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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관점에서 본 장애인 이해 9가지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09 조회수354 추천수4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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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하느님 관점에서 본 장애인 이해 9가지


1. 장애인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만드신 걸작품입니다 (탈출기 4,11)

작품이란 상품과는 다르게 상대적이거나 조건적이 아닌 그 자체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을 의미합니다. 작가의 뜻과 혼을 담아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것을 걸작품이라고 합니다. 장애인이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 특별한 섭리 가운데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로 만드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의도를 알지 못한 채 성급한 평가를 내리는 장애인은 하느님의 특별하신 뜻을 간직한 걸작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장애인을 통하여 우리들의 영적 장애를 깨닫게 하시고, 만족하는 삶의 비결을 배우게 하시며, 진정한 성숙과 강함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따라서 장애인(障碍人)은 장애인(長愛人)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2. 장애인은 성숙한 인격을 가진 존재입니다 (마태 18,1-10)

우리나라의 인간문화재 가운데 병신춤을 추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부가 장애인의 약점을 가지고 흉내내어 춤을 추는 사람을 인간문화재로 특별히 보호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사회는 연약한 자의 약점을 통하여 상대적으로 기쁨을 누리는 미성숙한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은 다른 사람의 약점을 통하여 기쁨을 얻는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도움을 청할 따름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 인정할 수 있는 용기는 성숙함 그 자체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성숙한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그 곳은 서로의 다른 특성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곳입니다. 업신여기는 용기를 가진 자는 결코 들어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3. 장애인은 강한 자를 부끄럽게 만드시는 하느님의 도구입니다 (1코린 1,27-29)

장애는 질병과는 다르게 평생을 씨름해야 할 만성적 슬픔이며 사람이 극복하기 힘든 한계적 상황입니다. 따라서 능력이 중시되는 경쟁사회에서 많은 장애인들이 사회적 불리한 존재로서 낮은 자존감을 지닌 채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단지 불쌍하게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장애인 - 이들은 하느님에게 쓸모없는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상대가치의 범주 속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한 채 욕망의 노예요, 경쟁의 투사가 되어 살아가는 영적 장애인들에게 육신적 장애는 분명 하느님의 거룩한 도구입니다.


4. 장애는 벌이 아닌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입니다 (요한 9,1-5. 39)

제자들은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누구의 죄 때문인지 예수님께 질문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선입견을 단호히 배격하시며 시각장애인을 통하여 "하느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요한 9,3) 그것은 육신적 장애를 치유(25절)하는 일과 영혼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전인적 구원을 베푸시는 것은 메시아만이 하실 수 있는 것으로 일찍이 하느님께서 구약의 많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셨던 내용입니다. 따라서 약속의 실현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증명하는 것이며 세상 속에 하느님의 나라가 강력히 임한 것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영광과 직결됨을 살펴볼 때 장애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인 것입니다.


5. 장애인은 들러리가 아닌 복음의 주체입니다 (루카 14,12-14. 21)

하느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악인과 선인들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구원으로 초청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초청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잔치에 거부하자 주인이신 하느님이 화가 나서 어떤 특정한 대상들을 지목하여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가난한 자들이며 장애인들입니다. 들러리가 아닌 초청 받은 주빈(the guest of honor)입니다. 이들은 잔치에 초청 받고 감사의 예물을 준비하지 못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조건 없이 베푸시는 은혜의 성격에 꼭 맞는 것입니다. 그저 감사한 마음을 갖기만하면 되는 것입니다.


6.장애인은 우리가 도와줘야 할 나의 이웃입니다 (루카 10,30-37)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나의 이웃이 누구인가"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되는 가"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구원 받은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어야 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경건의 생활은 생명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야고보 1,27)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애인도 고아와 과부처럼 도움을 줘야 할 우리의 이웃입니다.


7.하느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셔서 믿음의 훈련을 시키십니다 (잠언 3,11-12)

하느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당신의 자녀들을 훈련시키십니다. 욥처럼 고난을 통하여 단련케 하시며 믿음의 높은 산봉우리에 우뚝 서게 하십니다. 장애는 분명 한계 상황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렀다면 그것은 곧 한계상황을 두고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어떤 고난도 문제는 아니며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인생으로 하여금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유익하게 하는 도구입니다(시편 119,71)


8. 장애인은 교회의 하나됨을 위하여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요한 17,11)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통하여 차별 없는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교회가 하나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랑과 희생을 부르짖는 교회에서는 장애인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도움이 되지 않는 장애인일지는 몰라도 교회의 하나됨과 성숙함을 위하여 장애인은 함께 해야 합니다. 장애인사목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적 사목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하는 교회의 본질적 사목입니다.

교회는 건강한 체질을 위하여 장애인들을 구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닌 전교와 교육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9. 인류역사에 위대한 공헌을 했던 장애인들은 교회의 하나됨을 위하여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요한 17,11)

*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킨 천체물리학자 스티브 호킹 박사 [ 루게릭병/전신마비장애인 ]
* 흑인팝 음악의 살아있는 신화 Steive Wond [ 시각장애인 ]
* 음악의 성인 베토벤 [ 청각장애인 ]
* 초인적인 의지로 세계인에게 도전을 주었던 헬렌켈러 [ 언어, 시각, 청각장애인 ]
* 형 에사우를 만나기 전 야뽁 강가에서 하느님의 사자와 씨름하다 엉덩이 뼈를 다쳐 지체장애인이 된 야곱(창세 32,31)
* 예로보암 시대에 시각장애를 가지고 예언자의 역할을 감당했던 아히야(1열왕 14,4)
* 이스라엘의 적 블레셋 사람 삼천 명을 죽였던 이스라엘의 시각장애인 삼손(판관 16,21)
* 원형탈모증의 장애를 극복하고 멋있게 쓰임 받았던 엘리사(2열왕 2,23)
* 눈의 질환으로 고통을 겪었으나 평생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순종했던 사도 바오로(2코린 12,7)
* 의심 많은 토마스를 위하여 영광의 부활체를 포기하고 영원한 장애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요한 20,27)

(한국장애인선교연구소장 김해용님의 글을 많이 참조하였습니다)




[2월 10일] 거룩하신 생명의 말씀 '복음' 
<마르 7,14-23>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오늘의 묵상]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주님이 아니시면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이 음식에 대해 이토록 명확한 답변을 줄 수 있을는지요?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음식 논쟁에 종지부를 찍으신 것입니다.
음식은 사람을 악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 있을 뿐입니다. 먹어서 ‘악이 되는 음식’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먹어서 ‘선이 되는 음식’도 없습니다. ‘기피 음식’이 있는 것은, 그것을 먹고 많은 이들이 혼이 났기 때문입니다. 음식은 그저 음식일 뿐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대하면 모두가 이로운 음식입니다.
예법은 사람 사이에 허물없이 지내자고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예의를 너무 따지면 관계가 오히려 딱딱해집니다. 친밀한 것이 사라집니다. 예법의 노예가 되는 것이지요. 언제라도 중요한 것은 사람이지, 예법이 아닙니다.
조상을 섬기라고 제사가 있는 것인데, ‘제사법’이 너무 까다롭다면 제삿날이 귀찮아집니다. 신앙을 도우려는 ‘교회법’인데 신앙생활을 막고 있다면 올바른 법이 아닙니다. 내용은 외면하고 형식만 좇다 보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진리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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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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