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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감곡성당 기도와 찬미의 밤 - (권오성 마태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13 조회수679 추천수7 반대(0) 신고

                                           

 

 

 

              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엄마!

 

안녕하세요?

사실 저희 본당에 어려운 사정들이 있고...

그래서 신부님께서 좋은 마음으로 도움을 주시고자 저를 불러주셨는데 지난 달에 처음 왔을 때

“다음 달에는 자네가 강론 해.”

한 달 동안 왕부담 속에 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강론의 대가라고 하시는 김웅열신부님 앞에서 강론을 한다는 게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것 같고.... 가만히 제 삶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어머님의 손길을 느끼고 깨닫게 되어서 성모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님 전 상서


먼저 저는 사제이든 수도자이든 평신도이든 성모님을 사랑하는 그 누구이든 하느님께 나아가는

인생의 여정 안에 성모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 어긋나거나 삐뚤어지지 않고

성모님의 보호 안에 머문다는 말씀을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믿고 신뢰하면서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도 잘 아시지만 저는 어렸을 때 참으로 개구장이였습니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지만 주일학교 선생님이나 수녀님, 선생님을 울리거나 골탕 먹이는 건

기본이고, 지금 봉쇄수녀원에 계시는 그 당시 주일학교 선생님이 아직까지도 저를 개구쟁이라고

생각하시다 참 신비롭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주시는 주일헌금은 곧바로 오락실 밑천으로 쓰기 일쑤였습니다.

저의 오락실력은 거의 달인의 경지여서 주일학교 헌금 100원이면 반나절은 거뜬히 보낼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개구쟁이 시절에 김웅렬신부님께서 저희 본당에 서품을 받고 오셨습니다.

물론 지금도 탱탱하시지만 그때는 참 꽃미남이셨는데 세월은 못 속인다더니 많이 늙으셨습니다.

 


제가 자란 가정환경은 성소자가 날만큼 좋은 환경은 못 되었습니다.

속 썩히는 자녀가  많은 가정의 어머니는 경찰서를 자주 드나들어야 했고

명절이면 형사들이 선물을 사오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덕에 저는 사제서품을 받고 속 썩히는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새벽마다 묵주기도를 드리시고 늘 성모님께 모든 걸 의탁 드렸던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자연스레 어머니 모습을 보며 자란 저도 집안에 불화나 어려움이 닥칠 때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성모님께 기도를 하곤 했었는데 참 신기하게도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모두들 사이가 화목해지고

어려움들이 별것 아닌 것들로 변해버린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기도의 체험들이 갑자기 저를 신학교로 이끌었습니다.

물론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기도가 늘 있었지만

참으로  개구쟁이었던 저를 문득 신학교로 향하게 해 주셨습니다.


신학교의 삶은 쉽진 않았지만 즐거웠습니다.

개구쟁이 기질이 어디를 가겠습니까?

위험하다고 다친다고 극구 말리셨지만 어머니 몰래 군대도 해병대로 갔습니다.

6개월 동안 우셨다고 나중에 들었지만 남들은 힘들다고 하는 군대생활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제대하고 신학교에 돌아왔을 때 성소의 위기가 처음 찾아왔습니다.

이성에 대해선 전혀 무뢰한이었던 저에게 눈만 뜨면 생각나는 여학생이 생겼습니다.

제가 좀 잘 생겼잖아요? 그치요?^^

한 번은 여럿이 놀러갔다가 단 둘이 밤에 남게 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만 인간의 본능에 휘말려서 사고를 칠 뻔한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또렷이 기억나는 음성이 있습니다.

너무도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성모님의 기도소리가 너무도 선명하게 제 귀에 들렸습니다.

저는 너무 겁이 나서 그곳을 도망 나왔고 그 일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한 2년을 마음고생하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성모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깨우쳐 주신 어머니의 섭리에 크게 감사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사제서품을 얼마 앞두고 저와 함께 자라던(같이 자라고 신학교에 같이 간 친구가 셋이 있었는데)

부름심의 길에서 셋이 모두 떠나갈 때 너무나 혼란스럽고 두려웠습니다.

그때 피정하면서 기도할 때 죽기를 각오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청했는데

예수님께서 목숨을 바치라고 하시는데... 죽을 용기가 당최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 안이 성모님 품안이다!

하는 그런 생각이 저에게 죽을 수 있는 용기를 내게 해주셨습니다.

그 당시 저로서는 실제 상황으로 유서까지 다 써놓고 정말 죽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성모님 품안이다! 하는 그 생각, 그 위로가 죽을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죽음 뒤에 저를 괴롭혀 왔던 기이한 현상들이나 귀신의 문제나

두려움의 실체와 맞닥뜨리면서 예수님의 힘과 기운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귀가 감실에서 저를 괴롭혀 왔던 그 사실을 깨닫고

빛과 어둠을 분별할 수 있는 은총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기꺼이 당신의 도구로 써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서품을 받고 난 후의 삶은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모든 걸 바치고 겁날게 없었고 열정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손길로 오랜 기간의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난 자유로움과

성모님의 품안에서 머물고 있는 삶이 신나고 열정 가득했습니다.

첫 보좌로 복명동 성당에서 일하고 있을 때

그해에 교구에서 선교 1만명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신자들과 하나가 되어서 띠를 매고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서 복음전파를 위해 살았습니다.


감격스럽게도 신자대비 복음 전파율 1위라는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표창도 받고 많은 격려도 받게 되었습니다.

노안으로 주일 미사 1대만 하시던 주임신부님께서도 모든 공로를 저에게 돌려주시어 그해

사제서품식에서 새신부인 제가 주교님과 모든 신부님들 앞에서 사례발표까지  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본당 신자들 앞에 자랑스럽고 은근히 힘도 들어갔던 시기였는데

그 주간 성모승천 대축일이었습니다. 강론을 준비하고 자신 있게 강론을 하려는데 머릿속이 아파오고,

글도 잘 안보이고, 이상한 헛소리만 하게 되었습니다.

참 건강한 체질인 제가 제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있었으면 숨고 싶은 진땀나는 미사를 겨우겨우 마치고

조용히 혼자 성당에서 따져 물었습니다.

그때 제게 주시는 깨달음이 너무 들뜨거나 교만하지 말고

늘 겸손 되이 기도하며  살라는 어머님의 손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 힘으로 이루어진 양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으쓱해질 때

어머니는 저를 나락으로 떨어뜨려 늘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는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그때 그 일은 어머니께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참 단순한 편이어서 무엇인가에 한 번 빠지면 쉬 헤어나지 못하는 편인데

한 때 제가 게임이나 놀이나 도박에 빠져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 모습을 보거나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저는 무엇인가에 빠져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제인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너무나 실망스럽고 죄스러워 신자분들 앞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부족하고 부끄러운 저를 발견했을 때 저를 숨기기 위해서 도망갈 결심도 하고....

자신이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그때 제 곁에 늘 있던 묵주가 저를 붙잡아주었습니다.


가만히 저를 돌이켜보면 죄 중에 있을 때도  부족함을 느낄 때도, 미천한 저를 바라볼 때도,

묵주기도를 빠트리지 않았던 그 순간이 위기의 순간에 저를 지켜주었다고 생각됩니다.


성모님 발현 메시지를  우연히 읽다가  성모님께서 해주셨던 그 말씀이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네 죄와 부족함을 바라보기보다 더 먼저 더 큰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바라보아라!

저는 용기를 얻고 성사를 통해 영혼의 상처를 씻고

성모님의 섭리와 사랑을 믿고 새롭게 모든 걸 다시 시작해 보자고 다짐하였습니다.


참 짧은 세월이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어려움과 위기의 순간에 저를 보호해 주시는 어머니

하느님의 은혜와 섭리를 망각하고 인간적인 기질로 높아지고자 할 때

저를 견책하시는 어머님을 깨닫게 됩니다.

어머니, 감사드립니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어머니의 사랑 안에 머물며 사는

당신의 아들 사제로 저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소서!

 

 

<추신 >

1, 저는 초등학교때부터 엄마라는 표현을 써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지난 기도와 찬미의 밤에 모든 분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걸 봤는데 저도 연습해서 엄마라고 부르겠습니다.


2. 지금 제가 있는 본당에서 성모님 동상과 신자들과 함께 지낼 교육관을 짓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저와 신자들이 많은 고충을 겪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기도가 필요하다고 새삼 깨우쳐주신 것을 믿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기도를 더 열심히 하자고 새롭게 다짐했습니다.


저희의 노력과 정성을 보시고 어머니께서 이 모든 일들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켜주시고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 2009년 4. 04 -감곡성당 기도와 찬미의 밤(권오성 마태오 신부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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