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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21일 야곱의 우물- 요한 8,1-11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21 조회수477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1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그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놓고, 4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 6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 하고 물으셨다. 11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시작 기도
하느님 ‘아빠, 아버지’, 오늘 말씀에서 우리 구원을 위한 당신 자비를 깨닫도록 마음을 이끌어 주십시오.

독서
예수님은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질문에 답하시기 전과 후에 두 차례나 ‘몸을 구부리고’ 땅 위에 무엇인가 쓰십니다.(6. 8절)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을 길게 늘어놓기 좋아하는 요한이 이 부분에서 침묵을 지키니, 예수님이 쓰신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6ㄱ절에서 예수님을 고소할 구실을 찾기 위해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생각을 물었다고 친절하게 해설하는 요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예수님의 상징적 행위 자체에 담긴 어떤 의미를 우리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땅 위’ 에 쓰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인간의 마음 안에’ 쓰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어로 ‘땅(gh/)’ 은 사람이 사는 땅이나 지역, 세상, 나아가 땅 위에 사는 사람들, 말씀의 씨앗을 받아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인간의 마음을 상징합니다.(마르 4, 5. 8. 26. 28) ‘땅 위에 쓰신’ 행위는 예수님을 인간의 ‘마음 안에’ 새로운 율법을 쓰시는 분, 사람들의 마음 자체를 회개시키는 분으로 드러냅니다. 따라서 이러한 묘사는 예수님이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보다 더 뛰어난 분임을 보여주려고 마련된 요한 이야기의 세부사항일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7절)는 말씀 후에 다시 몸을 굽히고 무엇인가 쓰시는 중에(8절) 모든 사람이 ‘하나씩’ 떠나갑니다. 이 표현은 여인과 예수님만이 남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음을 암시합니다. 아마도 그분의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 안에 깊이 메아리쳤을 것입니다. 침묵을 지키며 구부리고 계시는 예수님의 몸을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하느님 영광의 빛나는 광채를 보게 되어 마음이 움직였을 것입니다.
‘이른 아침’ 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예수님이 언제 허리를 펴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아주 늦은 시간, 예루살렘 성전 대리석 벽이 지는 태양 때문에 온통 황금빛으로 빛나는 저녁 무렵이었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 은총의 햇살을 받으면 어떤 이는 갑자기 자신의 본모습을 바라보고 회개 체험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죄를 보는 데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땅바닥에 편안하게 주저앉은 것도 아니고, 한참 동안 허리를 “구부리고 있다가” (마르 1, 7 참조) 허리를 다시 폈을 때,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었을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피곤에 지친 예수님이 혼자 남은 간음한 여인에게 먼저 말을 거십니다. 우물가에 있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셨듯이 (요한 4,1 – 42) 오랜 시간 앉지도 못하고 “가운데에 그대로 서있던” (9절) 여인에게 예수님은 잘살라는 윤리적 훈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녀에게 자비와 용서를 베풀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시고, 새로운 삶을 살라고 권고합니다. 늘 먼저 용서하시고,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는 복음서의 전형적인 예수님 모습이 여기서도 드러납니다.

이 본문 앞에서 예수님께서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7, 37)고 외치자 사람들은 그분의 정체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음 본문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8,12)라고 말씀하시자 바리사이들은 예수님 스스로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니 유효하지 않다고 반발합니다. 전후 문맥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오늘 복음이 예수님을 생명의 샘물이요 세상을 비추는 분이시며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보다 모세 율법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분이심을 알려주기 위해 여기에 배치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율법 해석은 그분의 인간적 생각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각에서 나온 것임을 예수님 스스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요한 8, 28ㄷ) 나아가 요한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 이라고 증언하는(요한 1, 1 – 2) 예수님이 ‘사람들 사이에서’ 하신 일은 ‘하느님의 감추어진 얼굴’ 을 드러내는 것임을 오늘 본문은 보여줍니다.

성찰
우리는 그리스도를 향해 ‘매일’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참으로 ‘오랫동안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잘되어 가는 듯이 보이는 삶이 사실은 ‘하느님의 아들딸’로서 걸어야 할 삶의 핵심에서 얼마나 벗어나는 것인지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제2독서는 바오로가 겪은 이 그리스도 체험을 소개합니다.(필리 3, 8 – 14)

기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시편 126, 3)
임숙희(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 성서영성 신학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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