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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언출필행(言出必行)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23 조회수667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바리사이들이 “당신이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있으니, 당신의 증언은 유효하지 않소.” 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여도 나의 증언은 유효하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심판을 하여도 내 심판은 유효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의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은 유효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로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에 관하여 증언하신다.”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의 아버지도 알지 못한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곁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을 잡지 않았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 8:12-20)
 
비잔틴의 오크리다의 데오필랙트(Theophylact of Ochrida, 1055-1107) 대주교는 복음서 주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바리사이들의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소?”라는 질문에 대하여 “이는 간음에 의해 태어나서 너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거나, 확실하지도 않지만 너의 아버지는 비천한 요셉인데, 왜 그리 자주 아버지를 들먹이느냐고 비아냥거리는 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님을 난처하게 하기 위하여 진리를 모르고 그런 질문을 했고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의 아버지도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셨습니다.”고 해석했다. 그들이 비아냥거리든 말든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당신께서 누구신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는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다.(요한 7:28)
따라서 그들이 전혀 모르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시면서 하신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섣불리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지 못하게 한다. 누구나 낯선 사람에게는 자신을 알게 하려고 애쓰게 마련이다. 손님 접대를 섣불리 하면 안되는 것은 “손님 접대를 하다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히브리 13:2) 그러나 어떤 사람을 매일 만나고 그 사람이 어디에 사는지를 안다면 그에 대하여 더 알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목수며 마리아의 아들이다”고 말했다.(마르코 6:3) 위대한 사람이 대로(大路) 상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는 위대한 사람이오.”하고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했다. “태양은 눈 먼 사람이나 눈이 보이는 사람에게 골고루 비추지만 눈이 보이는 사람만이 빛을 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지혜인 말씀은 언제든지 들을 수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듣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의 눈을 갖고 있지 않아서 알아 듣지를 못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몰라서가 아니라 궁지에 빠뜨리기 위하여 증언해보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증언하였고,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맡기신 일들이 증언하고 있고, 아버지의 말씀이 증언하고 있고, 성경이 증언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요한 5:31-47) 바오로 사도는 “신자라면 자신의 믿음과 소망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주의자들처럼 행동으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신자임을 증명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증언한다는 것은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믿음을 보이라는 말이다. 본래 “lief”는 “사랑(love)”을 의미하는 고어(古語)로 이제는 쓰이고 있지 않지만 “믿음(belief)”이라는 단어에는 아직도 남아 있다. 사랑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또 존경이 없는 사랑은 있을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할 때에는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믿는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첫 번째 계명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말씀하신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햄릿』에 “말에 행동을 일치시켜라. 행동에 말을 일치시켜라.”는 대사가 나온다. 언출필행(言出必行)을 말한 것이다.
말로만 믿는다고 말하지 말고 몸으로 믿음을 보이라는 말이다. 몸으로 믿음을 보이게 되면 이는 곧 빛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인도의 시골에는 대부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하여 예수님 시대와 같은 호롱불로 집을 밝히고 산다. 이 시골 마을들 중의 한 사원(寺院)에는 천정에 수 백 개의 호롱불을 올려 놓을 수 있는 아주 큰 등잔이 걸려 있었다. 사람들이 밤에 사원에 갈 때에는 각자 집에서 쓰던 호롱불을 들고 가서 아주 큰 등잔에 올려 놓는다. 마지막 주민이 도착하면 어두웠던 사원이 “영광스러운 빛의 바다”로 바뀐다.
 
교황 요한 23세가 말했다. “세상의 모든 신자들은 모두 빛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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