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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재의 수요일의 역사와 의미 [허윤석신부님]
작성자이순정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8 조회수640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0 2 17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 6,1-6.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1 “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찬미 예수님.

오늘 강론 제목은 재의 수요일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서 하겠습니다.

 

원래 초기 원시 교회에는 사순 시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단지 부활 대 축일을 준비하는 빠스카 삼일 예식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해의 시기를 거치면서 부활대축일의 준비를 위해서 회개와 보속의 기간이 생겨났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박해를 통해서 묵상...

실제로 자신들이 죽고 박해를 받으면서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런 영성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 시기가 40일로 정착된 것이 325년 니체야 공의회 결정입니다.

재의 수요일은 그리스도교가 탄생한 500년정도 지나고 나서 시작했고,

그레고리오 1세 교황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실은 재의 수요일 하면,

가톨릭 신자들의 영성과 전례에 중점 되어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고~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염두 해 두신 게 뭐냐 면~

예비신자들.

우리는 부활절 하면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생각하지만,

전례적으로 보면 부활 때 세례를 주는 것이 근원이었습니다.

부활절에 세례 수를 축성을 하지요~

세례를 받고~

 

그런데 이 기간은 예비신자들이 40일 동안 수련하는 기간이에요.

본당신부님이 40일 동안 예비신자들이 잘 수련을 하는지 보는 거죠~

그래서 수련자란 말은 수도원에서 나온 말이지만 더 원천적으로 40일이라는 기간~

모든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예비신자들이 수련기간이라는 말을 쓰죠..

자신을 닦고 단련하는 시기라고 했습니다.

 

요즘엔 세례를 어떻게 받는지 잘 모르지만,

어떤 신부님은 어른 입교예식 보면 단기적인 입교예식이 있어요~

성서를 수여한다던가, 40일 동안 재기를 지킨다던가, 세례를 받으면 흰옷을 입는 주기가 있어서 ...

그때는 좀더 영성적인 공부를 하고 수련을 하고 단기적인 수련된 모습을 받게되는거죠.

 

수도회라는 것이 수련이라는 것 수도자라는 것... 그저 평신자의 반대, 떨어지는 말이 아니라~

원래 수련이라는 말의 탄생이 사순과 부활의 전례 안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수녀님들의 삶이 부활한 이들의 천상 삶의 모델.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사순절과 부활절 안에서 수련의 의미이다. 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40일의 의미는 성서 안에서 볼 수 있는데~

모세라던가.. 엘리야 예언자도 ...

예수님께서도 40일 동안 단식하신 뒤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재의 수요일은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재의 수요일은 인간의 근원이 무엇이냐..

자신의 본성, 본질이 무엇이냐...

 

흙에서 왔다...

흙은 제일 비천한 모습이죠...

제일 낮은 존재죠..

흙 자체가 그렇죠..

우리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라....

 

회개할 때..

회개를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누군지 몰라서 못하는 겁니다.

죄가 무언지 알고, 죄가 어떤 것인지 속속들이 정의하고 느끼고 그 위험성을 깨닫고... 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초점.

지은 죄의 초점이 아니라....

내가 근본적으로 어떤 존재인가를 모르는 것이죠.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하느님 또한 모르게 되는 것이죠

 

흙에서 왔다는 말은 중요한 얘기이고~

회개의 출발점이죠.

자기의 인간이해의 확실한 근원을 밝힙니다.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한다는 것은

그 말 자체를 들으면서 겸손해지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매년 재의 수요일을 하는데~

그 재가 무엇인지 두 번째로 깊게 생각을 해보면~

 

작년에 성지주일 때 예수님 입성하실 때 기뻐하면서 흔들었던

우리 교만과 위선의 성지가지...

이것을 올해 또 반복한다는 거죠... 연속개념이 있죠..

 

재의 수요일을 머리에 재를 얹히면서 아이쿠! !”

그냥 재가 나무에서 온 것이 아니라

작년의 전례 중에 성지주일과 연결이 되는 것이죠.

작년에 성지주일이 없었다면 올해 재의 수요일은 없는 거죠~

! 재가 없으니까!

 

그것을 초등학생이 물어봤대요~

부활을 했는데, 왜 성지가지를 가져다가 또 연장으로 하냐고...

그 학생에게 오히려 신부님이 고맙다~” 라는 말씀을... ~!!!! 전구가 번쩍거리면서!!!

맞다! 작년에 우리가 들었던 것이다. 그때는 재가 아니었다.

임금을 바라보는 순간이었고, 임금을 우리 공동체와 나 자신에게 겸손의 나귀를 타시면서

환영했던 그 시간에 환경의 도구였고, 축복과 감사의 도구였는데~ 그런 은총, 환영, 환희의 상징이 전부 불태워지고 전부 재가 되어서 나의 머리에 내 존재에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매개체가 되는구나!!!’

 

종말론적인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기쁜 일 있어도 기쁘지 않은 것처럼!

슬퍼도 슬프지 않은 것처럼!

살아야 된다는 그 말씀이 산봉우리처럼 지각변동을 하면서 그런 말씀들이 올라오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매년 재의 수요일이면 저의 체험을 반복적으로 얘기하지만~

제가 잠시 외국에 있을 때 수도원에서 참여를 했죠~

남자 수도원에서는 재를 많이 얹혀줘요~

앞에 제대에도 재가 많이 떨어져 있었는데~

 

대침묵안에서 성서를 읽는 시간이 있어서 내려갔다가~ 저는 하도 재가 많아서 머리를 감고 내려갔어요.

점심때 식탁에 앉았는데~ 다들 재를 안치운거에요. 얼굴과 머리의 재가 수프에 떨어지고~

저만 이렇게 치운 것 같아서 부끄럽고~ 결국 옆에 사람의 재를 빌려서 다시~ 한적이 있습니다.

 

뭔가 재를 하루 종일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거에요~ 그 수도회에서~

우리는 전례 때 보면 재도 조금 해주지만, 세례 때 성유도 옆에서 닦아주는 사람이 전례인 것처럼 서있어요.

전례의 상징물에 대한 오감을 충분히 느껴야 하는데...

 

외적인 것이 중요한 것 보다는 내적인 절제라 그랬는데~

 

다시 돌아가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뭐냐면...

지금 우리가 바르는 재가 산에서 나는 나무나 풀로 태워서 머리에 바르는 것이 아니라

성지주일에 하느님이 우리의 삶에 들어오는 겸손으로 환영했던~! 함께 흥분했던 그 순간을 태운것이예요.

 

그때의 약속을 우리가 불살라 버렸다!

그래서 정말 내가 위험스러운 사람이다!

위험하구나!

나 자신과 세상에!!

내가 겸손하지 못하구나

위험한 인물이구나!

 

전례학에서 보면 머리에 재를 바르는 예식은

유다스가 죽은 화장터가 있어요~

죄인이 죽고 버려진 사람들을 화장 하는데~

사형시키기 전에 머리에 회 가루나 잿가루를 뿌려요.

상당한 모욕이에요.

죽을 사람! 영원히 죽을 사람!

그런데 우리는 서로 머리에 바르니까..

당시의 유대인 문화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도대체.. 전부다 자살하는 거냐.. 물었을 때...

천주교인들이 우린 진짜로 죽어야 하는 사람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라고 말을 해서..

정말 많은 깨달음과 설교가 되었던......

 

사순시기의 전례와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입교를 했다...

우리는 개신교와 달리 나가서 가두설교하는것도 좋지만~

사순의 삶을 잘 살아서 우리의 삶이 겸손한 삶으로 될 때 많은 이들이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으로 돌아서는...

나의 돌아섬. 나의 회개는 나의 회개뿐만 아니라 지체로서 교회와 함께하는 역할 결과와 연계가 있다......

 

 

 

 

허윤석신부님까페 http://cafe.daum.net/credohur1004

 

 

  허윤석신부님 홈페이지  www.credoh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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