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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이고, 내 돈 육백원! - 최강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18 조회수619 추천수4 반대(0) 신고
 

아이고, 내 돈 육백원!

                                                           


   다시 새해가 밝았다. 한 해가 어찌나 금방금방 지나가는지 약간 멀미가 날 지경이다. 언제나 그렇듯 새해를 맞이하면 여러 가지 비장한 각오들이 스물스물 기어 올라오기도 하지만, 몇 해 전부터는 새해를 맞이하는데도 일부러 요란을 떨지 않고 조용하게 맞이하려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찾는 것’보다는 ‘안 해도 좋을 일을 안 하는 것’쪽으로 관심이 더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또 다른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들 삶의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일이 즐겁다.


   어느 주일 오후, 쓰촨성의 조그마한 도시에서 살면서 주변 곳곳에 산재해 있는 나환우들을 돌보는 일에 젊음을 바치고 있는 동료선교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겨울이 오면 발가락이 문드러져서 일반 신발을 신을 수 없는 나환우들에게 그들만을 위해 특별 제작한 신발을 전달하는 일이 급선무인데 혼자서 그 일을 하기에는 일손이 너무 달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번 방문 때 다리에 통증이 너무 심하다며 신부의 손을 붙잡고 제발 다리를 잘라달라고 사정하는 한 나환우의 안타까운 사정도 전해 주었다. ‘얼마나 통증이 심하면 자기 다리를 잘라달라고 저렇게 사정을 할까’하는 측은한 마음을, 그리고 자기 다리를 자를 돈도 없이 가난한 나환우들의 삶에 대해 괜히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달래려 혼자서 시장 귀퉁이에 앉아 술 한 잔 기울이고 있다는 그의 목소리에는 다소 지친 듯한 한숨이 간간히 섞여 있었다.


   이럴 때 ‘너를 위해서 기도 할 테니 부디 힘내라’는 상투적인 말은 그리 큰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찰나지간, 눈앞에서는 그와 함께 로마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힘들었던 순간순간들이 입체영화처럼 생생하게 펼쳐졌고 나는 그를 찾아가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그 순간 내가 해야만 할 일이라고 느꼈다.

 

   “김 신부! 알았네. 이번 주말에 봄세.”


   내가 살고 있는 허베이성의 스자좡에서 그가 살고 있는 쓰촨성의 시창까지 기차로 달려서는 몇 차례 갈아타기를 반복하면서 가는 데만도 꼬박 하루가 넘게 걸리는 거리라서 할 수 없이 비행기를 이용해야만 했다. 나는 즉시 비행기를 구입하는 곳으로 달려가서 시창까지 가는 왕복 네 장의 비행기 표를 샀다. 이제 주말이 되면 그를 향해 달려가는 일만 남았다. 세상 뭐 복잡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면 되고, 보고 싶으면 가서 보면 그만이지. 단순하게 살자고!


   단순하게 살자고? 그렇게 살면 좋지만 인생이란 것이 언제나 우리들 마음먹은 대로 쉽게만 풀려가지는 않는다. 화요일 오전, 어느 항공사에서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애초에 예정되었던 시창에서 중간 연결 공항이 있는 ‘청두’라는 곳까지 돌아오는 항공편이 갑자기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떡하라고? 돌아오는 항공편 중 하나가 취소되면 갈 수는 있지만 제때에 돌아올 수가 없는 나는 어떡하라고? 바로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서 어떤 대책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루 늦춰서 그 다음 날 출발하는 항공편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일정 모두 하루를 늦출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렇다면 일정 전체를 취소하는 일 밖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스자좡에서 청두까지 가는 비행기 표가 시간을 바꿀 수도, 환급을 받을 수도 없다는 조건이 걸려 있는 또 다른 항공사의 값 싼 표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정을 취소할 경우 그 한 장의 표는 환급을 받지 못하고 고스란히 날려야만 하는 처지였다. 자세한 사정을 설명해 가면서 이런 경우 피해를 여행자가 고스란히 당해야만 하느냐고 따졌지만 항공사의 대답은 ‘사정은 딱하게 되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일정을 바꾼 것도 아니고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항공 스케줄을 취소해서 일어난 일인데도 그 피해가 내가 다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 다소 불합리하고 억울하게 느껴졌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한 장의 비행기 표에 해당하는 돈 육백원을 허공에 날리고 일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돈 육백원이면 노동자의 반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인데...... 아이고! 내 돈 육백원! 하지만 이미 지나 간 일, 어쩌랴! 잊자! 이런 일은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빨리 잊자고? 이런 일은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긴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그 날, 화요일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함박눈이 꼬박 이틀을 쉬지 않고 내리더니 급기야 온 도시가 허리까지 닿을 정도의 눈에 덮여 기능이 완전히 마비가 되어버렸다. 유사 이래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하는데 이렇게 많은 눈에 익숙하지 않은 스자좡 사람들은 그야말로 패닉 현상에 빠져들었다. 시장에 가도 먹을 것이 없고, 있다 해도 가격은 이미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올라 있었다.


   총리가 방문을 해서 재난 상황을 보고 받고, 눈을 치우기 위해 주변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이 총동원되고, 학교나 모든 공공기관은 문을 닫았다. 이쯤 되니 당연히 공항도 폐쇄가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만약 내 발로 찾아가서 비행 일정을 취소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허공에 날린 그 비행기 표도 어떤 형태로든지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는 말이 되지 않은가? 하지만 이렇게 많은 눈이 내려서 공항이 폐쇄가 될 줄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폭설에 집에 갇힌 며칠 동안 ‘허허허’ 연신 쓴웃음만 내뱉고 있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한다. 아니, 내일 일은 고사하고 한치 코앞에서 벌어질 일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 땅을 치며 후회를 하고, 이미 내린 결정이나 약속을 무리하게 번복하거나 취소하면서 썩 유쾌하지 못한 상황들을 연출해 내기도 한다. 어떤 이는 불확실한 미래를 알기 위해서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다니고 점쟁이가 해주는 말에 울고 웃는다.


   교통사고는 언제나 눈 깜짝하는 찰나지간의 차이로 우리들에게 닥치거나 우리들을 비켜가고 있고, 몇 년 뒤에는 세상의 종말이 닥칠 것이라는 종말론은 잊힐 만하면 슬그머니 떠오르는 단골 메뉴가 됐다. 아무튼 우리는 모른다. 바로 코앞에서 벌어질 일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하고, 불확실은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우리들 인생은 이러한 불확실성의 바다를 떠다니는 위태로운 일엽편주와도 같아 보인다.


하지만 만약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할까? 만약 내일, 혹은 올 한 해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 운명은 어떻게 펼쳐질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세상은 어떻게 변해갈지를 우리가 모두 알 수 있다면 우리들의 삶은 훨씬 안정적이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만약 한 잔의 포도주를 마시면 미래에 벌어질 일을 모두 알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된다면 당신의 그 운명의 잔을 마시겠는가?


   나는 마시지 않겠다. 만약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내가 환히 알고 있다면 그 시간을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날’, 내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미 답을 다 알고 있는 연습문제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풀어야 하는 것 같은 인생, 그것이 내 인생이라면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사는 맛도 나지 않을 것 같은데......


   내일이 없는 삶, 감춰짐이 없이 이미 모든 것이 드러난 삶 안에서 희망은 어디에 자리할 수 있을까? 희망은 언제나 불확실한 미래에 숨겨져 있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미래 안에 숨겨진 단 하나의 확실성!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그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바로 우리를 마음 설레면서 내일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게 하는 희망의 근원이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황량한 광야를 걷게 하시지만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는 틀림없이 우리를 믿음의 땅, 구원의 신세계, 깨달음의 경지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희망의 이유이다.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알 수 없는 내일로 발을 디디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안에서 희망을 가지는 것이 바로 ‘나’를 버리면서까지 ‘너’를 사랑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일생이자 그의 가르침의 모든 것이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연기와도 같은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옅어지다가 결국 사라지고 말뿐 우리 손으로 잡을 수는 없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준비하고 계획하지만 내일은 언제나 하느님의 영역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내일의 선물일 뿐 아직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은 아니다. 남은 것은 오늘, 오늘 뿐이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은 바로 ‘지금, 그리고 여기’라는 시간에 집중하면서 맘껏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에 집중하면서 살아가는 단순한 삶에는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만이 있을 뿐, 과거에 대한 후회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필요 없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섭리대로 흐르고 있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 오늘 하루를 신실한 믿음 속에서 보낸 뒤 맞이할 구원과 깨달음에 대한 희망, 그리고 그 믿음과 희망이 이끄는 뜨거운 사랑으로 올 해도 하루하루를 정성들여 보내기 소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다보면 금방 또 내년이라는 시간에 가 닿아있겠지. 친구들! 올 한 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살면서!


▒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 신부(중국 허베이성의 스자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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