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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성경으로 공부하는 가톨릭 교리 40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1 조회수637 추천수14 반대(0) 신고
 

 

 ♣ 성경으로 공부하는 가톨릭 교리 ♣

 

II. 삼위일체

 

3.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이다.

 

사제직

 

구약에서 또 기름을 부어 성별했던 부류가 사제들입니다.

 

출애굽기 40장

13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기름을 부어 성별하여라. 그러면 그가 나를 섬기는 사제가 되리라.

 

사제는 하느님께 희생제와 친교제를 바치는 일을 하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희생제란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동물을 잡아 바치는 것을 말하고 친교제란 하느님과 인간의 친교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서 제물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왕이 되어야합니다. 왕직을 잃은 사람은 사제직도 온전히 수행할 수 없습니다. 온전한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온전한 왕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사울이 대사제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사제만이 드릴 수 있는 제물을 바쳐서 왕직까지 잃게 되는 예를 보게 됩니다.

 

1사무 13장

“8 사울은 사무엘이 약속한 이레를 기다렸으나, 사무엘은 길갈에 오지 않았다. 군사들은 사울 곁을 떠나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9 그래서 사울은 “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나에게 가져와라.” 하여 번제물을 바쳤다.

10 사울이 번제물을 바치고 나자 사무엘이 왔다. 사울이 나가 그를 맞으며 인사하자,

11 사무엘이 “ 임금님은 왜 그런 일을 하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사울이 대답하였다. “ 군사들은 저에게서 떠나 흩어지고 어르신은 약속하신 때에 오지 않으시는데, 필리스티아인들이 미크마스에 모여드는 것이 보였습니다.

12 그러자 ‘ 필리스티아인들이 나를 향해 길갈로 내려오는데도 주님의 호의를 간청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번제물을 바치게 된 것입니다.”

13 사무엘이 다시 사울에게 말하였다. “ 임금님은 어리석은 일을 하셨고, 주 임금님의 하느님께서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을 지키셨더라면 지금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임금님의 왕국을 영원히 굳게 세워 주셨을 터인데,

14 이제는 임금님의 왕국이 더 이상 서 있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임금님이 지키지 않으셨으므로, 주님께서는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으시어, 당신 백성을 다스릴 영도자로 임명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왕이 되었더라도 사제직은 그 한 단계 위의 것임을 잘 보여줍니다. 즉, 먼저 왕직이 와야 하고 그 다음에 예언직과 사제직이 온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왕이면서도 사제였습니다. 즉, 1열왕 8,63과 2역대 7,5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면서 사제로서 제물을 봉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처음에는 왕직과 사제직이 별개였다가 나중에 왕직과 사제직이 합쳐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쨌든 순서상으로는 왕이 아니면 사제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제직과 왕직은 너무 밀접하여 사제직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왕직도 잃게 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는 대사제로서 또 희생제물로서 당신의 피로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셨습니다.

 

히브 9장

“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으로 들어가셨습니다.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13 염소와 황소의 피, 그리고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리는 암송아지의 재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그 몸을 깨끗하게 한다면,

14 하물며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얼마나 더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중매쟁이는 두 집안을 다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즉, 하느님이기도 하시고 사람이기도 하셔야만 하느님과 사람을 중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를 지어 재물을 들고도 하느님을 만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따라서 대사제는 유일하게 하느님이시면서 사람이신 분이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미사 때 사제가 성혈이 담긴 성작을 치켜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너희와 모든 이들의 죄 사함을 위하여 흘릴 나의 피니라.”

그리스도의 피는 죄 사함뿐 아니라 ‘새로운 계약을 맺는 피’입니다. 모세가 동물의 피로서 구약을 체결했다면 예수님은 당신의 피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세운 구약은 인간이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다면 신약은 인간이 그리스도와의 혼인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계약입니다. 이 계약이 ‘죄의 용서와 성령님의 오심’, 즉 ‘성사’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이 역할을 위해 성사를 집행하는 사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공통 사제직에 대해서는 이와 같습니다.이 희생과 기도를 직접 하느님께 드릴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공로입니다. 그분의 희생으로 성전의 장막이 찢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계신 곳은 이제 성전 깊은 곳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입니다. 그래서 모든 직무가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직무를 잘 알고 잘 수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대신해서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공공연하게 사제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개별적인 특별한 성령님의 은총을 받아 직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성령님은 우리 인간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만들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계약입니다.

이것이 태초부터 세상 마칠 때까지 이어질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시온)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이사 62,4-5)

 

처음 아담과 하와는 성령님을 통해 한 몸을 이루도록 창조되어 살아가던 부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죄를 범하고는 서로 상대의 잘못으로 핑계를 대었습니다. 이렇게 사랑이 없어진 이유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사랑의 성령님께서 둘을 더 이상 하나로 만들 수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죄와 함께 하실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랑을 깨뜨리는 것은 결국 인간의 죄의 탓입니다. 죄는 하느님의 선물인 성령님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느님과 또 서로간의 관계가 깨어지게 됩니다.

 

이 상황이 바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술이 떨어진 상황입니다. 술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술은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되고 그리스도의 피는 죄를 없애주고 다시 성령님을 우리에게 되돌려 주기 때문에 결국 ‘물과 술과 피와 성령님은 하나’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1 요한 5,8 참조) 성모님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하느님이신 예수님께 포도주를 달라고 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 성령을 달라고 청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이여, 그것이 당신과 나에게 무엇입니까? 아직 나의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성모님은 이어 곧바로 일꾼들에게 당신의 아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이르십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얼핏 첫 기적을 행해주시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지만 성모님은 해 주시겠다는 말로 알아듣습니다. 예수님도 아무 대꾸 없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행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모님을 '여인'이라 부르십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 인간에게 부족한 사랑을 하느님께 청해주시는 중재자로 출연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마치 성부와 성령께서 성자를 나으시듯,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여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교회를 탄생시키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 부르고 당연히 교회의 아버지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저희 아버지는 황해도 분이시고 어머니는 부산 분이십니다. 이 두 분이 만날 일은 거의 없으셨지만 결혼까지 성사되게 된 것은 이 두 집안을 잘 아는 중매쟁이가 둘 사이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모님은 마치 ‘중매쟁이’처럼 그리스도께 성령님을 청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교회에 나누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성령님을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포도주가 없으면 흥이 나지 않고 잔치가 잔치 같지 않습니다. 따라서 술이 빠진 잔치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어린양’과 ‘천상예루살렘’이 혼인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묵시 21,10) 오늘 포도주로 상징되었던 성령님을 청해주시는 분은 바로 성모님이고 성모임 없이는 성자께서 사람이 되실 수 없으셨던 것처럼 성모님은 ‘은총(성령)의 중재자’로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중매쟁이’입니다.

 

성모님은 이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처음으로 맺으신 분이십니다. 처음으로 자신을 온전히 버리고 온전히 하느님을 받아들임으로써 완전한 ‘왕’이 되셨습니다. ‘왕’이 된 것만이 아니라 당신의 ‘왕직을 통한 사제직’으로 그리스도와 교회를 이어주는 ‘중재자’역할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을 ‘사도들의 모후’, 즉 사제직의 어머니라 부르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제직의 본질을 이렇게 짧고 완전하게 표현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열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위하여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한 신랑에게, 곧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그분과 약혼시켰습니다.” (2코린 11, 2)

 

인간의 죄는 종적으로는 하느님과 인간, 횡적으로는 인간 사이의 관계를 끊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희생으로 종과 횡을 잇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이어놓으셨습니다.

그 은총은 가장 구체적으로 흠도 티도 없으셨던 성모님께 전해졌고 성모님은 은총의 중재자로서 교회에 그 은총을 전해주심으로써 ‘그리스도와 교회’의 중재자가 되셨습니다.

그 은총을 받은 우리들도 믿지 않는 사람을 깨끗이 하여 그리스도께 순결한 신부로 봉헌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의 ‘사제직’이라 할 수 있고 혹은 ‘선교’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사제직이나 선교는 그래서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인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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