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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라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1 조회수522 추천수2 반대(0) 신고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덕(德)을 일반적인 덕(genuine virtues)과 수도사적인 덕(monkish virtues)으로 구분하였다. 일반적인 덕은 우리 내부에 쌓인 것으로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들 자신에게 유용한 것이지만 수도사적인 덕은 사회나 특정인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흄은 수도사적인 덕으로 독신, 금식, 참회, 고행, 자기 부정, 겸손, 침묵과 고독을 꼽았다. 그는 이러한 것들은 사회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며 인간의 복지를 도외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각이 있는 사람’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신앙인은 듣기가 거북한 말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더욱 귀에 거슬린다. 수도사들은 고행을 하면서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덕을 쌓지만 건강한 사회 공동체와는 담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음침하게 토끼 머리를 하고 있는 이 열정가들은 항상 우울하며 죽은 후에는 달력에 표시가 되겠지만 살아 있을 때에는 자신들과 같이 제정신이 아니고 음침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사람과 사회를 멀리하고 산다고 말했다. 아주 심한 표현 같지만 경청해야할 게 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이 남몰래 금식하고, 남몰래 기도하고, 고행을 하는 동안에는 얼굴을 찡그리지 말고, 신앙심이 깊은 것을 드러내지 말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금식과 고행(苦行)과 개인기도를 밖으로 드러내지 말아야 할까?
 
예수님께서는 위선과 성실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더 깊은 뜻이 있다. 또 그러면 우리들이 무엇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이 그러한 것을 드러냈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따른다. 우리가 진실할지라도 고행과 신앙심이 깊은 것을 드러낼 때에는 우리가 드러내기를 바라는 것과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다르기 쉽다. 우리가 믿음을 드러내고 헌신을 하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태도와 행동을 보고는, 건전하지 못하고 기쁨이 없어 보이고, 우울하게 보이고, 종교의식을 경멸하거나, 이러한 삶에 대한 보상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가 많다. 이는 우리가 드러내고자 하는 진심과 전혀 상반된 반응이다. 우리들의 기도와 고행이 건전하다면 또 우리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건전하고, 기쁨에서 우러나온 것이고, 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고, 일상생활의 즐거움이 성체성사에 의한 것이라면, 모든 수도사적인 덕은 진지하며 우리가 하느님께 더욱더 가까이 가기 위한 방편이 된다.
 
그러나 이는 말이 쉽지 실천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이 행복해지려고 하는 노력을 아무 생각없이 받아 들이거나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건전한 믿음을 드러내지 못할뿐더러 궁지에 빠져 있을 때에도 거짓 웃음을 웃음으로써 건전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과 평화와 고요함을 드러냄으로써 건전한 우리의 신앙을 드러내야 한다. 수도사적인 덕을 쌓으면서 행복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경멸하거나 무시하면서는 깊은 믿음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대분의 사람들이 위선을 보이면서 살고 있다. 오늘날의 문화에서는 자신의 욕망만 채우기가 쉽고, 희생정신이 없기 쉽고, 기도할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생활이 바쁘기 쉽고, 고행 특히 정신적인 고행을 하지 않고 살기 쉽다. 우리는 먼저 병적으로 바쁜 현실과 개인 기도의 삶을 계속할 수 없는 현실과 참된 신앙인의 삶을 살 수 없는 현실과 음식과 술과 섹스와 오락과 정보기술의 중독과 싸워이겨야 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인터넷 포르노그래피 중독은 아주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기도와 금식이 부족하다. 과거 어느 때보다 수도사적인 덕이 요구되고 있다. 그래서 간디는 예수님은 존경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싫어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주신 선(善)을 무시하지 않고, 공동선(共同善)보다 개인의 고결함을 우선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우리들이 기뻐하는 것을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고행해야 한다. 그러러면 고행과 기도가 진지하고 건전해야만 한다.
 
나는 건전하게 수도사적인 덕을 쌓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하느님의 선(善)을 증언하는 건전함을 똑똑히 보았다. 기도와 금식을 제대로 하면 세상에 빛이 되게 된다. 데이비드 흄이 예수님의 기도와 고행 안에 있는 건전함과 사랑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루미의 『마스나위』에 나오는 다음 대목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모세의 장인 이트로(Jethro) 시대에 살던 한 사람이 말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저지른 많은 잘못을 보아오셨다.
그런데 내가 지은 수많은 죄와 잘못을 보시고도 당신의 자비로 나를 벌하지 않으신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이트로의 귀에 대고 다음과 같은 답이 나오도록 영혼의 소리로 말해주라고 이르셨다.
……………………………………………………….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죄의 장막(The Veiler of sins)>이다.
나는 그에게 그의 죄를 밝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만 말하여 그가 다시 노력하는지 보겠다.  
내가 그를 사슬로 묶어 놓고 있는 한 증거는
그가 계속하여 봉헌하고 금식하고 기도해왔다는 것이다.
또 전례 기도를 드리고 자선을 베풀었지만
그가 회개했다는 기미를 조금도 보이지 않고 기쁨을 조금도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열심히 교회에 나가고 경건한 행동을 많이 했지만
아직도 신앙의 맛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보다도 많은 봉헌을 했지만 영성(靈性)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 안에는 많은 호두 열매가 있지만 알맹이는 없고 껍질뿐이다.
따라서 신앙의 맛을 알고 열심히 믿으면 반드시 열매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열매가 필요하다. 그래야 그 씨앗이 나무가 되지 않겠느냐?
알맹이 없는 씨앗은 절대로 싹트지 않는다.
영성이 없으면 헛것만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건전함과 기쁨과 평화와 사랑을 드러내려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남몰래 닫혀진 문 뒤에서 기도하고 금식해야 한다. 그래야 주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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