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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예수님도 교회에 순종하신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11 조회수721 추천수10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부활 제 2 주일 - 예수님도 교회에 순종하신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순종을 빼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순종이란 자신을 버려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순종의 가장 절정을 나타내는 모습이 바로 아버지와 백성들의 뜻대로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신 바로 그 모습입니다.

그 이전 모습에 있어서도 성경은 예수님께서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냈다고 쓰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그 분은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순종하는 것을 배우셨습니다.”(히브 5,8)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당신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을 넘어서서 성모님께, 또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면서도 그들의 결정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온전히 버린 빵의 모습으로 사제에 의해 축성되고 그들의 손에 의해서 나누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을 버리기 위해 매일 십자가를 지는 노력’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서 매일 노력해야 하는 유일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부수어 빵의 형상이 되신 ‘면형무아’ (麵形無我)의 모습은 우리 영성의 전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버린 순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무엇에 순종해야 할까요?

당연히 성경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성경 말씀이 쓰여지기 이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권위로 성경의 정경이 정해졌다면 교회는 성경이 포함하는 진리를 판별할 수 있는 권위를 지니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듯,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또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순종하셨듯이 (에페 5,21-33) 신앙인은 교회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항상 교회의 권위에 저항하는 세력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마귀의 책략입니다. 사탄이 하느님의 권위에 저항하였듯이 인간들도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자 한 몸인 교회에 저항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사람들이 있는데 미리내의 황 데레사와 나주 율리아 자매입니다. 교회는 그들의 증언은 거짓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을 따르는 신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들은 교회가 하느님께서 직접 계시하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있다고 항의하고 있고 지금도 나름대로 그 증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작은 불순종들이 교회를 분열시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들도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시며 베드로라는 한 사람 밑에, 그에게 준 단 하나의 하늘나라 열쇠를 중심으로 모이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바로 이 하나 되는 교회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나타나시어,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느님나라의 열쇠”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나라의 열쇠는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처음에 베드로에게 주셨습니다. 하느님나라에 인간에 왜 못 들어가게 되었습니까?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못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나라의 열쇠란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열쇠는 나중에 사도들 전체에게 주십니다. 즉,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8,18) 땅에서 사도들이 어떤 결정을 하던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존중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당신의 모든 권한을 사도들에게 주시겠다는 뜻이고 먼저 그 권한을 베드로에게 주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나타나실 때 그 곳에 없었던 사도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토마였습니다. 토마만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뵙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베드로와 나머지 사도들과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주신 죄를 용서하는 성령의 권능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토마에게 개인적으로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토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기 위해서는 일주일을 또 기다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토마에게 나타나시기 위해서 ‘사도단’에게 발현하십니다. 만약 그 때도 토마가 자존심이 상해서 나머지 사도들로부터 멀어져 있었다면 예수님은 토마에게 따로 발현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대표로 하는 사도단을 중심으로 온 교회가 하나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인들은 이 예수님의 의도를 깨닫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교회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밀링고 대주교는 우리나라 성 마리아와 혼인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서품을 준다고 합니다. 물론 주교님 이상만 되면 사제를 서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서품은 무효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혼자 동떨어져있는 토마 사도와 같은 처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이 무엇이냐면 사도단과 함께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과도 함께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지금 교회 밖에 있는 것이고 교회 밖에 있다면 사제건 주교건 예수님께서 주시는 권한을 받지 못합니다. 마치 토마 혼자 예수님을 뵙지 못하고 파견 받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하늘나라의 열쇠는 하나이고 그 하나는 베드로, 즉 교황에게 있고 교황과 일치하지 않는 성직자는 주교든, 추기경이든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지니지 못합니다.

 

비오성인은 오상을 받았지만 그 사실을 모함하는 교회 성직자들에 의해 사람들 앞에서 미사와 고해를 드릴 수 없게 되었었습니다. 사실 사제가 이 두 가지 성사를 줄 수 없다고 한다면 사제로서의 생명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시에 어떤 교회 주교들도 비오 사제만큼 거룩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성 비오는 단 한마디 불평 없이 교회의 말에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이 수많은 기적을 행한 것보다 그를 더 성인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바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권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당시의 부패해 있던 교회를 비웃기나 하듯 거지 수도회를 만든답시고 교황님을 찾아왔습니다. 교황님은 그런 수도회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밤에 어떤 거지가 기울어져가는 교회를 어깨로 바치고 있는 꿈을 꾸고 그 수도회를 인준해 주었습니다. 만약 교황님께 인준을 받지 않았다면 프란치스코 성인이 아무리 성인이라도 지금의 프란치스코 회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혼자서도 교회의 허락 없이 거룩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기어이 교회의 허락을 받아내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아무리 거룩하더라도 예수님만큼 거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 순종하지 않은 성인들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성인이라면 교회가 그리스도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어떻게 내려주셨습니까? 교회가 모여 있을 때 내려주셨습니다. 그 곳에는 베드로와 사도들이 있었는데 루카는 사도행전을 쓰면서 그 사도들의 이름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적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사도단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단이 모여서 하나로 기도할 때 성령님이 임하셨고 교회가 그렇게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복음으로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십니까? 바로 교회에 머물러 있으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구원하시려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순종하여 성모님의 태중에 잉태되셨습니다. 그 때부터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없었고 다만 모든 아이가 그렇듯이 성모님이 움직이는 대로 자신을 내맡겨야 하셨습니다. 이는 교회 안에 당신을 내맡기시게 될 신비로운 상징입니다.

예수님이 교회와 한 몸이 되셨기에 교회의 권위에 당신도 순종하십니다. 즉,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신이 주신 권위에 당신도 거부하지 않고 ‘하늘에서도 따라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당신이 주신 교회의 권위에 당신도 순종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께서도 순종하시는 교회의 권위를 거부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은 당신의 부활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임을 명확히 보여주셨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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