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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27 조회수642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3월 27일 사순 제5주간 토요일
 
 
 
 
 You know nothing,
nor do you consider that it is better for you
that one man should die instead of the people,
so that the whole nation may not perish.
(Jn.11.49)
 
 
제1독서 에제키엘 37,21ㄷ-28
복음 요한 11,45-56
 
 
평소에 남을 못 믿는 의심 많은 사장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책상 위에 있어야 할 만년필이 없어진 것입니다. 이 사장님은 자신의 여직원이 훔쳐간 것이 틀림없다며 아주 호되게 나무랐습니다. 여직원은 자신이 절대로 훔쳐가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장님은 이 방에 들어올 사람은 자신과 여직원밖에 없다면서 따라서 여직원이 분명히 훔쳐간 것이라며 혼을 내는 것입니다. 이에 여직원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을 뿐이었지요.

그런데 잠시 후, 잃어버렸던 만년필이 글쎄 책상 서랍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사장님은 너무나도 미안했지요. 그래서 여직원에게 정중히 사과를 했습니다. 하지만 여직원은 손을 내 저으며 이렇게 대꾸하는 것입니다.

“괜찮아요. 사장님은 저를 도둑으로 잘못 보셨고, 저는 사장님을 신사로 잘못 봤으니 피장파장이네요.”

사실 억울함을 경험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 억울함에 대해 어떻게 대응을 하시는지요? 혼자 분을 참지 못해서 어떻게 할지를 모르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억울함을 준 그 사람을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겠다면서 분노의 칼을 가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한들 손해를 보는 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도 부정적으로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앞선 그 여직원과 같은 지혜로움을 간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스스로 손해를 보는 행동은 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억울한 일을 경험하셨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으신 분이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모함에 의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 중의 하나인 카야파는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바로 아무런 죄도 없는 예수님을 희생양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이렇게 희생양의 위치에 서게 될 때가 종종 생깁니다. 즉, 억울한 일을 경험하는 그때가 희생양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너무나 억울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원수를 만들고 자신을 학대하는 행동은 피해야 합니다.

대신 바로 이 순간 우리가 떠올려야 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지요.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양이 되신 예수님. 따라서 나 역시 그러한 억울한 경험을 통해 예수님의 삶에 조금이나마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이 부활로 연결되듯이, 우리 역시 기쁨의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입니다. 그래서 억울한 일도 참 많이 경험하게 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살 만한 세상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잘못된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반복하는 사람이다.(조지 산타아나)




진짜 웃음(문선희, ‘좋은생각’ 중에서)

딸아이가 여섯 살 되던 해, 다리가 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부분의 동양 사람처럼 조금 휘었다고 보기엔 이상해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진찰을 마친 뒤 상상하지 못한 얘기를 들었다. 다리가 휜 이유가 무릎 성장판에 이상이 있어서라는 것이다. 의사는 이대로 놓아두면 걷기조차 힘들 거라며, 오른쪽 다리부터 수술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게 시작일 뿐이란 걸 그땐 몰랐다. 마지막 수술을 하기까지 무려 7년이 걸렸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왜 하필 우리에게 이런 불행이 생겼을까 하는 원망과, 엄마인 내 탓이란 자책감에 너무 힘들었다.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약 없이 지내기가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비 온 뒤 땅이 더욱 굳어진다는 말처럼, 힘든 일을 이겨 내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졌다.

그런 변화 때문이었을까? 가장 힘들었을 딸아이가 어느 날 교복을 입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다리가 정말 맘에 들어요. 엄마 아빠, 고맙습니다!”

나와 남편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딸아이는 7년 동안 고통마저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어른스러운 아이로 자란 것이다. 곧 이어지는 딸의 한마디. “엄마 아빠처럼 좋은 부모님을 만난 걸 보니 나는 아무래도 전생에 지구를 구했나 봐요.”

“그럼 엄마 아빠는 전생에 지구가 아니라 우주를 구한 모양이네. 그러니까 이렇게 예쁜 딸을 만났지.”

딸의 한마디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가슴에서는 진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Hymne A L`Amour - Josh Gr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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