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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06 조회수1,113 추천수2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4월 6일 부활 팔일 축제 내 화요일
 
 
 
 Woman, why are you weeping?
Whom are you looking for?
(Jn.20.15)
 
 
 
제1독서 사도행전 2,36-41
복음 요한 20,11-18
 
화요일 새벽 묵상 글을 하루 일찍 작성해서 올립니다. 제가 5일(월)부터 6일(화)까지 구반장님 연수에 참석해야 하거든요. 요즘에 인터넷 안 되는 곳이 어디 있냐고 말씀하시지만 혹시 몰라서 이렇게 미리 새벽 묵상 글을 작성해서 올립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쁨과 함께 잘 보내시고 계시는지요? 이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40일이라는 사순시기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짧은 기간인데도 힘들게 느껴졌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또한 평소에 한 끼 굶는 것은 일도 아닌데,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에 하는 단식은 왜 이렇게 힘들고 특히 배가 고픈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우리의 평상시 삶 안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으로, 고통과 시련을 크게만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항상 너무 고통스럽다고,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습관적으로 말하다보니 그 만큼 시간이 가지 않는 것 같고, 더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사실 고통과 시련을 이기지 못해서 힘들어 하는 사람은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자포자기를 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또 얼마나 많습니까?

이러한 상황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1년 전 오늘 있었던 고통과 시련을 기억하십니까? 1년 전에도 분명 어렵고 힘든 시간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어렵고 힘든 시간이 언제인지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지 못합니다. 이는 영원할 것 같은 고통과 시련 역시 곧 금방 잊히는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렇다면 지금의 고통과 시련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고통과 시련에 얽매어 살아가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렇게 얽매어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오늘 복음에도 등장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너무나도 사랑했지요.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 이후 예수님께 향유를 발라 드리기 위해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꺼내갔다고 하염없이 웁니다. 바로 그 순간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지요.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사랑해서 무덤까지 찾아간 마리아인데 예수님을 직접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도 못 알아봅니다. 이럴 수가 있을까요? 바로 사랑보다는 고통과 시련이라는 틀 속에 묻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담아 마리아를 부르십니다. 이 사랑의 부르심인 ‘마리아야’라는 말을 들은 뒤에야 마리아는 예수님의 존재를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고통과 시련 그리고 그 밖의 부정적인 것들은 과감히 던져 버려야 합니다. 대신 주님의 사랑 안에 온전히 머물러야 하겠습니다. 그때 “라뿌니”라고 예수님을 부르며, 예수님 안에서 참된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운명이 우리의 삶을 어디로 이끌건, 따르고 받아들여야 한다.(헨리 밀러)



 

커피 같은 사람이 돼라(루화난, ‘인생의 레몬차’ 중에서)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며 딸이 아버지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요리사인 아버지는 말없이 딸을 주방으로 데리고 가더니 세 개의 솥에 물을 담아 불 위에 올려놓았다. 솥 안의 물이 끓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세 개의 솥에 각각 당근과 계란 그리고 곱게 갈아 놓은 커피를 넣었다.

한 20분쯤 흘렀을까. 아버지는 불을 끄더니 당근과 계란을 각각 그릇에 담고, 커피는 잔에 부었다. 그러고는 딸에게 가까이 다가와 당근을 만져 보라고 했다. 처음 솥에 넣을 때와는 달리 잘 익어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아버지는 또 계란을 깨 보라고 했다. 계란 껍질을 벗겨 보니 역시 속이 단단히 잘 익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당근과 계란, 커피는 모두 똑같이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역경을 겪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모두 다르게 나타났지. 넌 어느 쪽인지 생각해 봐라.”

아버지는 묵묵히 생각에 잠긴 딸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본래 강했지만 고통이 닥치자 스스로 몸을 움츠리고 아주 약해져 버리는 당근이냐? 아니면 본래는 연약하고 불안했지만 시련을 겪고 난 뒤 더욱 강인해 지는 계란이냐? 그도 아니면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뜨거운 물을 변화시키고 좋은 향기를 내는 커피냐? 네가 커피가 될 수 있다면 힘든 상황에서도 현명해지고 희망을 가지게 될 것이며, 주변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May Be - Yiru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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