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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31 조회수994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3월 31일 성주간 수요일
 
 
 
 “Surely it is not I, Rabbi?”
(Mt.26.25)
 
 
제1독서 이사야 50,4-9ㄴ
복음 마태오 26,14-25
 
 
어제 미사 전 고해소에서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있었습니다. 요즘 부활을 앞두고서 많은 분들이 고해성사를 보시지요. 그런데 어떤 형제님께서 들어 오시자마자 좁은 고해소에 술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더불어 담배 냄새도 저의 코를 힘들게 하더군요. 약간 취하셨는지 죄 고백도 아주 천천히 그리고 불분명한 어투로 말씀하십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 어떻게 죄 고백하러 오신 분이 술을 드시고서 오실 수 있단 말인가? 술과 담배 냄새 때문에 정말로 힘드네.’

하지만 이 형제님의 죄 고백을 듣다가 저의 섣부른 판단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얼마나 많이 고민하시고 힘들었으면 저렇게 술을 다 마시고 오셨을까?’

이 분의 아픔을 생각하기보다는 나의 불편함을 먼저 생각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더불어 그토록 사랑을 강조하셨던 주님께 고개를 들 수가 없더군요. 왜냐하면 사랑을 말하면서도 스스로 사랑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아마 이 모습이 세상에 주님을 싼 가격에 팔아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님을 은전 서른 닢에 팔지요. 이는 당시 노예 1명의 값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즉, 유다는 예수님을 마치 자기 노예를 팔듯이 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팔아도 예수님 한 분에 조금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할 때, 얼마나 싼 가격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섣부른 판단으로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사랑의 주님을 세상에 드러낼 수 없다면, 싼 가격에 주님을 세상에 팔아버리는 것이 됩니다. 사랑이 이 세상에 조금씩 사라지는 것은 곧, 주님이 이 세상에 팔려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매 순간 사랑에 반대하며 주님을 싼 가격에 팔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유다처럼 “저는 아니겠지요.”라면서 뻔뻔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지도 않으면서도 자신은 올바르다고 말합니다. 저 사람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정의롭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성당에 나올 수 있느냐고 말하면서, 자신의 죄는 주님의 사랑으로 모두 용서되었다고 떳떳해 합니다.

유다와 같은 교만은 과거 단 한 번만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그 교만은 우리 안에 계속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주님의 몸값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우리가 앞장 서야 할 때입니다. 즉, 주님께서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으면서 보여주셨던 사랑을 간직하고 세상에 실천할 때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몸값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영원히 남는 그림은 생각과 꿈 그리고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지 손재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귀스타브 모로).




기적의 노랫소리(김사비나 외, ‘내가 저자가 되는 감사노트’ 중에서)

‘재주’라는 단어에 집착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노래 잘하는 재주에 말입니다. 천상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몇몇 수녀님의 노랫소리가 부러워 내게 그런 재주를 주지 않으신 하느님께 불평한 적이 여러 번입니다. 내 노래 실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학창 시절 노래방을 가장 두려워했다면 아시겠지요?

하지만 내가 노래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한 때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파킨스병으로 고생하던 엄마가 어느 날 혼수상태에 빠지셨습니다. 코에 호스를 꽂고 몹시 괴로운 표정을 하셨지요. 늘 보고 싶다던 당신의 막내딸이 아무리 “엄마, 엄마.”하고 불러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엄마 곁에 계속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수녀원으로 돌아와야 했지요.

나는 엄마 곁에 계속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엄마가 즐겨 부르시던 성가를 내 목소리로 녹음하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집에서 성가를 녹음했습니다. 엄마 생각에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노랫소리가 탁했습니다. 무반주에 형편없는 실력이지만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녹음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언니에게 녹음테이프를 주며 엄마 병실에 틀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엄마가 깨어나서 네 노래를 따라 부르신다. 웃으시면서 말이야.” 아, 엄마가 내 노래를 따라 부르시다니요. 휴가를 내서 엄마 병실에 찾아가자, 엄마는 활짝 웃은 얼굴로 “우리 막내딸, 왔어?”하며 나를 반기셨습니다. 간호사들은 말하더군요. 엄마가 내 노랫소리를 듣고 깨어나셨다고, 기적이라고.
 
 
 
 
  
Richard Marx  - Now and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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