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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21 조회수771 추천수1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3월 21일 사순 제5주일
 
 
 
 "Then neither do I condemn you,"
Jesus declared.
"Go now and leave your life of sin."
(Jn.8.11)
 
 
제1독서 이사야 43,16-21
제2독서 필리피 3,8-14
복음 요한 8,1-11
 
 
지난주에는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두 군데에서의 피정 강의, 텔레비전 방송 녹화, 그리고 제가 소속되어 있는 남동지구 판공성사도 있었습니다. 정말로 눈코 뜰 새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바빴습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를 다녀온 뒤 바로 이어지는 일정이었기에 더욱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쁘다보니 뒤로 미루어지는 것이 생기더군요. 바로 기도였습니다. ‘이것만 하고서 기도해야지. 지금 기도하는 것보다는 이 일이 더 중요하니까 기도는 나중에 하자.’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형식적으로만 기도할 때가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도보다 즉, 주님과의 만남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다행히 주님께서는 우리를 완전히 소유하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꼭두각시 인형처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 주시지요. 이렇게 자유를 보장해줘서 그럴까요? 우리는 주님의 뜻을 먼저 실천하기보다는 내 뜻을 먼저 취하고 내 일을 먼저 하려고 할 때가 참 많았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워 놓고 예수님의 판단을 묻습니다. 당시 간음죄는 공동체 앞에서 공개처형을 당하게끔 되어있지요. 따라서 이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와서 예수님께서 힘주어 말씀하신 사랑이 먼저인지, 모세가 말한 정의로운 율법이 먼저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있었지요. 이번에는 분명히 자기들의 판단이 옳다고 예수님께서 허락하실 것이라고, 그래서 무조건 사랑만을 이야기하면서 용서하려는 예수님의 모습이 잘못되었음을 드러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랑도 율법도 먼저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대신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시지요. 사실 이 여자가 정말로 죄인인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간음죄는 혼자서 범할 수가 없거든요. 현장 검거했다고 하지만 왜 남자는 없고 여자만 끌려와야 할까요?

자신들의 생각만 옳다고, 자신들의 생각이 율법의 정신과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했던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을 집어 들었으나 던질 수 없었습니다.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 생각했던 자신이었으나, 실제로는 너무나 많은 죄에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은 전혀 따르지 않으면서도 내 뜻은 어떻게든 관철시키려는 욕심, 자기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이기심을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주님의 뜻이 완성되어야만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루소는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덜 힘들다.”

외로움에 젖어 살라고 주님께서 공동체를 만들어 준 것이 아닙니다. 함께 어울려 살면서 기쁘게 살라고 공동체를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주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에게도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외로움에 처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역시 똑같은 죄인임을 기억하면서, 주님의 마지막 말씀을 마음에 담아야 하겠습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 짓지 마라.”



자기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R. 레슬리)




넘침을 경계하는 술잔(‘행복한 동행’ 중에서)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란 뜻의 계영배(戒盈杯)는 중국의 옛 성현들이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만들어 곁에 두고 교훈으로 삼았다고 전해지는 술잔이다. 과음을 삼가는 잔이라 하여 일명 절주배라고도 불리는데, 술이 잔의 7할 정도 차오를 때까지는 아무렇지 않다가 그 이상 차오르면 밑구멍으로 모두 새어 버리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

제나라 임금이던 환공은 이 술잔을 곁에 두고 보며 스스로 지나침을 경계했다. 계영배는 조선후기 실학자들에 의해 국내에 들어왔는데, 의주 거상 임상옥 역시 이를 보며 항상 과유불급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계영배는 너나없이 가득 취하려고만 하는 우리 삶에 과욕의 허무함과 자족의 삶을 일깨워준다. ‘가득’을 향해 치닫는 욕심을 경계하며 ‘적당히’를 지킬 줄 아는 절제의 지혜, 우리가 항상 곁에 두고 배워야 할 계영배의 미덕이다.
 
 
 
 
Ernesto Cortazar - You Are My Dest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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