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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열두 사도와 일곱 부제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3 조회수611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마르코 8:1-10)
 
마르코 복음(6:38-44)에서는 오병이어(五餠二魚)를 말하고 있고 남은 빵이 열두 바구니였지만 오늘 복음에서는 일곱 마리의 물고기와 남은 빵이 일곱 바구니로 되어 있다. 왜 차이가 날까? 같은 사건을 달리 해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 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열둘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는, 빵 조각을 몇 바구니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고 말씀하셨다.”(마르코 8:19-21)    
학자들은 첫 모임은 유다인들을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 모임은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또 열두 바구니는 열두 사도를 말하고 일곱 바구니는 일곱 부제를 말한다고 주장했다.(사도행전 6:1-6)
사도 바오로의 말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갈라티아 3:27-28)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느냐고 물으셨을까?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주님의 기분 나쁜 목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까? 아무 곳에서도 이렇게 심하게 꾸짖으신 적이 없었는데 왜 그렇게 기분이 언짢으셨을까요?
깨끗한 음식에 대한 편견을 버리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무데서나 응석을 받아 주시고 두루뭉술하게 지나가시지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앞에서는 마음대로 말하라고 하셨지만 여기서는 꾸짖고 계십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남은 빵 광주리와 빵을 먹이신 사람 수까지 기억하게 하시어 과거를 되돌아 보고 앞으로는 더욱더 깨어있도록 노력하라고 당부하신 것이었습니다.”하고 해석하였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마르코 7:18-19)
 
그리고 왜 오천 명에게 빵을 먹였을 때는 열두 광주리가 남고, 사천 명에게 먹였을 때에는 오히려 더 적은 일곱 광주리가 남았을까? 성 예레니모(St. Jerome)는 이에 대해 “빵은 생명의 빵으로 믿음이 깊은 사람이 더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방인들이 오히려 믿음이 더 깊었다는 말이다.  
 
우리들 이방인도 주님의 한 가족으로 식탁에 초대 받았다.
매일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기적을 깨닫고 하느님께 감사하지 못하면 또 기쁘게 살지 못하면 주님의 한 가족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영국의 시인 죤 옥센함(John Oxenham)의 시를 노래말로 한 성가 <주 예수 안에 동서남북이 있으랴>는 오늘의 복음 말씀을 말하고 있다.
1. 주 예수 안에 동서나 남북이 있으랴 온 세계 모든 민족이 다 형제 아닌가
2. 주 예수 계신 곳마다 참 사랑 사슬이 뭇백성 함께 묶어서 한 가족 이루네
3. 다같이 손을 맞잡고 한 아버지 밑에 겉모양 인종 다르나 한 자녀 되도다
4. 주 예수 안에 동서와 남북이 합하여 주 예수 사랑 안에서 다 하나 되도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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