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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작예술에 보내는 신성한 긍정>-김정식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19 조회수425 추천수1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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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예술에 보내는 신성한 긍정
 
2010년 04월 13일 (화) 14:45:22 김정식 kimrogerio@hanmail.net
 

 

   
▲ 사진 고태환

 

 

 

스스로도 인정할 만큼 편협한 사고를 지닌 나는 어떤 경우에도 대중성에 휘말리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긍정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  최다 관객동원을 이루어 흥행에 성공한 대부분의 영화를 개봉관에서 보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흥행에 실패한 작품이어도 좋은 영화는 찾아서 본다. 나중에라도 좋은 작품이라고 인정되면 보겠지만 남들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 보지는 않는다. 이른바 대중성과 상업성에 나를 맡기지 않는 것인데, 평생 예술창작을 하며 살아온 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존의 것을 무조건 다 수용하기보다 비판적 안목으로 접근할 때 영감이 더 잘 떠오르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영감에만 의존하는 이런 창작 작업 역시 편협하기는 마찬가지여서 그렇게 나온 결과물로 대중성을 잘 확보해내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다.


그런 내가 본의 아니게 <아바타>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내가 연구원으로 일하는 ‘우리신학연구소’ 동료들과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는데, 선정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다른 영화와 착각했던 것이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신드롬에 가까운 관객동원으로 지구촌을 흔들고 있는 이 영화의 내용을 놓고 보는 시각에 따라 평도 많았다. 바티칸을 비롯한 기독교계에서는 ‘영화 <아바타>를 통해 범신론이나 자연숭배경향이 강한 뉴에이지 문화가 더욱 확산되지 않을까?’를 우려하는 편협한 종파주의를 보인 반면, 현실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와 유일신 종교가 전 지구를 죽음의 행성으로 만들어 버린 오늘날 ‘인간의 원초적 신화를 대중적인 방식으로 되살렸다’는 긍정적인 평도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그런저런 내용 파악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지 너무 강렬한 색감과 청각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음향이 뇌파에 자극을 주어, 그저 머릿속이 먹먹할 뿐이었다. 거기에다 기계와 사람이 뒤엉켜 끊임없이 싸우고 죽이는 장면을 보는 일은 내게는 고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쩌다 재수 없게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의 영화를 만나게 되었을까? 그러기에 사전에 내용 파악을 잘 하고 결정했어야 하는 건데. 완존 실수다 실수!!’

관람을 포기하고 딱 나가고 싶은 심정인데 5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를 스스로 감지하며 억지로 참아냈다. 두 차례나 잠을 자고 깨어났는데도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2시간 42분 동안의 악몽은 그렇게 나를 괴롭혔고 밖으로 나온 후에도 한참 동안 공황장애를 느껴야 했다. 이것은 객관성과 일반성이 결여된 한 개인의 체험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내가 그랬으니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함께 보러갔던 동료들도 애초에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재미있게 잘 보았다고 한다.

 

 

 

 

 

 

   
▲ 사진 고태환

문득 어린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열 살 무렵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관람했다. 신라와 백제가 황산벌에서 싸운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것이 없지만, 싸움이 극에 달한 순간 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크게 울었다. 끝없이 죽어가는(피를 흘리며) 사람들을 보아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봐도 나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모두 너무나 재미있게 잘 보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또 하나의 두려움이 되었다. 그런 극한공포에 관한 경험은 고교 시절에도 있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관한 전쟁영화 <도라 도라 도라>를 단체관람 하다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나오게 되었다. 내가 힘들었던 것은 사람이 피를 흘리며 죽는 것을 계속 보는 것이다. 일시적인 공황장애를 일으키며 극장 입구에 쪼그리고 있던 나에게 같은 반 친구가 다가왔다. 힘들어하는 나 때문에 그도 영화를 포기한 것이다. 그는 내가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설명을 듣지 않고도 알아차렸다. 그 친구의 이름은 정찬호다.

 

그 후로 그는 그림자처럼 내 가까이에 머물면서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내 편이 되어주었고 매사에 전폭적으로 나를 지지해 주었다.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를 지니지 못한 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과는 뚜렷하게 다른 존중과 배려로 대하면서 모든 것을 긍정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아직 세상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사춘기 직후의 소년이 그랬다. 이 수수께끼 같은 진실은 삼 년 후 더욱 놀라운 일로 드러났다.


성적이 좋았던 그는 누구나 선망하는 서울대에 지망했는데, 충분한 실력을 지니고도 아쉽게 낙방을 했다. 당연한 수순으로 아예 상경하여 종로학원에서 재수생활을 하던 그가 입시를 한 달 앞두고 낙향하였고, 전남대 의대를 지망하는 것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은 것도 아닌 그가 들려준 얘기는 가히 놀랍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삶으로 살아내고 싶어. 세상은 창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진보한다는 것을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지. 그래서 창작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창작하는 사람들의 삶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너를 책임지고 싶어. 너는 일상에 대한 부담을 지워버리고 평안하고 자유롭게 살면서 떠오르는 창작을 하면 돼. 그 대신 나는 두 사람의 몫을 벌어서 끝까지 너를 책임져 줄께. 그토록 원했던 전자공학을 포기하고 의과를 지망하게 된 이유야.”


그의 말을 다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우직하고 성실한 그는 스스로 한 말을 뒷받침하는 삶을 살았고 마침내 의사가 되었지만, 인턴 과정이  끝날 무렵 과로로 인한 급성간염으로 하늘나라의 별이 되고 말았다. 내 삶을 책임져줄 사람이 떠나서 슬픈 것이 아니었다. 어떤 순간에도 내 편이 되어 끝까지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슬픔이었다.  

 

 

창조보다 긍정에 신성을 부여한 니체를 존경한다. 죽어가는 순간까지 나를 염려하면서 나에 관한 한 모든 것을 긍정했던 내 친구 정찬호를 사랑한다. 이런 마음으로 나 또한 싫든 좋든 모든 창작 작업을 긍정하고 싶다. 그토록 나를 힘들게 했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를 긍정하고 싶다. 어린 날 보았던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황산벌 싸움>에 관한 무서운 영화를 긍정하고 싶다. 미국과 일본이 합작하여  엄청난 제작비로 만들었지만, 그 제작비의 반 정도밖에 건지지 못할 정도로 흥행에 실패한 영화, 너무나 끔찍해서 나는 끝까지 다 보지도 못한 영화 <도라 도라 도라>를 만든 분들을 긍정하고 싶다. 더 나아가 영화뿐 아니라 모든 장르의 창작에 신성한 긍정을 하고 싶다. 또한 지금까지 내 곁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를 긍정해준 수많은 가슴들에 깃든 신성을 향해 큰 절을 올리고 싶다. 숭배하는 유일신에게만 신성을 인정하고 싶은 기독교계가 우려를 하건 말건 간에.  

 

     김정식 곡 「눈물」

*격월간 <공동선>2010 3~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김정식/가수 겸 작곡가로 생활성가의 개척자이며,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음악회와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예술가요 및 연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우리신학연구소>의 연구위원이며, 가톨릭뉴스<지금여기>의 편집위원이다.  
   

   
▲ 사진 고태환

 

모두가 바라보는 곳과는 다른 곳을 바라보는 자신의 눈길을 알아차릴 때마다 두려움을 느꼈던 나. 무슨 연유건 간에(설령 그것이 가짜라고 해도)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연민을 가슴에 새기고 사는 여린 나. 이런 두려움과 연민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리학자 위니캇의 견해에 의하면 출생 후 3년 동안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인식의 영향이라지만, 내가 기억할 수 없는 일이니 처방도 없다. 다만 원초적 체험처럼 다가오는 이런 두려움과 연민이 내 가슴에 떨림을 주고 그 떨림이 영감을 불러내어 창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보다 먼저 감지해낸 친구가 나보다 먼저 죽었다. 그 후 30년간의 내 삶은 늘 허전하고 쓸쓸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었고 영감을 통한 창작도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 영감을 불러오는 떨림 안에는 먼 어린 날부터 간직해온 기다림, 그리움, 안타까움, 슬픔, 그리고 쓸쓸함도 내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내 노래 안에 담긴 ‘비애미(슬픈 느낌)’의 근원이다. 

 

내가 죽기 전에는 끝날 것 같지 않은 영화 <아바타>는 마침내 끝이 났고, 지칠 대로 지쳐 거의 실신할 지경에 이른 나는 동료의 부축을 받아 밖으로 나왔다. 머리는 깨질 듯 아프고 속이 뒤집혀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 한시라도 빨리 나가서 시원한 바깥바람을 쐬고 싶다는 열망으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보게 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적힌 이 글귀를.   

창조하는 일에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 -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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