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비 ....... 김상조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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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광자 | 작성일2010-02-19 | 조회수484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영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When you give alms, do not blow a trumpet before you, as the hypocrites do in the synagogues and in the streets to win the praise of others.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고 = to win the praise of others”
우리가 흔히 “승리”를 의미하는 단어, win을 사용했다.
얻다, 획득하다 등의 뜻을 갖고 있는 말이다.
모든 사람, 모든 일,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이기기 위해 애쓰는 우리 자화상을 읽을 수 있는 단어라서 그 쓰임새가 새삼스럽다.
하지만 하느님은 결고 이기려고 하시지 않는다.
이길 필요도 없거니와 상대할 자도 없다.
그분은 승복시킬 뿐이다.
무협지, 삼국지 같은 글을 읽어보면 고수들이 자처해서 또 다른 고수와 한판 겨루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다가 확실히 자기보다 한 수 위인 고수에게 진 것을 깨끗이 승복면서
그처럼 대단한 고수와 겨룬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비슷한 것이 사람 모두에게 있다.
그런 것이 승복이다.
이기려고만 하는 한, 승복하지 못하게 된다.
스스로 승복하게 될 때, 인간은 거꾸로 희열을 느끼곤 한다.
이기려 하지 말고 오히려 승복하자.
그러면 자유를 누리고 기쁨을 누릴수 있을 것 같다.
사람에게 승복하는 것도 좋지만 하느님께, 예수님께,
이해하기 힘든 그분들게 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어 복음서에는 이해하기 힘든 하느님에 대해 이런 식으로 표현하였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But when you give alms, do not let your left hand know what your right is doing, so that your almsgiving may be secret. And your Father who sees in secret will repay you.
“숨겨 두어라 = may be secret.”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 Father who sees in secret"
숨어 계신 하느님을 “신비중에 계신 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신비한 분, 불가사의한 분이란 뜻이다.
인생살이에서 만나게 되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 가운데,
그 한 가운데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고스톱 친 사람에게 물어보면 백이면 백 모두 잃었다거나 얼마 못 땄다고 한다.
장사하는 사람도 얼마 못 벌었다고 한다.
다들 숨긴다. 자랑스럽게 떠들어댔다간 벌어들인 것의 몇배나 되는 지출을 요구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오늘 예수님의 권고는 우리네 경제관념과도 맞아떨어진다.
선행했다고 떠들지 말고 단식한다고 표내지 말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도 드러나게 당신 영광을 떨치시지 않는다.
우리는 한 번만이라도 그분의 영광스런 현존, 힘찬 능력을 목격하고 싶지만 그분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그 이유는,
첫째, 인간의 자존심 내지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모든 일을 당신이 직접 나타나서 진두지휘하면 우리가 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둘째, 사람이 제 힘으로 문제해결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
모든 것이 하느님에 의해 해결된다면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수수방관하고 말 것이다.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상은 경기가 끝난 다음 받는 것. 때문에 경기도중에 순위가 결정되면 경기할 이유가 없어진다.
상이 결정된 마당에 뭣하러 경기를 계속하겠는가?
지금 우리는 경기중에 있다. 특히 사순 시기는 집중적으로 경기에 임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경기는 숨어서 하는 경기다. 속닥하게~ 우리 그리스도인끼리 벌이는 경기이다.
선행을 모의하고 누가 더 많은 선행을 하는지 경기하는 것이다.
사순시기 더 많은 기도와 묵상, 그리고 선행을 하자.
남 모르게 선행하는 가운데,
잘 하고도 욕먹는 그 한 가운데에,
거기 함께 계신 그분을 뵐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계시는 분, 그래서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분,
그래서 때로는 우리를 좌절하게 만드는 분, 그 하느님이 계시는 모습이 “신비롭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가운데 보이지 않게 계시는 하느님께 기도하고, 묵상한다.
그러면서 우리와 함께, 우리 곁에 계시는 그분을 느끼고, 체험하고,
그래서 가능하다면 손으로 만질 수도 있는 은총을 청하게 된다.
“예수님, 저희가 참으로 힘들 때 그 때,
당신이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 바로 우리 곁에 계심을 저희가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참으로 기꺼이, 참으로 기쁘게,
숨어 계신 당신께 승복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계신다.
이런 것이 신비다.
그리고 그것이 하느님의 현존이다.
하느님이 보이지 않아서 답답한가?
그렇다면 안심하라.
그럴수록 하느님은 바로 당신 곁에 계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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