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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셋방살이의 서러움>-서영남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23 조회수504 추천수10 반대(0) 신고
셋방살이의 서러움
[서영남 칼럼]
 
2010년 03월 14일 (일) 16:10:29 서영남 syepeter@gmail.com
 

   
▲ 사진/한상봉

민들레의 집 식구들은 겨우 방 한 칸에 세 들어 삽니다. 누구는 밥도 그냥 준다면 나중에 옷도 그냥 사주고 집도 그냥 사줘야 되느냐? 라고 합니다. 몸 누일 곳조차 없는 민들레국수집의 VIP 손님들에겐 방 한 칸이라도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방을 한 칸씩 전부 마련해 드릴 수는 없지만 찾아오시는 배고픈 분들께 맛있고 영양 풍부한 음식을 맘껏 드시게 하고 싶습니다. 때에 절고 다 떨어져서 옷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을 걸친 우리 손님에게 헌옷이라도 깨끗하게 세탁된 옷을 드리고 싶습니다. 밑창이 너덜거리는 신발 아닌 신발을 싣고 추위에 떠는 우리 손님들에게 새 운동화를 드리면 좋겠지만 헌 운동화라도 맘껏 드리고 싶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의 형편이 조금 좋아지면 돈을 조금씩 모았다가 우리 손님 한 분을 민들레의 집 식구로 초대합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들은 따로 따로 삽니다.

늙으신 어머니까지 이런 곳에

삼 년 전에 늙으신 어머니와 함께 부평역 근처에서 노숙하던 사십대 중반의 아들이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민들레국수집에 식사하러 왔다가 저에게 혼이 났습니다.

"세상에 늙으신 어머니까지 이런 곳에 모시고 와서 밥을 드시게 하다니……. 나쁜.."

그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증을 잘못서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았습니다. 부평역 근처에서 어머니와 노숙하면서 어머니만이라도 찜질방에서 주무시게 하려고 하루 온종일 종이상자를 줍고 고물을 주워도 겨우 어머니를 찜질방에서 주무시게 할 정도의 삼천 원을 버는 것도 어려웠답니다.

삼천 원이라도 마련되면 어머니를 찜질방에 모셔놓고 자기는 부평역 지하도에서 잤다고 합니다. 밥은 경로식당에 모시고 가서 드시게 했는데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부평구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어서 밥도 못 먹게 되었답니다. 부평역전의 어느 순대국밥 집에서 너무도 배고파서 순댓국 시켜먹은 다음에 돈이 없어서 어머니 것과 자기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나서야 풀려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후 주민등록증 없이 산 것입니다. 배는 고프고 민들레국수집에서는 그냥 밥도 준다고 해서 물어물어 거의 세 시간이나 화수동을 헤매다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며칠을 두고 보다가 겨우 방 한 칸을 세 얻었습니다. 보증금 오십 만원에 월 십만 원의 단칸방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이삿짐이라고 들고 온 것은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물건 두 개뿐입니다. 최소한의 살림살이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월세 십 만원씩 석 달 치는 어느 사회복지 단체에서 지원해주기로 했습니다. 아들에게 혹시 집세를 내기가 어려우면 미리 이야기해 달라고 했습니다. 방세를 제대로 내지 않으면 다음에 집 얻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섯 달이 지났습니다. 어느 사회복지 단체가 석 달의 집세는 내어준다는 약속을 잘 지켰습니다. 그 후에 달마다 집세 낼 즈음에 아들에게 물어보면 세를 잘 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두 달 전부터 집세가 안 들어온다고 합니다. 알아보았습니다. 밀렸는데 곧 갚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또 두 달이 지났는데 집주인이 방을 비워달라고 합니다. 방세를 내지 않았으니 방 보증금에서 제하겠다고 합니다. 다섯 달이나 방세를 못 낸 것입니다. 당장 방을 비워달라고 합니다. 기가 막혀서 아들에게 가 보았습니다. 누워있습니다. 몸이 아파서 일을 잘 못 다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취직을 해서 월급을 받는 날 빚쟁이가 찾아와서 다 뺏어갔다고 합니다. 방세 못 낸 것이 미안해서 방세 냈다고 했는데……. 말을 못합니다.

주인에게 서러움 받지 않고 셋방살이를 할 수 있도록

마침 동네에 보증금 없이 방 한 칸에 부엌이 붙어있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는 조건이 별로지만 보증금이 없다는 그 것 때문에 그 집으로 서둘러 이사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방세 십 만원을 내지 못하면 대신 내어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집에서 전기세와 수도세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많을 때는 4만원에서 4만5천원이나 냈다고 합니다. 방세는 선불로 십만 원을 내는데 전기 수도 사용료도 방세의 40-45%를 낸다는 것은 참 너무 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할머니가 지난해에는 동네의 희망일자리를 해서 이삼십만 원 벌어서 방세를 해결했는데 올해는 지난해에 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조차 없습니다. 지난달에도 할머니가 아주 미안한 듯 방세 마련 못했다고 해서 대신 내어드렸습니다. 며칠 전에도 할머니가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전기 수도세를 내고나니 방세를 마련할 길이 없다고 합니다. 아들은 허리가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방세를 대신 내어주었습니다.

할머니가 하소연을 합니다. 주인집에서 낮에는 움직이지도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주인집 아들이 PC방을 운영하는데 새벽에 와서 낮 동안 잠을 잔다고 합니다. 낮에 조금만 소리 내도 시끄럽다고 난리라고 합니다. 새벽에 아들이 요란하게 문 열고 들어와서 요란스레 씻고 그러면 밤잠을 설치기 일쑤라고 합니다. 셋방살이의 서러움을 온몸으로 겪고 계십니다.

마침 고마운 분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우선 오십 만원을 보낸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매달 십만 원씩 후원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만 원이 모아지면 어려운 분들을 위해 방을 하나 얻어 도와주라고 합니다. 그리고 매달 보내드리는 십만 원으로 방세도 내어주시면 고맙겠다고 합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주인에게 서러움 받지 않고 셋방살이를 할 수 있도록 조그만 독채 하나 얻어드리자 마음먹었습니다.

강화부동산 할머니께 독채로 방 하나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마침 독채로 방 한 칸이 있는 집이 있다고 합니다. 기름보일러고 재래식 화장실인데 따로 떨어져있다고 합니다. 서둘러 함께 가 보았습니다. 바로 주헌씨가 살고 있는 집의 윗집입니다. 넓은 방 한 칸, 다락방도 있습니다. 부엌이 있습니다.

즉시 계약을 했습니다. 보증금 백만 원에 월 십 만원 선불입니다. 재개발 될 때까지 사용할 수 있기로 약속했습니다. 부동산 수수료 육 만원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집 열쇠를 받았습니다.

할머니께 집을 보여드렸습니다. 뛸 듯이 좋아합니다. 내일 당장 이사하라고 했습니다. 방세를 그제 냈는데 방세 아까워서 어쩔 줄 모릅니다.

이사를 했습니다. 가난한 이삿짐은 옮길 것도 거의 없습니다. 몇 번 손에 이삿짐을 들고 날랐습니다. 엘피지 가스를 연결해야 하는데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고 합니다. 십 만원을 드렸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다시 일어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도 셋방살이의 서러움을 면해서 다행입니다.


서영남/ 인천에 있는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 노숙자 등 가난한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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