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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02 조회수1,029 추천수1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4월 2일 주님 수난 성 금요일
 
 
 
  For this I was born and for this I came into the world,
to testify to the truth.
Everyone who belongs to the truth listens to my voice ,
(Jn.18.37)
 
 
제1독서 이사야 52,13ㅡ53,12
제2독서 히브리 4,14-16; 5,7-9
복음 요한이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18,1ㅡ19,42
 
얼마 전 재미있는 만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5살 정도 된 딸이 우유가 든 컵을 들고 아빠에게 내밀며 다가갑니다. 그러자 아빠는 컵 안을 보고는 “우유가 아직 남았잖아. 다 마시고 오면 더 줄게.”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제 딸은 엄마에게 다가갑니다. 엄마는 “컵 바꿔 달라고? 까다롭게 굴지 말고 그냥 마셔.”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딸은 자기 오빠에게 다가갑니다. 그러자 오빠는 자신이 들고 있던 물건을 동생의 컵에 부딪치면서 “건배!”를 외치고 함께 마시는 시늉을 합니다. 그제야 5살 꼬마는 환하게 웃습니다.

이 아이의 속마음을 오빠만 제대로 읽은 것이지요. 즉, 이 아이는 우유가 든 컵을 부딪치며 ‘건배’하기를 원했지만 엄마 아빠는 그렇게 해주지 않지요. 단지 오빠만이 그 마음을 읽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빠만이 동생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을까요? 바로 동생에 대한 이해와 눈높이를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도 이러한 이해와 상대방에 대해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기만을 원하고, 또한 내가 눈높이를 맞추기보다는 상대방이 나의 눈높이에만 맞추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소외되고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주님이 말씀하셨고 직접 보여주셨던 사랑이 점점 사라지기만 합니다.

이렇게 나에게만 기준을 맞추다보니 주님께 대한 눈높이도 맞추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들도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셨지요. 그래서 어제는 제자들의 발을 직접 닦아주시는 큰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오늘은 더 큰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시면서 당신 사랑에 우리의 눈높이를 맞추라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나의 생각과 판단만을 내세워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나아가고만 있습니다.

솔직히 주님의 사랑은 철저히 낮아지는 사랑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낮아지는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데,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면서 더 낮아지는 사랑을 직접 실천하십니다.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래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말씀을 남기십니다.

“다 이루어졌다.”

철저히 낮아지는 사랑만이 주님의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주님 수난 성금요일을 지내면서 우리 사랑의 눈높이를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내가 아닌 주님께 우리의 눈높이를 맞출 때, 주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 역시 세상에 전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휴머니티란, 인간을 목적에 희생시키지 않는 것이다(알베르트 슈바이처).





나는 당신 인생의 조연(엔도 슈사쿠, ‘유쾌하게 사는 법 죽는 법’ 중에서)
 
연극에는 조연이 있다. 조연은 주인공을 위해 존재한다. 주인공과 연극을 이끌면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인생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은 각자 삶의 현장에서 조연을 맡는 셈이다.

그런데 자기 인생에서 주인공인 우리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는 조연일 뿐이다. 예를 들면, 당신 친구의 인생에서 당신은 중요한 조연이다. 결코 주인공은 될 수 없다.

인간이란 이렇게 당연한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당신은 배우자의 인생에서 종종 자신이 조연임을 잊어버린 채 주연인 양 행세하려 들지 않았던가.

뒤늦은 감이 있지만 몇 년 전, 아내를 바라보다 불현 듯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당신 인생에서 조연일 뿐이야...”

아내를 향해 뚱딴지같이 중얼거렸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가 무슨 소리냐고 물었지만, 내가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면 무언가 좋지 않을 것 같아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마치 세기의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일기장에 써 놓았다. 그 뒤 나는 아내에게 화나는 일이 있어도, 속으로 “나는 이 사람의 조연이야, 조연...” 이라고 주문 외우듯 말했다. 그러다 보면 신기하게도 내가 그 자리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깨닫는다.
 
 
 
Remembering you - Eugene Frie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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