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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진묵상 - 어부바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0 조회수385 추천수5 반대(0) 신고
 
  사진묵상 - 어부바
                                     이순의
 
 
 
 
 
산에서 일을 하다가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장관을 이룰 때가 있다.
일출이라든지, 노을이라든지, 무지개라든지,
하천의 강물이 소용돌이치는 공포감이라든지,
이런 자연 현상의 장관이 아니라도
일터에서, 생활에서, 장관을 목격할 때가 있다.
초상권이라든지, 상표권이라든지, 차량번호 같은 노출이 염려되어
보여드리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고 하여도
장관은 장관이다.
 
 
 
씨를 뿌리고 가꾸고 시집을 보내야 할 때쯤에
이렇게 어부바를 하고 온 녀석이 있다.
생긴 몰골로는 저게 굴러가서 일을 해 줄까 싶었다.
저기 어부바를 한 큰 트럭이나 등에 업혀서 온 저 작은 트럭이나
주인은 같다.
출하작업을 할 때는
모든 농산물들이 다 그러하듯이
큰 트럭은 대로변에 정차를 해 놓고
작은 작업 트럭들이 개미처럼 부지런히
밭에서 실어 날라야 한다.
그러니 작은 트럭들은 밭에서도 잘 굴러야하고
혹시 작업 중에 비라도 오시면
진창에서도 잘 빠져 나올 수 있는 힘이 장사여야 한다.
그런데 뼈만 앙상한 저 녀석이 그 일을 도와줄 것 같지가 않았다.
 
주인인 기사님께서는
그런 내 눈치를 아셨는지
애정 가득한 사연을 늘어 놓으셨다.
 
<우리집 보물 1호래유.
  지가유 장가는 들었는디유
  돈도 읍쥬, 기술도 읍쥬, 몸이루 땜허는 일 밖에 더 허것시유?!
  진짜 몸이 부서저라구유
  우리마누라 고생허구, 지 고생허구,
  진짜 열심히 일을 했는디유.
  저런 고물차라도 있으면 돈을 배루다가 벌것는디
  뭐가 있어야지유,
  어느 날!
  마누라헌티 그 말을 했드니
  꼭 차가 갖구싶냐구 묻드라구유.
  그래서 그렇다구 했쥬.
  꼭 갖고 싶다구 했쥬.
  아 그런디 암 것두 없는 마누라가
  길거리 나가서
  거 있잖어유?!
  한참 카드만들라고 붙잡는 여자들 있잖어유?!
  거그서 카드 맹글어다가 저 놈 똥차 사 줬시유.
  야~!
  그때 세상이 다 내것이었드랑께유.
  하도 낡아서 똥차라고 넘들이 웃든지 말든지
  지 한테는 벤츠였당께유.
  세상에 부러울 것이 읍었제유.
  저놈 타고 댕김시렁 진짜 열심히 일했시유.
  카드값도 갚으구유. 저렇게 큰 트럭도 사구유. 집도 사구유.
  인자는 작업차로 쓴다구유 팔라는 사람도 있는디유
  지가 어찌께 저놈을 판데유?!
  못 팔아유.
  지 죽고, 나 죽을 때 꺼정 같이 살아야지 어찌께 판데유?>
 
철 조각에 불과한 것 같은
녹이 슬어서 고물장사도 가져갈 것 같지 않은
저 작은 녀석의 애정 깊은 내막은
젊은 부부의 고생스런 일상의 성공이었다.
그리고 주인인 기사님을 따라
산골의 내 농장까지 오신 것이다.
살다보면 사람의 사연들만 가슴 후비는 것 같아도
깨진 바가지나 금간 항아리라든지
낡은 호미나 부러진 삽자루라든지
늙은 경운기도 그렇고
저런 쇠 덩어리에서도 가슴 후빌 만큼
애잔한 정이 뭉클뭉클 맺혀진다.
 
 
 
 
 
기사님은 충실한 종인 저 녀석을 병원에 보내어
종합 진찰을 받게 하시고
저렇게 말쑥하게 고쳐주셨다.
병원에 다녀온 녀석의 모습은
큰 트럭에 업혀 올 때랑은 판이 달랐다.
여름 내내 주인인 기사님이랑 살다가
산에서 일이 끝나고
건강해진 육신으로 돌아갔다.
물론 갈 때도 그 큰 트럭에 업혀 가셨는데
컴컴한 밤에 가시느라고 기념사진을 찍어 드리지 못했다.
그래도 오실 때처럼 업혀 가시는 일가족이
참 대단한 행복으로 다가왔다.
 
세상에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진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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