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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 자비심에 대한 나의 묵상 (이상각 신부님)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11 조회수656 추천수5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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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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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


예수님 자비심에 대한 나의 묵상
(이상각 신부)


네가 실수하고 잘못하여 죄에 넘어졌을 때 그 죄나 잘못과 실수, 넘어짐 속에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라. 네 실망과, 네 죄를 위해서 내가 세상에 왔다. 너를 일으키기 위해 내가 넘어졌고, 네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내가 고통받았다.
너는 다만 너의 고통과 저지른 죄와 살망과 좌절을 나에게 의탁하고 내맡김으로써 내 자비심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네가 모든 것들을 믿음과 신뢰로 나에게 맡기기 위해 네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나의 자비뿐이다. 내 자비심이 너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힘을 주며 치유해 주기 때문이다.

베드로에게 말했듯이 일곱 번씩 일흔 번일지라도, 아니 그 이상이라도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나라는 것을, 자비심이 넘치는 나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두려움 없이 너의 모든 것을 내게 맡겨라.
네가 너의 모든 죄와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여 거룩한 사람이 될 때에만 너를 사랑하고 너에게 눈길을 주는 것이 아니다. 네가 회개하고 나에게 돌아오기 이전에 이미 나는 너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고, 너에게 필요한 모든 은혜를 계속 부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네가 나의 사랑에 응답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내 자비심과 내 사랑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어왔고, 너의 응답을 기대하며 애타게 너를 지켜보아 왔다. 네가 회개한다는 것은 바로 나의 그러한 사랑을 깨닫고 응답해 온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집나간 작은 아들이 돌아왔을 때에야 사랑을 준 것이 아니지 않느냐?

아버지는 그 아들이 집에 있었을 때나 집을 나갔을 때나 그 아들을 똑같이 사랑했고, 집을 나갔을 때는 더욱 아픈 마음으로 애타게 아들을 기다렸었다.
네가 회개를 하고 안하고에 따라 자비를 베풀고 안 베푸는 내가 아니라, 이미 바로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했고 피를 쏟아 부어 너의 죄를 씻어준 나이다. 네게 더 안 해줄게 무엇이겠느냐? 나는 언제나 베풀기를 원하는 너의 예수이다. 네가 할 일은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고 나를 신뢰하며 내 자비심과 내 사랑에 젖어드는 것이다. 회개로써 돌아와 내 자비심에 두려움 없이 맡겨라. 나는 조건없이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위해 십자가에 죽었으며, 너를 구원하기를, 네가 내 사랑에 응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너의 예수다. 내가 죽은 뒤에 실망에 지쳐 물고기를 잡으러 떠나간 나의 제자들, 기쁨을 잃어버리고 나를 믿지 못하고 옛 일터로 돌아가려는 그들, 그들 곁에 내가 먼저 찾아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평화와 기쁨을 주며 그들을 축복해 주어 고기를 많이 잡게 해주었고, 그들을 위해 음식까지 내가 준비해 주었다.(요한 21,1-14) 바로 내 사랑을 먹여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나를 보며 잃어버렸던 평화와 희망을 되찾아 기쁨에 넘쳐 예루살렘으로 나의 어머니 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주시리라 약속하신 성령을 받을 때까지 어머니와 머물며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기도하였다.

내가 사도들에게만 자비롭고 너그러우며, 그들에게만 음식을 주고 나를 알아보게 하였느냐? 그들에게만 자비로운 예수였더냐? 오히려 나는 너에게 더 자비롭다. 내가 베드로만, 베드로만 사랑했느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만 용서했느냐?
너를 보아라.
너는 나를 몇 번이나 모른다고 했는지 아느냐?
너는 얼마나 많은 경우에 너 자신을 위해, 너의 자존심과 이기심 때문에, 교만과 오만을 위해 나를 모른다고 했느냐? 그때마다 나는 너로 인해 고통받았고, 베드로에게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던 내 자비심 가득한 연민의 눈길로 너를 바라보았었다. 너는 내가 세워준 고해성사를 통해서 나에게 베드로보다 더 많이 용서를 받아왔다.
나는 베드로보다 더 너를 사랑했고 용서해 주었다. 그러나 너는 베드로처럼 나를 증거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마음이 아프다.

내가 사도들에게만 먹을 음식을 주었느냐? 그들에게만 물고기를 구워 주었느냐?
나는 매일 매일 너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고 피를 부어 너를 내 아버지와 화해시키며, 내 살과 피를 온 세상 제대 위에서 매일 먹게 해주고 있지 않느냐?
사도들이 먹었던 구운 생선이 아니라 나를 먹고 있지 않느냐?
사도들은 구운 물고기를 먹으며 나와 이야기했고 나를 사랑했다. 너는 나를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내가 네 속에 들어가 앉아 있는데도 너는 나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네 뜻대로 산다.
내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분의 생각, 느낌, 기도, 고요함...
어머니는 언제나 나의 기쁨이었다.
나는 빵으로 너에게 먹히며 나에게 기쁨이었던 어머니의 태속에서처럼 바로 너에게 그런 기쁨을 원하고 있다. 너는 나를 너무 쉽게 잊는다. 내 사랑과 자비를 너무 쉽게 잊는다. 그리고 네 뜻대로 살면서 스스로 실망하고 좌절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내가 사도들에게 물고기를 구워 준 것보다도 너에게 나를, 내 살과 피를 먹여준 횟수가 훨씬 더 많은데, 너는 성체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요한처럼 '저 분은 주님이시다!'(요한 21,7)고 외치고 있느냐?
'당신은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해 놓고도 실망에 빠진 베드로를 희망에 넘쳐 나를 증거하는 자로 일으켜 세웠듯이 주님인 내가 여기 성체 안에서 너를 기다린다.
너는 성체 앞에 나아가 위안과 힘을 얻으라고 실망과 낙담에 지쳐 쉬고 있는 나의 아들과 딸들에게 말해 주었느냐? 삶에 지치고 실망하고 위로를 받지 못하는 그들에게 나의 미사가 큰 위로며, 자비의 샘이며 희망이라고, 주님이 기다리신다고, 그분께 달려가자고 말하며, 성체 안에서 너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내게로 왔느냐?
너의 베드로,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에 그대로 물 속에 뛰어들며 내게로 왔다. 그는 나를 모른다고 하기도 했지만 사랑했다. 그는 내가 찾아갔을 때 자기의 죄보다도 먼저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 내가 그를 사랑해 주었다는 것, 그 사랑만을 기억하며 내게로 달려왔다. 베드로는 죄보다도 나의 자비심과 사랑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베드로는 나의 자비심과 사랑으로 죄에 대한 두려움, 나를 배반했다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내게 달려와 내 발 앞에 엎드려 '주님!'하고 불렀다. 그때 나는 그의 사랑을 보았고 그의 마음을 알았기에 그를 용서로 회복시켜 주었고, 그를 사도들의 첫째로, 너희의 교황으로 뽑아 세웠다.

너는 어떠냐? '저 분은 주님이십니다(요한 21,7). 주님은 용서이십니다. 주님께 가십시오.' 요한이 말할 때, 요한처럼 누군가가 말할 때, 교회가 말할 때, 사제가 말할 때, 베드로처럼 사탄이 집어넣는 죄에 대한 두려움을 쳐이기고 내 사랑을 기억하며 내게로 달려와 '주님!'하고 부르며 내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청하느냐?
너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기에 나는 몹시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두려움에 갇혀 죄에 실망하고 좌절하여 그대로 죽고 있는지 마음이 찢어질듯 아프다.
십자가가 말하고 있지 않느냐? 나의 사랑 앞에 너의 죄는 한낱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을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냐?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너를 위해 죽었다는 '나의 사랑'뿐이다.
왜 두려움을 앞세우느냐? 두려움을 넘어서서 희망과 사랑으로 나에게 달려나와 너를 위해 열려진 십자가 위에서 죽은 내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 그 자비의 샘에서 너의 죄를 용서받고 두려움을 치유받고 평화와 기쁨을 얻어라
.

베드로는 나의 사랑을 기억했다. 너도 그래야 한다.
나는 사랑의 예수이며 자비의 예수다. 너를 위해 십자가에 죽은 너의 예수다. 너의 사랑이다. 나는 사도들만을 위해 부활하고 그들에게만 기쁨을 주었던 사람이 아니다. 모든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희망과 평화,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부활한 예수, 너와 함께 있는 살아있는 예수이다.
내게로 오라.
사제가 있음이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며, 교회가 있는 것이 내가 부활함을 외침이며, 십자가는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네 죄를 위해 죽었다는 증거이며, 7가지 성사가 있음은 너를 위한 내 자비심이, 내 자비심의 샘이 끝없이 솟아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실망과 좌절,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기쁨과 평화의 내게로 오라. 나는 너를 위해 끝없이 솟아나는 자비의 샘이다. 너의 이해와 생각을 뛰어넘는 사랑과 자비 자체이다. 나를 믿고 의지하며 온전히 신뢰심을 두고, 두려움 없이 나에게 맡겨라.
내가 너의 사랑이며 너의 전부이다.

오! 예수여, 나 당신께 의탁합니다.

(마리아 94호)
 




[4월 12일] 지극히 거룩한 생명의 말씀 '복음' <요한 3,1-8>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바리사이 가운데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다. 그 사람이 밤에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오늘의 묵상]
복음의 니코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조차 이상하게 받아들입니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어린이 같은 질문입니다. ‘새로운 영적 출발’로 보면 간단한 일인데,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머리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식만으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이론에 밝은 것과 ‘신심이 깊은 것’은 서로 다른 일입니다. 그런데도 지식에 매달리고 교리를 따집니다. ‘마음공부’가 언제나 먼저입니다. 영혼이 풍성해야 신심은 자라납니다. 주님께서도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이끄심을 ‘첫자리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어떤 처지에 있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아는 것을 덮고, 주님의 이끄심에 맡기는 생활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마음의 문제입니다. 새 출발에 이론은 별 소용이 없습니다. 첫발을 딛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은총을 청하는 기도가 소중합니다. 어정쩡한 마음에는 ‘영적 성장’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해 온 신앙생활인데도, 유치한 믿음은 여전히 많습니다. 니코데모처럼 ‘따지는 믿음’입니다. 주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개입’을 찾아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이끄심을 믿고 그분께 맡기라는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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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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