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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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과 하나가 되지 못한 사람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09 조회수470 추천수5 반대(0) 신고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
“못 잡았습니다
.”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요한 21:1-14)
 
누구나 난처한 일을 당하게 되면 과거의 경험을 되살리려고 한다. 그리고 길을 잃었을 때에는 되돌아 간다.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고기를 잡는 어부생활을 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미래가 없었던 것이다.
과거를 되돌아 보아도 결코 희망적이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과거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날 밤 그들은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참담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그들이 예수님을 본 순간 희망을 갖게 되었다.
 
복음의 의미는 현재에 그 가치가 있게 마련이다. 예수님의 부활도 하느님의 새로운 행동이신 것이다. 믿음이란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행동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 실의(失意)에 빠져 있었던 것은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믿음은 과거라는 향수(鄕愁)나 골동품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살고 있다. 우리는 태어나서 줄곧 고통의 원인인 에고만 키워왔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과거는 에고가 만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에고가 만든 것은 진리가 아니라 편견일 뿐이다. 그래서 에고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 괴로워지게 된다. 자신을 죽이지 못하면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
불교에서 “부처를 죽여야 부처가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각자의 에고가 만든 하느님은 다 다르게 마련이다.
믿음이 부족하면 고통을 받으면서도 하느님을 찾지 못하고 ‘혼자’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하여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묵묵히 일을 한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의사였던 크로닌(Archibald Joseph Cronin)은 스코틀랜드의 덤바턴셔 카드로스에서 태어났으며 글래스고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해군에 입대하여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1926년에 런던에서 개업의가 되었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그만두고 어렸을 때부터 꿈꾸었던 작가수업에 몰두했다. 그 후 자신의 경험과 예리한 통찰력, 문학적 상상력을 잘 조화시킨 작품들을 발표했으며, 1981년 1월에 8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첫 작품인 『해터의 성』(1931년)을 비롯해, 『성채』(1937년), 『별들이 내려다 보다』(1935년), 『천국의 열쇠』(1942년), 『섀년의 길』(1948년) 등이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대부분 영화화되었다.  
그가 소설가로서의 경력은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버릴 상황이었다. 첫 번째 책 『해터의 성』을 반쯤 썼을 때 실망하여 원고를 쓰레기 통에 던져버렸다. 과거의 자신의 능력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비가 내리는 바깥으로 나가 혼자서 시골길을 걸었다.
한 농부가 비를 맞으며 광활한 밭에서 혼자서 묵묵히 도랑을 파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밭의 크기나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농부를 보고 느낀 바가 있어 집으로 돌아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는 그 농부가 준 조용한 영감에 따라 몇 년 후 훌륭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슈바이처가 말했다.
살아가면서 하는 일마다 남의 본보기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 일이라도 본보기를 보여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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