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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6 조회수970 추천수19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6주간 화요일 -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오늘 수녀님들과 이야기를 하는 중에 개신교 신자들에게 받은 질문들 때문에 난처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성모님은 그리스도를 낳은 껍데기에 불구하고 다른 자녀들도 있었는데 왜 평생 동정이라고 하며 가장 첫 번째 놓고 기도하느냐고 하고, 어떤 분들은 아예 천주교가 이단이라 구원받지 못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물론 자신들은 성경만 믿기 때문에 오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시며 그 위에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교회를 누르지 못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누가 보아도 베드로 위에 세워진 교회는 2000년을 이어오는 가톨릭이지 500년 된 개신교가 아닙니다. 또 개신교도 수백 개 종파로 나뉘어져 있는데 어떤 종파가 정통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다 아는 사실이지만, 가브리엘 천사가 ‘은총이 가득하신’이라고 마리아께 인사한 것은 아담과 하와가 죄로 인해 잃었던 은총을 성모님은 가득히 지니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은총은 성령님의 선물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라고 인사 하신 것은 이미 죄 이전 상태로 에덴동산에서 하느님과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성자께서 잉태하셨으니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성모님과 함께 계신 것이고 이는 죄의 티도 없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가득차서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를 찾아 주시다니...’라고 하셨는데 어찌 성모님께서 그냥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는데 껍데기 역할만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껍데기를 어머니라고 하지 않고 자녀에게 무언가 주었어야 어머니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신성과 인성의 결합이라고 한다면 신성은 주실 수 없으니 인성을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받으신 인성은 흠도 티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분도 죄의 육체를 받게 되어 흠 없는 제물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이 ‘주님의 어머니’라면 이미 남편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남편 없는 어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다른 남자와 관계를 하여 자녀를 가졌다고 하는 것은 성모님뿐만이 아니라 그 분을 어머니로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까지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바람과 같아서 모든 사람에게 작용하십니다. 비록 종교가 다르더라도 각 사람 안에서 활동하시며 새로운 계약을 이루어가십니다. 종교가 없는 북한이나 밀림에 산다고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해야 한다면 하느님을 불공평한 분으로 만드는 것 밖에는 안 됩니다.

이 밖에도 개신교에서 ‘성경 말씀만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성경에 충실하겠다고 하면서도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영적인 이야기를 하시는데 제자들은 다른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그 누룩의 의미는 다른 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그들의 위선을 조심해야 한다.” (루카 12,1)

즉, 예수님은 그들 안에 감추어진 위선을 조심하라는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리사이들은 유태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고는 하지만 속으로는 로마에 잘 보여 자신의 부와 영리를 챙기는 사람들이었고, 헤로데 당원들은 유태인들을 위해 일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들의 영리를 위해 로마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빵을 가져오지 않은 것에 대해 걱정합니다. 예수님은 오천 명과 사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을 말씀하시며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꾸짖으십니다.

당신이 하시는 말씀은 영적인 것인데 아직도 육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제자들을 나무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아직까지는 육체적인 수준이기에 자기의 수준대로 말씀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수준에 따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해석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있으면 옆에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성경도 비록 같은 말씀이 쓰여져 있지만 다 영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합니다.

 

성경에 분명히 십일조를 내라고 나와 있습니다. 개신교는 이것은 잘 지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이 말씀은 잘 지키지 못합니다. 어떤 교리서에서는 성경에서 십일조를 하라고 예수님까지도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삼십일조를 하라고 가르칩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그들처럼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봉헌하는 데 있어서는 말씀보다는 돈에 더 관심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다른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아직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느냐고 꾸중하실지 모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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