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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생명의 양식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20 조회수942 추천수15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부활 3주간 화요일 -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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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도쿄 올림픽을 위해 집을 헐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인부들이 지붕을 뜯어내고 있을 때 도마뱀 한 마리가 몸 안쪽에 못이 박힌 채 살아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인부들이 희한하게 생각되어 주인을 불러 도마뱀을 보여주었습니다. 집 주인은 그 도마뱀은 3년 전 이 집을 지을 때 잡아서 그렇게 못을 박아놓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있는 것이 신기해서 모두 잠시 그 도마뱀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다른 도마뱀 하나가 그 도마뱀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의문이 풀렸습니다. 3년 동안 벽에 못 박혀 있는 도마뱀을 위해 다른 도마뱀이 먹이를 물어다 준 것이었습니다.

 

음식을 먹지 못하면 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진리입니다. 인간의 영혼도 육체와 마찬가지로 음식을 먹지 못하면 죽습니다. 육체의 죽음은 잠깐이나 영적인 죽음은 영원히 갈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과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온전히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여러분의 영과 영혼과 육체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안전하고 흠 없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1테살 5,28)

하느님께서 삼위일체이신 것처럼 인간도 당신 모상대로 삼위일체로 만드신 것입니다. ‘영혼’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아버지와 같습니다. 영혼은 인간이 만들어질 때 하느님께서 육체 안에 넣어주신 것이고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영혼은 그래서 자신의 고향인 하느님을 항상 그리워합니다.

‘육체’는 성자 예수님과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듯이 육체는 보이지 않는 영혼의 상태를 계시해줍니다. 누가 화내는 모습을 보면 육체가 화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영혼이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보면 곧 아버지를 보는 것입니다.

‘영’은 성령님과 같습니다. 성령님은 사랑의 전달자로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오고가시며 두 분을 하나로 이어주십니다.

인간의 영은 마치 자동차의 기름통처럼 텅 빈 공간입니다. 그 공간에 성령님으로 채워주지 않으면 마치 기름이 없는 자동차처럼 영혼은 죽게 됩니다. 즉, 영혼과 육체의 분열이 일어납니다. 영혼은 사랑하며 살고 싶지만 육체는 사람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써 성령님께서 인간의 영 안에 당신의 사랑을 부어주실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피와 물로 인간을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즉, 피로 죄를 씻고 물, 즉 성령님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당신의 피와 물, 이것이 바로 성체고 성경말씀입니다. 인간은 그리스도를 양식으로 삼아 자신 안에 영을 채우게 되어 영혼이 원하는 것을 육체도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만으로는 성령님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마치 못 박혀 벽에 붙어있는 도마뱀 신세입니다. 누군가가 음식을 날라다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 음식을 날라다주는 것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성사와 가르침을 통하여 매일매일 생명의 양식을 먹고 삽니다.

바다에 표류하고 있다고 목이 마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바닷물이 많아도 그 물로는 해갈을 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떨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바다의 짠물로 해갈을 풀려고 하면 더욱 더 영혼은 메말라가고 죽어갑니다. 즉, 생명의 양식을 찾지 않고 육체의 만족만 찾으며 영혼을 돌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배고픔과 목마름은 바로 영혼의 기본적인 욕구, 즉 사랑과 행복입니다.

영혼은 죄로 잃었던 하느님을 그리워합니다. 그 그리움이 배고픔과 목마름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에덴동산의 풍요로움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육체를 채울지 영을 채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짧은 묵상>>

다른 물고기와는 달리 상어는 피의 냄새를 수km 밖에서도 맡는다고 합니다. 물론 하이에나의 코는 썩는 고기냄새를 누구보다 더 잘 맡습니다. 또 독수리의 눈보다 더 날카로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동물은 자신들의 생존 본능에 의해 먹이를 찾거나 혹은 천적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각자 필요한 부분을 진화시켰습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해 바라는 대로 진화한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깨우쳐줍니다.

이것은 동물의 경우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과 천사의 두 본능을 다 지니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본능과 영적인 본능입니다. 두 부분 모두 자신의 본능을 채우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개인 안에서도 갈등이 일어납니다.

“나는 사랑하고 싶다.”라고 할 때 그 사랑이 동물적인 혹은 육체적인 사랑일 수 있고,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영적인 사랑일 수 있습니다.

“나는 기쁘고 싶다.”라고 할 때도 그것이 육체적으로 웃기를 원하는 것일 수 있고, 영적으로 구원된 이의 기쁨을 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실 때, 육체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이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하는가?’하며 떠나갈 것이고, 영적인 사람들은 이 말씀이, ‘내 성체와 성혈을 먹고 마시면 영원히 영적으로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로 받아들입니다.

육체적인 사람은 절대 영적인 배고픔이나 목마름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반대로 영적으로 변한 사람은, 어떤 수녀님의 경우처럼 12년 동안이나 성체만 영하며 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라고 하실 때, 그 배고픔과 목마름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진리와 사랑에 대한 배고픔과 목마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먼저 육체적인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사람이 되지 않으면 그 분을 ‘갈망’하지도 못하거나 갈망하는 것이 육체적인 갈망에 갇혀 느끼지 못하고 그래서 찾으려고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본성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동물들처럼 자신을 진화시켜야합니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바라서 자신의 바라는 부분을 진화시켰습니다. 자신이 무언가를 열절이 갈망하면 그 부분이 진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갈망하는 부분이 진화되게 되어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느 부분을 진화시키고 있습니까? 정말 내 영혼이 진화되도록 그리스도를 배고파하며 목말라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자신도 모르게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진화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의 권력과 돈, 쾌락을 원하여 이상한 모양으로 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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