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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미련은 먼저 나고 슬기는 나중 난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17 조회수412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배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 6:19-20)
 
 어떤 사람이 황금색깔의 잘 훈련 받은 사냥개 한 마리를 샀다.
그는 그 개가 호수를 헤엄쳐 건너 가서 오리를 물고 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며칠 후 그 사람이 막 오리를 쏘자마자 그의 사냥 친구가 왔다.
오리가 호수에 떨어지자 사냥개가 물을 건너 오리를 물고 왔다.
그런데 그의 친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내 개는 다른 개와 다르지?”하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래? 자네 지금 나를 놀리고 있지? 개가 어떻게 헤엄을 쳐.”
 
우리에게 시각과 청각의 중복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인간승리의 본보기로 많이 알려진
미국의 헬렌 켈러는 사실 훌륭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 중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방금 숲을 산책하고 돌아온 친구에게 무엇을 보았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아무런 특별한 것을 못 보았다.”고 답했다.
헬렌 켈러는 친구와 독자들에게 묻는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보지 못 하는 나도 촉감만으로도 나뭇잎 하나하나의 섬세한 균형미를 느낄 수 있고 봄에 막 움튼 새순이라도 만져질까 하고 나뭇가지를 만지다가 재수 좋게 노래하는 행복한 전율을 느낄 수도 있는데...”
이어서 그녀는 말한다.
때로는 손으로 느끼는 이 모든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으면 하는 갈망에 사로잡힙니다.
촉감으로 그렇게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는데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오랫동안 숲 속을 거닐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보겠습니다.
찬란한 노을을 볼 수 있다면 그날 밤 아마 나는 잠을 자지 못 할 것입니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밤이 낮으로 변하는 기적의 시간을 지켜 보겠습니다.”
 
 어제 낙산사에서 문득 풍경(風磬)이 멈춰 있는 시간을 깨우는 것을 느꼈다.
나는 헬렌 켈러가 그토록 꿈꾸던 것을 매일 너무나 쉽게 이루고 산다.
하지만 그것에 대하여 기뻐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미련은 먼저 나고 슬기는 나중 난다는 것은 
무슨 일을 잘못하고 나서야 무엇이 옳은지 깨우치게 된다”는 말이다.
미련은 “깨끗이 잊지 못하고 끌리는 마음이 남아 있는 마음, 타고나거나 혹은 배우지 못하여 어리석음, 흔히 이치에 닿지 않는 것을 터무니없이 고집을 부리는 태도”를 말한다.
미련하다는 것은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는 증거이다. 우리들은 미련하거나 불안 초조 속에 살고 있다. 무지(無知)하고 미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들의 모습은 로마서(3:9-24)에 잘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유다인으로서 나은 점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유다인들이나 그리스인들이나 다 같이 죄의 지배 아래 있다고 고발하였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의로운 이가 없다. 하나도 없다. 깨닫는 이 없고 하느님을 찾는 이 없다.
모두 빗나가 다 함께 쓸모없이 되어 버렸다.
호의를 베푸는 이가 없다. 하나도 없다.
그들 목구멍은 열린 무덤, 혀로는 사람을 속이고 입술 밑에는 살무사의 독을 품는다.
그들의 입은 저주와 독설로 가득하고 발은 남의 피를 쏟는 일에 재빠르며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만이 있다.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눈에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우리가 알다시피, 율법이 말하는 것은 모두 율법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그래서 모든 입은 다물어지고 온 세상은 하느님 앞에 유죄임이 드러납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贖良)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푸루스트(Marcel Proust)가 말하였다.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억이란 나쁜 화가가 잘못된 색으로 칠해 놓은 것처럼 엉터리입니다.
나쁜 화가의 그림이 살아 있는 봄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에 냄새나 맛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환기시켜 줍니다.
예술가는 자기가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오른 불수의적(不隨意的, 의도하지 않은) 기억을 통해서만 자기 작품의 원재료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불수의적 기억은 진정성의 지표가 됩니다.”  
 
<주님, 한 말씀도 하시지 않으려면>
 
돌이켜 보면 후회스런 일은 많은데
죄로 생각되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괴롭고 고통스러우면
자신이 죄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이 저지른 죄는 사람이 판단하여 알고 있지만
죄로부터의 탈출은 주님만이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죄로부터 태어나 죄를 지으며 살고 있다고 
하지만 죄는 주님이 주신 양심 앞에 
언제나 두려움으로 존재합니다.
 
주님!
주님 앞에 회개한다고 다짐을 하여 왔지만
얼마나 많이 저 자신을 속여왔는지 모릅니다
 
주님!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죽음의 십자가를 통하여 이 죄인에게 가르쳐 주셨는데 
생각으로만 담아두고 
마음으로는 저 자신을 속이며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주님!
저가 걸어온 길에서 이 죄인과 함께 걸어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님의 용서와 사랑을 알면서도 기억하지 못하였습니다
 
위선과 교만의 삶 속에서 
저 자신의 교만의 긍정을 
기도란 도구로 저 자신의 위선을 감추며 살아왔습니다.
 
주님!
오늘도 저가 저 자신을 위하여 저를 용서하여 
달라고 저 자신을 사랑하여 달라고 위선을 감추며
기도하고 있는지를 님이 보시고 알고 계시는데
어찌하여 말없이 저와 함께 걸으시려 합니까
 
주님!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시려면 
주님의 자비로움만이라도 항상 느끼며 살게 하시고
마음의 행위가 하루의 기도이게 하소서
 
아멘.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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