. 보아하니 나의 오랜 경험으로 판단하기를 정신을 놓고 먹지를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탈진상태에 빠졌다가 나를 생각해서 전화가 된 것 같았다. 나에게

칩거라는 시련이 오기 전에 순금이가 나에게 귀띔한 적이 있다. 

"제 나이가 마흔이 넘어서요. 어디 시설에 갔으면 해요. 이대로는 너무 무서워요."

그 후로도 계속 혼자서 지탱해 온 질긴 목숨의 굴레인 것이 같았다.

은행에 가서 돈도 좀 찾아다 주고 시장도 좀 봐다 주었다. 냉장고는 텅 빈 채로 오래

된 썩은 달걀 몇 개를 품고서 전기만 혼자 수고를 하고 있었다.

모두 봉지에 담아 버렸다. 그리고 새 달걀 열개를 사다가 넣어 주었다.

친아버지와 새어머니께서 정기적으로 얼마의 생활비는 보내주시는 것 같았다. 온전치

못한 순금이는 그것으로 혼자를 살아내야 한다. 혼자서는 뭔가가 분명히 안 되는 사람

인 것 같은데 혼자서 살아간다. 형제도 있고, 부모도 있고, 생활비도 있고, 상속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진짜로 필요한 것이 없다. 엄마!

친어머니께서 살아계셨다면 수술을 했어도 여러 번 했을 것이고, 병도 나아주고 짝도

맺어보려고 일구월심으로 사력을 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

니다. 순금이는 저렇게 혼자서 살아야 한다.

얼마나 울었다.

은행에서 시장에서 거리에서 미친년처럼 인고의 서러움에 울고 또 울고........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가르쳐주고 돌아서는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래도 나에게

는 또 나의 인생이 있어서 돌아와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나의 화두를 해결하지 못 하고 허우적거렸다.

과연 나에게 저 사람을 도울 자격이 있는가? 아니 도울 여력이 있는가?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유지를 받든 작은 오라버니의 타락은 날이면

날마다 망해먹을 거리는 있었으면서 나에게는 절제만이 요구된 절박한 상처가 있다.

집은 어려워 가는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타락의 경비는 소비할 것이 있었으나

나의 재능을 살려줄 사람은 저승의 아버지뿐 어머니조차도 나에게 줄 것이 없었다.

너희 작은 오빠가 살아야 너도 산다는 그것이 화두였다. 집이 어려워지는데 나에게 무

엇을 할 자격이 있는가?

돈 안 들이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겼었다. 장애자들과 함께 사는 봉사자의 삶!

그러나 오직 어머니라는 이유만으로 당신의 짐을 벗고자 했던 어머니의 강요!

"빙신들한테 봉사허지 말고 엄씨한테 봉사해라. 이년아!"

그 독성이 싫어서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없이 결혼을 해버렸다. 그것이 화두였다.

어머니가 저렇게 싫어하시는데 나에게 장애자들과 살을 자격이 있는가?

결혼을 해서는 너무나 가난한 시댁을 만나서 살다보니 어떤 화두도 해결 되는 것이 없

었다. 저렇게 형편이 말이 아닌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두고 내가 누구를 도울 수 있다

고 생각하는가? 그 화두를 물고 살아오다가 진이 다 빠져버린, 그래서 며느리자리를

포기해버린 불상사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화두다. 가장 가까이 있는 네 이웃

을 사랑해야 한다는데?

나쁘게 생각하려고 하면 한이 없었을 너무나 큰 이질감을 안고 사는 짝꿍을 세상에서

최고라고 자기 최면에 가까운 노력으로 나를 지탱해야 했었던 18년 결혼 생활동안 나

는 나의 화두로 나를 억압해버린 사실도 인정하고 있다. 스스로를 억압하고, 절제시

키고, 짓눌러가면서, 지탱한 성가정이라는 울타리! 그것이 화두다. 이 가정을 지키지

못 하고, 저 자식을 키우지 못 한다면 나의 십자가를 졌다고 말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어제 순금이에게 다녀오면서 아직까지도 그 깨달음의 경지를 오르지 못한 화

두에 봉착하느라고 또 얼마나 울었다.

버스 안에서 순금이 때문에 울고, 내 자신의 화두를 깨닫지 못해서 울고........

시어머니는 폐지를 줍고, 남편은 산속에서 노동을 하고, 자식은 사춘기와 입시라는 중

대한 관문 앞에 놓여있고, 주변에는 천한 사람만 우글우글하고, 몸은 건강치 못하여

근심이 늘고........

도대체 지금 내가 순금이를 돕는다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주변의 어떤 업보도 해결하지 못한 나라는 무기력한 인간이 과연 순금이를 도울 자격

이 있는가 말이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해 보았다.

어제보다 까랑까랑함이 내 짐작이 맞는 듯하였다. 탈진한 상태에서 곡기가 드니 회복

이 되는 것 같았다. 오늘 내일까지는 일이 있고 목요일에 들리겠다고 했다. 순금이는

목을 빼고 기다릴 것이다.

언제나 나의 화두는 나를 따라다니지만 그렇다고 도움을 거절해 본적도 없었다. 화두

는 나의 생각일 뿐 행동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눈물이 쏟아져도 행동은 해야 한다.

그 순간도 주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능력으로 찰나의 삶을 짐작이나 하겠

는가? 모든 것은 주님의 지휘봉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 다만 인간성의 나약함

이 세상 모든 짐을 제 것처럼 혼돈 할 뿐이다.

순금이에게 물어보았다.

"순금이 시설에 가고 싶어?"

"네. 이제는 나이가 무서워요. 혼자 있을 때 정신을 놓아버리면 두렵기도 하구요."

그러나 유료가 아닌 시설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순금이는 결격사유가 너무 많았다.

오히려 그것들이 그를 더 방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들 때문에 무관심의 벽은 커

지고, 갈 길은 아득해 보였다. 주님께서 불쌍한 순금이를 위한 당신의 뜻이 있으시기

를 기도할 뿐이다. 이사를 가기 전까지 만이라도 관심을 쏟을 참이다.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마흔 한 살의 어른 순금이를 위해서!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

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마태오16,17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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