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십자가의 의미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04 조회수447 추천수1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앞으로 겪게 될 십자가 형(刑)의 참혹한 육체적인 고통을 떠올리시고는 피땀을 흘리시면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약해지져서 그러셨던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고통 이상의 특수한 고통을 생각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꼭 이렇게 십자가 형을 받아야 하느냐고 물으신 것이었다.
 
로마는 여러 가지 목적을 생각하면서 십자가 형을 만들었다. 십자가 형은 육체적인 고통을 최대한 느끼도록 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한 순간도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그리고 오래 시간 동안 고통을 겪도록 만든 것이었다. 실제로 고통을 오래 동안 겪는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이기 위해 포도주에 모르핀을 탄 신 포도주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십자가에 매달기 전에 발가벗겨 성기(性器)가 노출된 채 십자가에 높이 매달려 심한 모멸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장기(臟器)가 터져 나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점을 간과할 때가 많다.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인 위르겐 몰트만(Jurgens Moltmann)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장미에 싸인 십자가나 아름답고 깨끗한 수건에 싸인 십자가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십자가가 바로 형극(荊棘)이었다. 제자들은 그 참담한 모습을 보고 뿔뿔이 흩어져 두 번 다시는 예수님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제자들은 그러한 모욕과 예수님의 영광과 신성(神聖)과 승리를 도저히 연결 지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십자가 형이 인간의 몸에 미치는 결과와 늙거나 암에 걸리거나 치매에 걸리거나 에이즈에 걸리거나 파킨슨 병이나 루게릭 병에 걸린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모두 인간의 내장(內臟)이 무척 상처 받기 쉽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인간의 몸을 부끄럽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런 고통과 부활의 영광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복음이 말하듯이 “과연 영광 안에 들어가려면 먼저 이런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가?”(“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이들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2디모테오 3:12)
독설적으로 말하면 심한 모멸감을 느껴야만 성숙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경험을 통하여 잘 알 수 있다.
솔직히 자문해보자.
우리가 성숙하게 된 것은 어떤 계기였던가?
 
자신의 무지(無知)를 깨달았을 때라든가, 영육(靈肉)간에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 무기력함을 느꼈을 때라든가, 창피스러운 짓을 했을 때라든가, 잘못을 범했을 때, 뒤늦게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면서 더 한층 성숙하게 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 이런저런 식으로 대중 앞에서 심한 모멸감을 느꼈을 때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처럼 무지하셔서 성숙하지 못하셔서 십자가 위에서 모멸감을 느끼신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이 어리석은 짓을 하면 당연히 창피를 당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시면서 또 우리 죄를 대속(代贖)하라는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셔서 창피를 당하신 것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많은 고통을 받게 되지만 새로운 사람이 될 때까지 즉 부활할 때까지 끊임없이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죽음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보여주셨다. 부활절을 맞아 “부활을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를 받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부활하지 않으면 영광도 없고 거룩하지 못하게 되고 악을 이기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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