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5주간 목요일 - 주님을 위로하는 사람들
<십자가의 글라라 성녀의 심장에서 나온 수난 도구들>
아씨시 옆의 Montefalco 라는 동네엔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십자가의 글라라 성녀가 800년 전 모습 그대로 썩지 않고 있습니다. 그녀의 심장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모습과 수난도구들이 근육으로 뭉쳐져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심장에서는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세 개의 모양과 무게가 같은 조각도 나왔습니다. 저는 이렇게 시신 자체로 희한한 기적이 많은 성인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수도생활을 했고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기도 중에 탈혼 하시어 그냥 성당에 앉아서 돌아가셨습니다. 동료 수녀들은 이 수녀의 심장을 열어보기를 원했습니다. 그 이유는 수녀님이 살아계실 때 이런 체험 이야기를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수녀님이 어느 날 기도하는 중 예수님께서 슬픈 얼굴로 십자가를 지고 지나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수녀님은 예수님께 왜 그리 슬픈 얼굴을 하고 계시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요즘 시대에 내 십자가를 꽂을 굳은 땅이 없다.”하셨습니다. 성녀는 그 의미를 깨닫고 “당신의 십자가를 제 심장에 꽂으십시오.”라고 청했고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를 그녀의 심장에 꽂았습니다. 그 이후로 그 분의 심장은 그리스도 수난의 증거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꽂을 굳은 땅이 없다고 하신 이유는 요즘 세상에 아무도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들여 믿음을 증거 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었고 성녀는 그 고통을 자신이 받겠다고 한 것입니다.
수녀들은 이 이야기를 생각하며 성녀의 심장을 열어보았고 정말로 성녀의 심장에서는 심장 근육이 응고되어 만들어진 십자가와 가시관, 채찍, 창 등의 수난도구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특별히 십자가와 채찍은 지금도 그때 모습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성지를 여러 번 가면서, ‘주님도 위로받고 싶어 하시는 구나!’를 느낍니다.
오늘 나쁜 영에 시달리는 자신의 딸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기적을 청하는 한 이방인 여인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시며 그 청을 물리치십니다. 이방인으로서 예수님께 기적을 청하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었는데 “나는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을 찾으러 왔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시며 사람들 앞에서 청을 드리는 이방인 여인에게 창피를 줍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굽히지 않습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녀의 믿음을 감탄하시며 그녀의 청을 들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일부러 청을 들어주시지 않았던 이유는 다른 이들에게 그녀의 믿음을 드러내 보이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방인까지 이렇게 믿는데 이스라엘인들은 믿지 못하는 것을 질책하시는 것입니다.
이 이방인 여인은 예수님의 매몰참으로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지만 그 믿음이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신앙으로 상처받은 예수님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런 믿음의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녀는 멸시에 가까운 고통을 참아내야만 했습니다. 그만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보이는 믿음이야말로 참 믿음인 것입니다.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고통이 필연적으로 주어집니다. 아무 어려움도 없는데 어떻게 신앙의 힘을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실 저조차도 고통을 청하기가 두렵습니다. 다만 주님께서 주시는 고통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청하기는 합니다. 일상에서 주어지는 우리의 십자가만이라도 잘 지고 나갈 수 있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신앙을 증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집에 불이 나서 아내를 잃은 형제님이 성당에 나와 그래도 웃어주며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내를 잃었다면 하느님도 원망스럽고 사람도 원망스러울 텐데 그런 고통 가운데서도 성당에 나오고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야말로 조금만 어려움이 있으면 하느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아프게 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강호순에게 희생된 자신의 딸로 인한 슬픔 안에서도, 어머니는, “만약, 제 딸이 실종된 직후 시신을 보았다면 저는 미쳐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저를 생각하시어 마음의 준비를 위해 2년 뒤에 발견하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하셨고, 아버님은, “저의 딸은 그리스도 수난에 참여하였습니다.”라고 하시며 모든 것을 주님의 뜻에 맡기시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런 분들이야말로 오늘 복음의 이방인 여인처럼 매몰찬 하느님의 모습 안에서도 믿음을 간직하여 하느님까지도 위로해주는 분들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위로만 받기보다는 우리의 불신앙으로 인해 괴로워하시는 하느님을 조금씩이라도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