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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복받은 사람 / 지혜에 이르는 길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25 조회수563 추천수3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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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축복받은 사람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 받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래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첫 인사말을 합니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복을 받기 위해 조상들의 묏자리를 중시한 것부터가 복이란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은 하느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게 복을 주셨다는 것에 대한 확신할 수 있는 증거 혹은, 복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말씀을 보면 이사악은 아버지의 모든 유산을 상속받았고, 하느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이어받을 아버지의 적자(嫡子)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약속을 잘 깨닫지도, 확신하지도 못했으며, 인간적인 계획으로 자신의 안전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복이 내 것이다!" 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복을 받았으면 복을 누리고 살아야 그 복이 실제적인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이사악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한 복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즉 이사악의 가정을 지키셨으며, 그의 농사에 '백배의 축복'(창세 26,12)을 주셨습니다. 그러자 주위에서 그를 시기해 그의 우물을 막아버립니다. 하지만 이사악은 더 이상 자신의 꾀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느님의 복을 경험했고 하느님께서 아버지에게 하신 약속이 자신의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복을 유업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이 우리에게 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갈라 3,29)
우리는 그 복을 믿고 취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 약속, 비전에 따라 살아야 우리가 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비전을 따라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교회에 주신 비전에 헌신하는 것이 바로 비전을 따르는 삶, 곧 축복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하느님은 이미 우리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음성, 약속, 비전에 순종할 때 그 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복을 줄 것 같은 세상의 유혹이나 음성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음성에 반응하십시오.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뿐이십니다.

(윤정중님)



지혜에 이르는 길


욥기 28장은 지혜의 찬가이다. 먼저 지혜 찾기를 채광작업과 비교한다. 광부들은 별의별 방법과 기술을 고안해 광물들을 잘도 찾아낸다. 각종 광맥이 숨어 있는 장소와 거기에 이르는 길과 채굴 방법을 안다.
그러나 지혜는 광물을 찾듯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높은 산도 깊은 바다도 그 누구도 지혜 있는 곳을 알지 못한다. 광부는 각종 보물이 있는 장소와 그곳에 이르는 길을 용케 알아 갖가지 기술을 총동원해 쉽게 캐내지만 지혜는 그 장소도 길도 방법도 도무지 발견할 수 없는 깊은 심연 속에 감추어져 있다.

게다가 지혜는 금은보석을 사고팔 듯이 할 수 없다. 금은이나 루비, 사파이어로도 그 값을 치를 수 없다. 산호, 수정, 진주, 에티오피아의 토파즈로도 살 수 없다. 권력이나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것이다.

당대 최고의 과학기술로도 찾을 수 없고 최대의 장사술로도 도무지 그 값을 매길 수 없어서 아예 사고파는 것이 불가능한 지혜, 도대체 그 지혜는 어디에서부터 올까? 지혜의 출처, 그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피조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은, 지혜가 있는 곳에 이르는 길을 아신다. 그분만이 지혜가 있는 곳을 아신다”(욥 28,23)
지혜는 하느님으로부터 온다! 지혜가 묻힌 장소, 거기에 이르는 길, 그 장소와 길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이나 자연이 아니라 창조주 하느님께 있다. 채광 기술이나 장사와 같이 인위적 방법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선물로 주실 뿐이다.

이제 인간이 지혜 그 자체에 도저히 이를 수 없지만 가장 근사치로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멀리하는 것이 슬기다.”(욥 28,28)

지혜는 소프트웨어이고 우리는 하드웨어다. 지혜가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동안은 지혜로울 수 있으나 우리를 떠날 경우 다시 어리석어진다. 지혜는 우리를 일시적으로 소유할 수 있으나 우리는 지혜를 영구히 소유할 수 없다. 한번 지혜로운 자는 영원히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한동안 지혜로운 듯이 보이다가 어느 순간 형편없이 어리석은 사람으로 추락한 이들이 그 얼마던가. 그리하여 또다시 깨닫는 진리는, 지혜는 죽을 때까지 겸손한 마음으로 사모하고 또 사모해야 할 최고의 선물이라는 사실이다.

“주님, 오늘도 지혜를 사모하오니 주시옵소서!”

(김흥규님)
 




[3월 26일] 지극히 거룩한 생명의 말씀 '복음' <요한 10,31-42>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때에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분께 몰려와 서로 말하였다.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오늘의 묵상]
유다인들은 돌을 던져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사실은 섬긴 것이 ‘아닌’ 결과가 되었습니다. 메시아의 출현을 노래했지만, 정작 오시니까 ‘거짓 예언자’라고 합니다. 성경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자신들이 만들어 낸 메시아를 고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모르기에 돌을 던진 것이 아닙니다. 알려고 하지 않았기에 돌을 던졌습니다. 그들의 무지는 결국 십자가의 죽음을 초래합니다. 종교 때문에 살인을 기획했다면 광신입니다. 미친 믿음이지요. 자신들은 의로움을 내세우지만, 진실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죽이려 들면 상대도 나를 죽이려 듭니다. 내가 남의 종교를 비난하면, 그들도 내 종교를 비난합니다. 신앙이 아니라고 우기면, 결과 역시 마찬가지로 돌아옵니다.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된 현실입니다.

타인의 종교에도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아무리 신앙이 ‘아닌 듯이’ 보이더라도 기본 예의는 갖춰야 합니다. 종교를 떠나 해석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문화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무시하려 드는 것은 참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유럽 종교가 얼마나 우수한 문화를 말살시켰는지 역사는 알고 있습니다. 타 종교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꼈다면 이제는 벗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예수님께 돌을 던지는 유다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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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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