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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농사꾼목사, 빈민목사>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19 조회수607 추천수14 반대(0) 신고
 

<농사꾼목사, 빈민목사>


어제 광주역에서 교회신자가 10여명쯤 된다는 농사꾼목사 주평무 목사,

노숙자 식당을 운영한다는 빈민목사 강목사와

그 사모님을 난생 처음으로 만났다.

강목사는 이름으로 서로 인사를 했어도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얼굴들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특히 강목사 사모님은 나와 같은 광산김씨 중자항렬(균자항렬)임을

확인하고 오빠뻘 형님을 만났다고 좋아했다.

나도 그 사모님에게 호감이 갔다.


주목사와 강목사가 나보다 14년쯤 후배 쉰네 살이라 하니

그 사모님은 15년이나 그 이상 후배가 되리라.

내가 남자여서 그런지, 나보다 한참 어린 여자여서 그런지,

강목사 사모님 인상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물론 36년간 살 비비며 살아온 내 마누라만큼은 아니라 해도 그랬다.


내가 이름붙인 농사꾼목사, 빈민목사라고 해도

주목사와 강목사는 입성이나 얼굴생김새나 말투가

농사꾼이나 빈민이 아니었다. 최민식인가 하는 사진작가가

한겨레신문에다 한 번씩 싣는 농민, 노숙자 얼굴은 아니었다.


주목사는 이른바 위트가 번뜩였고,

강목사는 한국신학대학교 출신답게 학자풍이었다.

30년 동안 동내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한

목수, 장인이었으리라 상상하는

예수의 얼굴과 손바닥과 풍모는 아니었다.


광주역 앞에 있는 모밀집에서 모밀국수이나 모밀짜장을

사드리려 했는데, 소형승용차를 몰고 온 주목사가

광주에는 처음 오는 길이니 좋은 곳으로 데려가 달라 해서

무등산 산장으로 올라갔다. 금남로와 5․18 묘지도 보고 싶다 했다.


산장에서 어떤 나이배기 남자가 삐끼(손님끌기)를 했다.

그 남자가 옆에 누가 있는 것처럼, 아야, 손님 안내해 드려라 해서,

사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진도개처럼 생긴 누렁이가 어슬렁거리며

앞장을 서서 식당 앞에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그 식당으로 가서 닭찜과 동동주와 소주를 시켰다.

술을 곁들인 식사라서 그런지, 처음 만났어도 의기투합해서 그런지

자리가 무척 즐거웠다. 내가 소변을 보러 간 사이에

가난할 것이 뻔한 그들이 식사대를 미리 지불해서 미안했다. 

 

자기들이 예수처럼 살려고 고민하고 있을 주목사와 강목사는

해방신학 쪽으로 성서와 신학을 소개한다는 내가 무슨

비결이라도 귀띔해 줄줄 알고 말을 시켜서 한참을 지껄였다.

그들처럼 살지 못하는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렇게 많은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닭찜과 소주와 동동주를 시켜 이렇게 성찬을 먹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날마다 10만 명의 형제자매들을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죽이고 있다는 사실이

해방신학의 출발점이라고, 어쩌고저쩌고 지껄였다.


그리고 노동자목사, 농사꾼목사, 빈민목사라는

용어가 정착되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고 겸연쩍다.


(스스로 ‘사랑수’라고 애칭을 붙인 최종수 신부,

박노해 시인 형님 박기호 신부,

당장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와 나이가 비슷할 정신부는

농사꾼신부다. 성찬성이가 몇 십 년 전에 영등포 신길동인가로

데려가 만나게 해준 외국인 노동자신부-빈민신부도 있었다.

수도자 출신으로 노숙자 밥집을 운영하는

서영남 빈민신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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