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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현실주의자인 베드로와 이상주의자인 요한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20 조회수469 추천수2 반대(0) 신고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들이 아침을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21:14-19)
 
오늘의 복음은 요한 복음 21장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는 지난 주의 요한 복음 (20:30-31)을 보면 결론을 이미 내린 것 같이 보였지만 이 21장은 후기(epilogue)처럼 보이며 제자들에 관한 남은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하려는 듯이 보인다.
베드로와 다른 여섯 제자들은 본업인 어부 생활로 돌아갔다. 그들은 주님께서 배의 오른 쪽에 그물을 던지라고 이르시기 전까지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이는 네 복음서 첫 부분에서 주님께서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하고 이르시자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모습과 비슷하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베드로는다시한번더예수님에대한충성심에대한질문을받는다. 첫번째는예수님께서베드로에게“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하고 예고하시자 베드로는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마태오 26:34-35), 성금요일밤대사제의마당에서주님을세번이나부정했다.
 
오늘의복음에서도예수님께서는세번이나다짐을하시지만그저건성으로만답하였을뿐이다. 믿음이부족했기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베드로가아직도주님의양떼를보살필자세가되어있지않았던것으로판단하셨던것이다. 그래서예수님께서는이장의마지막부분에베드로가두팔을벌리고원하지않는곳으로끌려가서죽음을당할것이라고예언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5-27)
많은 학자들은 그 제자가 바로 요한이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이러한 모든 정황을 살펴보면 요한은 이상적인 제자였고 베드로는 현실적인 제자였던 것 같다. 요한은 주님 수난 시에 주님을 버리지 않은 유일한 제자였다.
또 그는 주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믿은 제자였다. 그는 사랑이 많고 믿음이 깊은 이상적인 제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기분 내키는 대로 지껄이며 무척 허풍이 심했으며 지도자였지만 흠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부활하신 주님께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부터는 복음을 선포하며 온갖 박해를 다 겪으며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에서 그리스도 공동체를 강화하기 위하여 바오로를 맞아 들였다. 그는 결국 체포되어 죽음을 당했다.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머리를 잘린 채 십자가에 매달렸다고 한다. 교황에 대한 저서를 쓴 바 있는 게오르그 와이젤(George Weigel)은 젊은 가톨릭 신자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 베드로 광장에 서 있는 기단까지 포함하여 40m 높이의 방첨탑(Obelisk)은 네로 황제 경기장(Circus of Nero)에 있었던 것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한 곳이었으며 이 중에는 베드로도 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베드로는 이 방첨탑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졌는데 그래서 현재 방첨탑은 베드로의 죽음의 목격자로 여겨지고 있다.”
이 방첨탑은 베드로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이며 새로운 교황이 탄생하여 베드로 광장에 운집해있는 신자들에게 베드로 좌(the Chair of Peter)에 앉아서 인사를 하면서 맨 처음으로 보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항상 믿음직스럽고 진실하며 사랑이 충만하여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만나고 싶고 용기 있게 주님의 십자가 아래에 서서 살아가는 모험을 기꺼이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여 산다고 해도 요한은커녕 베드로처럼 살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베드로는 요한처럼 이상적인 제자는 아니었다. 베드로는 자신의 인간성과 싸워야 했고 두려움과 싸워야 했고, 성급함과 싸워야 했지만 그래도 진정한 제자였다. 우리 모두 끊임없이 인간성과 싸우고 있다. 또 수많은 죄의 유혹을 받고 있다. 우리 모두 요한처럼 되는 희망을 포기하고 자기 자신을 미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과 연민(compassion, 함께 고통을 겪음) 덕분으로 어둠에서 빠져 나와 주님께 의지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믿고 따라야 한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어린 양을 돌보기를 바라신다. 어린 양이란 바로 가난한 이웃, 자신의 어리석음, 가족, 자신의 고통과 인간성을 말한다. 우리 모두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비현실적인 소망을 버려야 한다. 우리 모두 모든 사람이 착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어릴 때에는 이를 믿었지만 사춘기가 되면서 현실에 눈뜨게 되면서 자신에게 부정적으로 되어 선(善)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우리들이 선하지 않다고 해서 주님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선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잊고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우리를 선하게 만드셨다. 다른 사람들도 꼭 같이 선하게 만드셨다. 우리들이 어릴 때에는 부모님이 완벽한 분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이상(理想)을 잃고 부모의 장점을 보지 못했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은 세상에서 그들의 부모가 가장 불완전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마크 트웨인은 그가 어렸을 때에는 아버지가 가장 바보처럼 보였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아버지가 너무나 현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무척 놀랐다고 털어 놓았다. 그의 아버지에게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아버지의 장점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었다. 영성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의 불완전성만 보고 장점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요한처럼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베드로처럼 되면 기뻐한다.
우리들은 베드로와 같아서 하느님께 감사할 때에야 비로소 요한처럼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물으신 것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정한 사실을 책임 추궁하신 것이 아니었다. 주님께서는 다른 곳에서 모든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역시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 떼를 칠 과업을 맡겨 주셨다.
사도들 가운데 베드로 혼자서만 주님의 양 떼를 쳐야 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일치를 강조하시기 위해 이 말씀을 베드로 한 사람에게만 하셨다.
사도들 중 으뜸인 베드로에게 먼저 말씀 하셨던 것이다.
 
베드로여, 실망하지 마십시오. 한번, 두 번, 세 번까지 대답하십시오.
당신의 경솔한 자신감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세 번이나 땅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당신은 사랑의 고백도 세 번 해야 합니다
.
세 번 묶은 것은 역시 세 번 풀려져야 합니다.
두려움으로 묶은 것을 사랑으로 푸십시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한 번뿐만 아니라 두 번, 세 번까지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 떼를 맡기셨다.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선택한 것이다.
베드로야, 네가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인간적인 지혜가 아니라

내 아버지의 계시이다. 네가 아니라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양떼를 먹여 살리는 믿음을 갖고 살라고 당부하신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주님의 현존을 느끼라고 요구하시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주님의 현존을 증언하라고 요구하신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악을 멀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면서 그리스도를 섬기도록 선택 받은 사람들이다.
악을 멀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은 우리의 내적인 삶이 실제적인 삶보다 훨씬 더 중요함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상처를 받은 이웃에게 따뜻한 위로를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웃을깨우치게하거나이웃을위해궂은일을하는것을의미하기도한다. 어느우리의업무를빼앗을지도모르는젊은사람을훈련시키는것을뜻한다.  
자신보다공부를잘하도록돕는것을의미한다. 도움을필요로하는사람들을돕고도싫은소리를듣는것을의미한다. 우리가진정으로주님을사랑한다면주님의양떼를먹이는것과주님을사랑하는것은같은뜻이된다. 우리모두사도신경을바치면서하나이고거룩하고보편된사도중의하나라고선언하고있다.
 
우리는사도로서의부름을받았다. 우리는요한처럼이상적인사도가되면좋겠지만어쩔없이베드로와같은평범한사람에지나지않는다. 베드로처럼흠이많지만양떼를먹이는데에는아무지장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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