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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20 조회수1,094 추천수2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4월 20일 부활 제3주간 화요일
 
 
 My Father gives you
the true bread from heaven.
(Jn.6.32)
 
 
제1독서 사도행전 7,51ㅡ8,1ㄱ
복음 요한 6,30-35
 
 
어제는 금강 곰나루에서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하고 돌아왔습니다. 전국각지에서 오신 신부님들과 수녀님, 그리고 교우들 포함해서 한 3,000여명이 함께 했었지요. 하지만 기쁨의 미사가 되어야 하건만, 마음은 그렇게 좋지가 않았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자연이 파괴되고 있음을 직접 현장에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공사가 기득권에서는 4대강을 살리는 것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4대강 살리기가 아니라, 힘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의 주머니를 더욱 더 살리기 위한 사업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시급한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정말로 이 땅의 소외받고 아파하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문제의 해결보다는 눈에 보이는 업적 위주의 사업만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솔직히 걱정보다도 겁이 납니다. 지금의 이런 모습이 과연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일까? 하느님 보시기에 좋게 창조된 이 땅을 엉망진창으로 인간들이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에 겁이 납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시골에 한 번 다녀오려면 긴 여행을 해야만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내려간 뒤에는 쪽배를 타고 강을 건넙니다. 그리고는 4~50분을 걸어가야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날 수가 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강에 다리가 생겼고, 도로가 생겨서 편하고 쉽게 시골까지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편하게 갈 수 있으니까 지금이 훨씬 좋을까요? 좋은 면도 있지만 그리운 때는 배를 타고 힘들게 걸어갔던 그 시절입니다.

편한 것이 그리고 화려한 것이 결코 우리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불편함이 그리고 꾸며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우리를 더 만족시킬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종종 착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내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맞춰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이 세상에 가득 넘쳐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자기 편한 데로 자기 뜻 데로만 하려는 이기심과 욕심 안에서 주님의 자리는 사라지며 동시에 우리의 행복도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분명히 말씀하시지요.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아버지 하느님만이 우리의 행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 펼칠 수 있도록, 그래서 ‘보시니 참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마음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간단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평범함이고,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 창의력이다(찰스 밍거스).




들어줄 수 없는 소원(김종건, 생활성서 ‘2002)

31개월 된 아들놈은 색깔 중에서 빨간 색을 제일 좋아합니다. 풍선도 꼭 빨간 색을 고르고, 티셔츠도 빨간 색 무늬가 들어간 것을 즐겨 입습니다. 장난감 자동차도 빨간 색인 불자동차만 여럿입니다. 평소에 자주 떼를 쓰는 아이는 아니지만 동네 문방구나 장난감 가게 앞을 지나가다 빨간 색 차가 보이기라도 하면 사정없이 떼를 쓰기 시작합니다.

휴일에 공원에 놀러갔는데, 소변이 마렵다고 해서 화장실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색깔 때문에 문제가 생기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아이가 파란 색이 아닌 빨간 색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남녀 화장실을 구분하는 표지 색깔이 남자는 파란 색으로, 여자는 빨간 색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어린아이니 어디로 들어간들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마는 보호자가 꼭 따라붙어야 하는 이 어린아이 옆에 엄마가 아닌 아빠가 서 있었다는 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이가 아무리 어리고 시간이 걸려도 가능한 한 강압적인 실력행사는 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이 큰아이를 키우면서 얻은 어설픈 아빠의 결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심은 무참히 무너졌습니다. 화장실 앞에서 나름대로 쉽게 설명을 하고 설득하길 20여 분, 나도 아이도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비지땀을 흘려야 했지만, 아이의 고집은 열리지 않는 철옹성 같았습니다. 결국 발버둥치는 아이를 안고 돌아섰습니다.

아무리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이라 해도 분명 들어줄 수 없는 소원이 있을 거라도 스스로 위로하면서 말입니다.
 
 
 
Il divo - Hasta Mi F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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