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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11일 야곱의 우물- 요한 20,19-31/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11 조회수384 추천수5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19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시작 기도
오소서, 성령님. 복음 말씀을 듣는 제 마음에 굳은 믿음을 길러 주소서.

독서
오늘 복음에서는 세 장면이 겹쳐지는 듯합니다. 세 무리의 사람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먼저는 문을 닫아 걸고 있던 제자들이, 그다음에는 그날 함께 있지 않던 토마스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우리가 있습니다. 만남은 이렇게 시간상으로 연속되고, 그 폭은 점점 더 확장되어 갑니다.

지난 주 복음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때는 ‘주간 첫날’ 입니다. 주님 부활의 날, 살아 계신 그분의 현존을 다시 체험하는 날입니다. 더구나 제자들은 마리아 막달레나한테서 주님을 뵈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아걸고 있습니다. 그들의 두려움, 주님의 오심을 맞아들이기 위하여 문을 열지 못하는 약함과 부족한 믿음, 이 모든 것도 제자들 가운데 오시어 현존하시는 주님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그분은 문이 잠겨 있어도 집 안으로 들어오시는 분이십니다.
 
부활하신 분께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것은 ‘평화’ 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수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평화를 약속하셨습니다.
14장에서는 오늘의 복음에서와 같이 평화와 성령이 함께 언급됩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리라는 말씀과 함께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하시며 (27절), 마음이 산란해지거나 겁을 내지 말라고 하시고는 수난을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또한 16장에서도 수난의 때가 가까웠음을 말씀하시며 당신께서 그 말씀을 하시는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33절)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평화는, 앞의 두 본문을 떠오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 그분의 평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그 평화는 수난이 없는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떠나가신 다음에도 주님의 성령 안에서 이 세상을 이기는 평화입니다.(16, 33 참조) 그러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른 것이 아니라 당신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에페소서에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라고 말합니다. (2, 14) 그분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에페 2, 16) 제자들이 가야 할 평화의 길은 어쩌면 바로 그런 길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가신 그 평화의 길을 가라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라는 사명은, 현재 문맥에는 무엇인가 맞지 않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 유다인들이 두려워 숨어 있는 이들에게,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라니 어쩌면 제자들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이들, 그들을 박해할 수 있는 이들을 용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에 나오는 토마스 사도 이야기는, 직접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제자들의 이야기에서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는 말씀으로 건너가는 중간 단계가 됩니다.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실 때 그분을 따랐던 제자였고, 직접 그분을 만났고 그분을 알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앞 장면에 나온 제자들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서 나타나신 그 주일 저녁에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고, 그래서 오늘 우리처럼 직접 눈으로 주님을 뵙지는 못한 이들과 같은 선상에 자리하게 됩니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예수님께 대한 직접 체험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의 증언이었습니다. 우리의 상황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토마스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이로써 그는 예수님을 눈으로 뵙지 못했고 믿기 어려워하는 후대 사람들을 대변합니다. 그런데 의심하던 토마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다른 제자들의 말을 확인해 주십니다. 그럼으로써 토마스는 다시 ‘보고서 믿는’ 이들의 무리에 속하게 됩니다.

결정적인 것은 마지막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29절) 이것은 우리를 위한 말씀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님과 함께 살았던 제자들보다도, 토마스 사도보다도 우리가 더 복되다고 말합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목격 증인이었던 사도들한테서 시작하여 수많은 사람의 증언으로 이어진 고리를 통해 오늘 나한테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들의 증언에 힘입어 부활하신 예수님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라고 고백할 때 (28절), 예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너는 행복하다.” 고 말씀하십니다.

성찰
보이지 않는 주님께 대한 믿음이 있다면, 그분께서 언제나 살아 계시며 우리 가운데 현존하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성령의 힘으로 이 세상 어둠 속에서도 두려움을 이기는 평화를 지닐 것입니다. 그런 평화를 지닌 이는 복됩니다.

기도
행복합니다, 마음속으로 순례의 길을 생각할 때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 (시편 84, 6)
안소근 수녀(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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