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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나를 따라라.” - 4.1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18 조회수510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4.18 부활 제3주일

사도5,27ㄴ-32.40ㄴ-41 요한5,11-14 요한21,1-19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나를 따라라.”

 

 

 

 

새벽 산책 중

뜻밖의 그윽한 향기에 발길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바로 길옆에 만개하기 시작한 살구꽃 향기였습니다.

 

‘아, 존재의 향기, 인품의 향기도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생각난 게

참 아름다우신 분, 부활하신 주님의 향기였습니다.

 

여기 수도자들은 아침기도 시

참 좋으신 주님을 마음을 다해 찬미했습니다.

 

“당신의 이름만이 홀로 높으시도다.

  하늘 땅 아득 높이 찬란하신 그 영광”

 

우리가 찬양하는 하느님이시자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묵시록의 말씀처럼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

그 모든 곳에 있는 만물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어좌에 앉아계신 분과 어린 양께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길 빕니다.”

 

하느님 찬미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찬미의 사람들인 우리 수도자들이요,

비단 수도자들뿐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이 찬미의 사람들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하느님의 사람, 도스토예프스키의 고백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나는 의심이 많고 믿지 못하는 사람이다.

  믿음에 대한 목마름으로

  나는 끔찍한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내 영혼 안에서 믿음을 거부하는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믿음에 대한 갈증은 더 심해진다.

  내 영혼은 의심의 연옥을 거쳐서야

  비로소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의심 속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보다 더 아름답고, 더 깊고, 더 온전한 것은 없다.

  다른 것은 없을뿐더러 있을 수도 없다.”

 

참 아름답고 향기로운 분,

우리의 영원한 빛이자 꿈이신 분이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바로 여기 제대 옆 부활초가 상징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중심이자 방향이십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디의 무엇을 향하고 있습니까?

어디의 무엇을 향하느냐가 우리 인생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우주와 역사의 중심이자

우리 삶의 중심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향할 때

비로소 영원한 행복의 구원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만남과 진실, 사랑으로 나눠 묵상했습니다.

 

  

만나야 합니다.   

 

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만나야 삽니다.  

늘 우리 삶의 영원한 중심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향할 때 만납니다.   

만남의 기쁨이요 만남의 행복이요 만남의 구원입니다.

참 만남을 갈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교육의 목적도 참 만남에 있는데  

이런 참 만남이 없어 날로 시들어가는 영혼들입니다.

만남 중의 만남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들의 증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그 운명이 완전히 바뀐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복음에서는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사도행전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베드로와 사도들의 확신에 넘친 설교입니다.

또 묵시록에서 요한 역시

천상에 계신 부활하신 주님이신 어린 양을 만나며

주변의 천사들의 찬양에 합류합니다.

진정한 기쁨과 행복은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에 있습니다.

 

시간 흘러가면서

다 사라져가는 일시적 기쁨이요 일시적 행복이지만

주님과의 만남의 기쁨, 행복은 영원합니다.

세월의 파도도 풍화작용도 이 기쁨, 이 행복은 비껴갑니다.

 

아침기도 응송을 노래하며 이 기쁨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알렐루야, 알렐루야.

  크게 기뻐하였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바로 이 부활 제3주일 미사축제를 통해

우리는 참 아름다우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은 당신을 만난 우리 모두에게

당신의 참 좋은 평화와 기쁨을 선사하십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은 힘이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진실을 갈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진실할 때 용서받습니다.

 

늘 부활하신 주님을 향할 때, 만날 때 진실해집니다.

거짓은 사라집니다.

단순 정직하고 용감합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통한 변화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들,

모두 주님을 만남으로 진실한 사람들로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오래 주님을 믿어도

진실하지 못하고 단순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진정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하느님 변두리에서 맴돌기만 할 뿐

하느님 중심에는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수적인 것들에 집착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적인 것을 놓친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닫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진정 주님의 맛을 보면 진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이나 글 역시 단순 투명하고 진실 담백합니다.

 

바로 오늘 사도행전의 베드로와 사도들의 고백이 그러합니다.

부활하신 주님 체험에서 샘솟는 활력 넘치는 고백입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진정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이런 진실한 고백이요 진실한 삶입니다.

주님의 진실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진실이, 진정성이 이웃에게는 힘과 위로가 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사랑’입니다.

제자들이 보고 싶어 부활하시여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대로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동터오는 아침까지 호숫가에 물끄러미 서서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한 제자들을 바라보시다가

개입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고맙고 눈물겹습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못 잡았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

제자들이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를 잡았을 때

‘주님이십니다.’ 곧장 주님을 알아 챈 이는

주님의 사랑을 받던 제자였습니다.

 

주님을 사랑할 때 사랑의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끝내 주님을 만날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진정 주님을 만날 때 사랑의 성장이요 성숙입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주님의 사랑이 가득 담긴 이 말씀,

마치 우리를 성체성사에 초대하시는 주님의 음성 같습니다.

 

 

세 번 당신을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세 번 사랑의 약속을 받아 내는 주님이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를 나를 사랑하느냐?”

시몬 베드로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물음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무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사랑을 고백하는 시몬 베드로에게 세 번 다 똑같은 당부의 말씀입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이 또한 시몬 베드로뿐 아닌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간곡한 부탁입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양들인 형제들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 사랑의 진정성은

존중과 배려의 이웃 사랑의 실천을 통해 드러납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에게 전존재를 다 바쳐

당신을 따를 것을 명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나를 따라라.”

 

형제들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랑보다

더 충실한 주님 사랑은 없습니다.

 

 

강론을 쓰던 중 강론 제목을 바꿨습니다.

 

원래는 ‘참 아름다우신 분’ 이라 했다가

 

주님의 물음이 너무 절실해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로 했다가

 

복음 말미의 말씀이 너무 엄중해 ‘나를 따라라.’를 붙여,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나를 따라라’로 바꿨습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물음이자 바람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을 따르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모두입니다.

 

모든 것 다 사라져도 남는 것은 이 것 하나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늘 주님을 따를 때

주님과 깊어가는 만남과 더불어 진실과 사랑의 삶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오시는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모두를 향해 물으시고 당부하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나를 따라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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