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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디로 가나?” - 2.1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7 조회수390 추천수9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2.17 재의 수요일                                              
요엘2,12-18 2코린5,20-6,2 마태6,1-6.16-18

                                                        
 
 
 
 
 
“어디로 가나?”
 
 
 

어제 읽은 한 대목이 신선한 충격으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평생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살았던 한 남자가
죽기 전에
자신이 죽으면 가장 비싸고 화려한 수의를 입혀달라고 유언했습니다.
 
마침내 그가 죽자
생전에 고인을 알고 지내던 한 사람이 다가와
고인을 보며 안타깝게 말했습니다.

“이토록 잘 차려 입고도 갈 곳이 없구려!”

조선시대 사육신 중 한 분인 성삼문 선비의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쓴 시조도 생각이 납니다.

“격고최인몀 (擊鼓催人命) 북소리 울려 목숨 재촉해
  회두일욕사 (回頭日欲斜) 고개 돌려 바라보니 해는 기울어
  황천무일전 (黃泉無一店) 황천길엔 여인숙 하나 없다니
  금야숙수가 (今夜宿誰家) 이 밤을 뉘 집에서 쉬어서 갈꼬.”

돌아 갈 곳 분명치 않은
회색빛 가득한, 쓸쓸함이 물씬 풍겨나는 시조입니다.
 
언젠가 하루 휴가 중 볼일을 마쳤을 때
저절로 튀어 나온 말이 하나의 화두처럼 지금도 생생합니다.
“어디로 가나?”

막상 일을 마치고 나니 딱히 갈 곳이 없었습니다.
 
하여 결국 수도원으로 일찍 귀원했습니다.
 
결국 갈 곳은 하느님뿐이었습니다.
 
매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아 내가 갈 곳은 제대뿐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우리 수사님들 역시 갈 곳은 딱 하나 하느님뿐이라,
평생 매일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아
하느님의 집인 여기 성전에서 기도와 미사를 바칩니다.


하느님께 돌아오십시오.

돌아갈 곳이, 돌아갈 분이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과연 여러분은 돌아갈 곳이, 돌아갈 분이 있습니까?
 
돌아갈 곳이, 돌아 갈 분이 없어 방황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의 귀소본능(歸巢本能)은
바로 하느님을 찾는 본능임을 깨닫습니다.
 
설이나 추석이 되면 뿌리를 찾아 민족 대이동이 일어납니다.
 
귀소본능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동물이 먼 곳에 갔다가도,
  자기가 살던 집이나 둥지로 돌아오는 본능’이라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누구나 고향을 찾는 귀소본능을 지니듯
마음 깊이에서는 모두의 본향이신
하느님을 찾는 귀소본능이 있기 마련입니다.
 
바로 사순시기 첫 날 재의 수요일 미사를 통해
주님은 예언자 요엘을 통해
우리 모두의 본향이신 주님께로 돌아오라 호소하십니다.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

바로 주님께 돌아오는 귀환이 회개입니다.
 
믿는 이들이 회개로 돌아갈 곳은 오직 주님 한 분 뿐입니다.
 
돌아 갈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지요.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의 차이
바로 돌아 갈 곳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 차이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돌아오라는 회개의 초대에 응답하여
오늘 아침은 단식하고,
거룩한 집회 재의 수요일 저녁 미사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 땅에 열정을 품으시고
당신 백성인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십시오.

사람 중심이 아닌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때
비로소 안정과 평화, 겸손입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외적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을 의식하는 내적 삶입니다.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아주 평범한 삶으로
사람 눈에 감추어져 있으나
하느님 눈에는 환히 드러난 삶입니다.
 
‘밖의 넓이’ 에서가 아닌
‘안의 깊이’에서 만나는 하느님이십니다.
 
사람이 어떻게 보든 하느님만 알아주시면 됩니다.
 
누가 뭐래든 하느님 앞에서는
더도 덜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일뿐입니다.
 
바로 주님의 다음 가르침대로 사는 것입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 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진정 영성가들은
본능적으로 하느님 안에 감춰진 평범한 삶을 선호합니다.
 
사람들에게 감춰져 있을수록 하느님께 들어나는 법이요,
아니 사람들에게 감춰질 수록 사람들에게도 점차 들어나는 법입니다.
 
이런 이들이 진정 겸손하고 지혜로운 관상가들입니다.
 
사람들이 아닌 하느님께 저축하는 진정 내적 부자들입니다.
 
비단 자선이나 기도, 단식에만 해당되는 진리가 아니라
모든 영성생활 전반에 해당되는 만고불변의 영적진리입니다.


지금 여기서 주님과 함께 사십시오.

주님과의 친교가 활력의 원천입니다.
 
수도자들이 매일 바치는 모든 기도는
주님과의 친교를 깊이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주님과의 친교와 더불어 은총입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하여 주님과의 친교를 깊이 하는 삶,
우리의 평생 목표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오로가 우리 모두를 향해
하느님과 화해하여 그 관계를 깊이 하라 촉구하십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과의 화해가 우선입니다.
 
바로 지금 사순시기가
하느님께 돌아 와 하느님과 화해하고
그분과의 친교를 깊이 하는 때입니다.
 
언젠가 그 날이 아닌
바로 오늘 지금이
하느님과 화해하여
그분을 중심에 모시고 살아야 할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어디로 가나?”
우리가 갈 곳은 오직 한 분 하느님뿐입니다.
 
언제나 회개하여 돌아 갈 곳,
하느님이 계시기에 우리들은 행복합니다.
 
주님은 재의 수요일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 돌아오십시오.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십시오.
 
지금 여기서 하느님과 함께 사십시오.
 
주님의 축복이
은총의 사순시기 여정 중에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늘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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