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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23 조회수1,031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3월 23일 사순 제5주간 화요일
 
 
 
 Why have you brought us up from Egypt to die in this desert,
where there is no food or water?
We are disgusted with this wretched food!
(Nm.21.5)
 
 
제1독서 민수기 21,4-9
복음 요한 8,21-30
 
 
경상도 출신 아버지와 그 아들의 행동을 비교하는 글이 있더군요.

아들: 여자 친구가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나타났다. 말이 필요 없다. 바로 키스한다.
아버지: 간만에 엄마가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있다. "쥐 잡아 묵었나?"

아들: 여자 친구와의 약속 시간에 10분 늦었다. "사랑스런 우리 자기, 많이 기다렸어?"
아버지: 3일 동안이나 무단 외박하고 들어왔다. "밥도..."

아들: 오랜만에 여자 친구에게 꽃을 선물한다. "너보다 이쁜 꽃은 없어서 그냥 장미 샀어."
아버지: 간만에 화분 하나 사가지고 들어왔다. "니 이 화분 또 죽이마 니가 죽는다. 알았나!"

아들: 여자 친구와 밥을 먹는다. "많이 먹어. 너는 먹는 모습이 제일 예뻐."
아버지: 엄마와 식사를 하고 있다. "니 앞으로 밥통에 밥 비비마 죽는다! 알았나?"

말투가 무뚝뚝하기에 경상도 아버지를 예를 들은 유머가 아닌가 싶네요. 그러나 이 모습이 사실 많은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자기와 편한 관계가 되면 막 대하게 되는 이상한 습관이 있지요. 그러면서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습을 당연히 이해해 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피정이나 교육에 참석한 뒤에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면서 이제는 주님을 배신하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마음이 점차 사라집니다. 그러면서 강조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부족해서 이렇지만, 주님께서는 그래도 나를 사랑하신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즉, 주님을 자기 입맛대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상태에서는 어렵고 힘든 시련의 시간이 다가오면 분명히 주님께 불평과 불만을 던지고 말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이 이집트 억압에서 해방되어 광야로 나왔을 때에는 얼마나 주님께 감사했을까요? 더군다나 주님께서는 ‘만나’라는 자기들이 먹을 음식까지 직접 마련해주십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며 소홀해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지요.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많은 은혜 속에 살면서도 불평이 떠나지 않았던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을 높이 올리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둥 위에 달아놓은 구리 뱀을 쳐다보고서야 살아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들어 올려 지신 주님을 통해서만 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프랭클린 루스벨트).



 

짧은 동화 긴 생각(이규경)

어리석은 개미는
자신의 몸이 작아
사슴처럼 빨리 달릴 수
없음을 한탄하고
똑똑한 개미는
자신의 몸이 작아
사슴의 몸에 붙어
달릴 수 있음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단점을 들여다보며
슬퍼하고
똑똑한 사람은
자신의 장점을 찾아내어
자랑한다.
 
 
 
Andante- T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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